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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의 절규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사회 일반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절규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 방송 : FM 98.1 (07:00~09:00)■ 진행 : 김현정 앵커■ 대담 : 일본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

    지금부터 만날 분은 삼일절 아침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실 분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이 됐습니다. 일본기업인 후지코시에서 노역을 한 김정주 할머니인데요.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면서 얼마 전에는 일본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홀로 투쟁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조선 청춘의 삶을 위해서 진실된 싸움을 하는 중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근로정신대 할머님들의 외침, 오늘 아침에 함께 생각해 보죠. 김정주 할머님, 연결이 돼 있습니다.

    김정주

     

    ◇ 김현정> 건강은 어떠십니까?

    ◆ 김정주> 건강은.. 제가 여러 병이 많습니다.

    ◇ 김현정>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 김정주>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는 83세.(웃음) 만 82세 그렇습니다.

    ◇ 김현정> 건강도 별로 안 좋으시고 연세도 많으신데, 얼마 전에는 일본의 후지코시라는 회사의 주주총회까지 다녀오셨다면서요?

    ◆ 김정주> 네. 내가 가야 되니까 갔다 왔습니다.

    ◇ 김현정> 왜 할머님이 거길 가게 되셨어요?

    ◆ 김정주> 저는 정말로 혼마 사장이라고 해야 될까, 혼마라고 해야 될까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사람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고, 아베 총리한테 말 한마디 하고 싶어서 내가 갔던 거지. 후지코시 주주총회에 혼마 사장이 나왔다고 20일에 내가 도착할 때 그때 알았습니다.

    ◇ 김현정> 후지코시 회사의 사장이 그러니까 혼마라는 사람이시군요?

    ◆ 김정주> 네. 혼마입니다. 혼마 사장이 그놈입니다.

    ◇ 김현정> 가서 만나셨어요?

    ◆ 김정주> 직접 내가 만나서 70년 만에 너를 보려고 내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고 후지코시 본사에 와서 2011년에도 7시간을 내가 감금당하고, 2012년도에도 또 가서 후지코시 회사에 또 2시간을 감금당했습니다.

    ◇ 김현정> 할머님, 그렇게 매해 찾아가서 얼굴 한 번 보자, 내가 이 회사 사장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해도 안 만나주던 것을.

    ◆ 김정주> 네, 그렇습니다. 원하는 것이 그거입니다.

    ◇ 김현정>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걸까요?

    ◆ 김정주> 작년에도 혼마가 나왔고, 올해도 혼마가 나와서 네 번째라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그런데 제일 처음에는 우리 후원자들이, 일본 후원자들이 나가서 했고, 두 번째도 일본 후원자들이 나가서 했고, 내가 네 번째 갔는데 그것도 그 노란딱지를 들고, 그 안에 들어간 딱지를 들고 손을 들어도 저를 안 시켜주는 거예요. 혼마, 그놈이. 손을 들으라고 해서 손을 들었는데 일본 사람들만 시켜주고 저는 안 해요.

    ◇ 김현정> 할머니에게 말할 기회를 안 줬군요. 그러다가 결국엔 주던가요?

    ◆ 김정주> 그래서 제가 “와따시, 와따시...”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인가요?

    ◆ 김정주> “나다, 나. 나를 왜 말을 못 하게 만드냐? 나를 말하게 해 주라.” 내가 앞으로 쫓아나갔어요, 혼마 있는 데로. 그랬더니 좌석에 “앉아라. 앉아라.” 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내가 그것을 악을 쓰고 난리를 치고 13살 먹을 때 내가 일본에 학교 졸업을 못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보내준다고 해서 나를 끌고 간 것이, 올해 70년이 됐단 말이에요.

    ◇ 김현정> 너희들이 나를 끌고 간 것이 70년이 됐다?

    ◆ 김정주> 네. 또 그 후지코시 회사에서 내가 한 일은 그 비행기 발통을 몇 미리 몇 미리 자로 재서 그거를 깎습니다. 기계로. 그랬는데 저는 지금도 키가 작지만 그 당시도 키가 작아서 사과상자 2개를 놓고 올라서서 제가 그 일을 해 줬습니다.

    철조망 안에, 우리 지금 전방의 군인들, 철조망 가시, 그 높은 철조망 안에다가 우리를 가둬놓고.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냐? 내가 혼마 놈한테. 너 들어봐라. 내가 이번에 그랬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삼각빵 한 조각, 두 조각도 아니고, 한 조각으로 우리가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단무지 세 조각에다가 밥 한 숟가락을 줘서 먹고. 얼마나 우리가 배가 고팠으면 기숙사 안에 있는 풀을 다 뜯어서 먹었으면 머리가 다 빠져서 병이 들었을 것이냐? 똑똑히 들어라.

    ◇ 김현정> 그런 구구절절한 얘기를 했더니 혼마 사장이 뭐라고 답을 하던가요?

    ◆ 김정주> 답이 없어요.

    ◇ 김현정> 답이 없어요?

    ◆ 김정주> 네. 그대로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장에서를 일을 하고 저녁에 오면 공습에 시달려서 잠을 못 자서 잠이 한이었다. 기숙사 1층부터 2층까지 있었는데 신을 벗고 못 자고 신을 신고 잤습니다.

    ◇ 김현정> 언제 도망가야할지 모르니까요?

    ◆ 김정주> 네. 신을 신고자고 새벽에 기숙사로 들어오면 바로 또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공장에 나갔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한 줄 혼마 너 아냐? 일본 천왕한테 충성을 다해 줬다. 그리고 월급이라고는 한입도 받아본 역사가 없었다.

    ◇ 김현정>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으셨어요?

    ◆ 김정주>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돈 주라는 것이지.

    ◇ 김현정> 하루에 몇 시간 일하셨어요?

    ◆ 김정주> 아침에 7시, 8시에 출근을 해서 공장에 도착을 하면 그때부터 일을 5시까지 해줬습니다.

    ◇ 김현정> 그 사이에 빵 한 조각 먹은 게 다고요?

    ◆ 김정주> 네, 빵 한 조각. 그렇게 일을 해 줬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고 내가 하는 소리가 우리는 얼마나 일본 잡혀가서 울고 밤이면 잠을 못 자고 이런 거 혼마 너 아냐, 말 좀 해 봐라.

    ◇ 김현정> 그러셨어요. 끝까지 아무 답이 없던가요? 그러면 그냥 쫓아냈습니까?

    ◆ 김정주> 답변은 없고 손수건으로 자꾸 땀을 닦고 물을 마시고, 나보고 좌석에 앉으라고 자꾸 하는데 나는 말이 많죠. 그대로 말을 내가 했죠.

    ◇ 김현정> 그쪽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고, 대꾸도 없고?

    ◆ 김정주> 아무 말이 없고 ‘재판이 다 끝났으니까’ 그러더라고요.

    ◇ 김현정> 할머님, 옛날 얘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13살에 어떻게 하다 끌려가시게 된 거예요?

    ◆ 김정주> 나 12살 먹을 때 언니가 학교 막 졸업했어요. 순천남초등학교를. 그래서 언니가 나고야로 갔어요, 일본.

    ◇ 김현정> 언니도 근로정신대로?

    ◆ 김정주> 네, 근로정신대로 나고야.

    ◇ 김현정> 그때는 왜 가게 된 거죠? 일하면서 돈 벌고 공부하고 이럴 수 있다 해서?

    ◆ 김정주> 중학교, 고등학교 가고 돈을 벌어서 네가 한국에 오고 싶으면 얼마든지 올 수 있다고 하면서 언니를 보내고 저도 역시 그랬습니다.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고, 언니와 같이 한국에 얼마든지 올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언니를 본다고 해서 저를 보냈어요.

    ◇ 김현정> 아버지, 어머님은 안 계셨어요?

    ◆ 김정주> 아버지는 징용에 갔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계모님이 계셨고.

    ◇ 김현정> 언니는 그래서 만나셨어요?

    ◆ 김정주> 언니도 본 적이 없다니까요.

    ◇ 김현정> 아니, 언니 볼 수 있다고, 언니 보게 해 주겠다고 해서 간 거였는데, 언니를 끝까지 못 만나셨어요?

    ◆ 김정주> 그러니까 나는 일본이 나고야 어딘가, 도야마가 어딘가를 모르고 일본만 가면 언니 만나는 줄 알았지. 참말로 내가 병신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갔어요. 가다가 미국 비행기가 떠서 공습이 돼서 구명조끼를 입고 다 배 바깥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나중에 비행기가 도로 가서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서 나는 멀미를 해서 많이 막 토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일본 시모노세키에 내려서 밥을 저는 못 먹었습니다, 한 일주일을.

    그래서 바로 공장에 가서 우리 준 것이 위생주머니, 빨간 십자가 해서 하얀 위생주머니 하나에 빨간약 하나, 붕대 조그마한 거 하나, 편지지 2 개, 봉투 2개, 연필도 없고. 편지 우체통도 모르고 우리는 바깥에 한 번 나가 본 역사가 없어요. 그렇게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 김현정> 노예생활이라고 지금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13살 때의 기억인데 지금 너무나 세세하고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걸 제가 들으면서 ‘여든 셋 나이에 세상에 얼마나 한이 맺히셨으면 그거를 편지봉투 개수까지, 그 봉투에 새겨져 있던 십자가 모양까지 기억을 하실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 김정주> 죽어도 안 잊습니다. 국방색 옷이란 것이 지금 북한 여자들 군복입죠? 국방색 똑같습니다. 내가 그것밖에는 얻어 입는 것이 없습니다. 양말 한 짝도 없고, 우리가 동상 걸려서 그때 후지코시가 제일 추웠었는데 장갑 하나도 얻은 것도 없고, 속옷 한 벌도 얻어 입은 것도 없고 기계기름을 만지면서 일을 해 줬는데. 지금에 와서는 ‘니네 정부에다가 돈을 다 줬다. 박정희 대통령 때 정부에 돈을 다 줬다.’

    ◇ 김현정> ‘우리 협상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무슨 돈을 달라고 하느냐’ 라는 거죠?

    ◆ 김정주> 그런 게 재판 할 때 마다 원고 말 들어보지도 않고, 기각 당하고, 기각 당하고 고등법원까지 가서도 기각 당하고,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 김현정> 뭐라고 그럽니까?

    ◆ 김정주> 정부는 도대체 뭣을 하느냐? 우리가 일본에서 이렇게 도와주는데 정부에서 조금만 도와줬으면 이 일이 벌써 해결할 일이다.

    ◇ 김현정> 끌려가서 그렇게 갖은 착취를 다 당하고, 돌아오신 거는 해방되고 나서 돌아오신 거예요?

    ◆ 김정주> 해방되고도 우리는 해방된 줄도 모르고 그때까지도 일을 해 줬고 11월에 나는 배를 타고 집을 들아왔습니다.

    ◇ 김현정> 그랬군요. 언니도 돌아오고?

    ◆ 김정주> 언니도 돌아오고, 아버지도 돌아오고.

    ◇ 김현정> 그래도 몸은 건강히 돌아오신 거예요?

    ◆ 김정주> 지진 때문에 언니가 후문에서 도망을 가려다가 넘어졌는데 도망가는 사람들이 다 다리를 밟아서 다리가 병신이 돼서 오고, 또 우리 언니는 비행기 날개를 잘랐어요.

    ◇ 김현정> 비행기 날개 자르는 일을 했어요?

    ◆ 김정주> 네. 배에다가 힘을 주고 그 철판을, 날개를 이제 14살, 13살 먹은 사람이 깎을 때 얼마나 힘을 주고 깎겠습니까? 잘랐겠습니까?

    ◇ 김현정> 그랬겠죠.

    ◆ 김정주> 그러다가 그 손가락을 기계에 넣어서 잘렸어요.

    ◇ 김현정> 손가락이 잘려서 왔군요?

    ◆ 김정주> 네.

    ◇ 김현정> 그 후에도 한국에서의 삶이라는 것도 힘이 안 들 수가 있겠습니까, 교육도 받지 못 했는데?

    ◆ 김정주> 한국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결혼 후에서야 더 고통을 받았죠.

    ◇ 김현정> 결혼 후에야 고통 받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김정주> ‘너는 일본에 가서 몇 놈을 상대했냐?’ 거의 낙인이 찍혀서 가정 파탄이 됐습니다.

    ◇ 김현정> 근로정신대로 공장에 간 건데, 그게 또 일본군 성 노예로 착취당한 분들하고 헷갈려서 또 고생하셨군요?

    ◆ 김정주> 그때는 근로정신대가 아니고 전부 다 위안부로 취급을 해 버렸어요, 우리를.

    ◇ 김현정> 그러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느꼈던 그 고통을 똑같이 또 느끼셨던 거예요?

    ◆ 김정주> 네. 우리를 아주 이상하게 봐요, 지금도.

    ◇ 김현정> 그래서 결혼도 실패하셨어요?

    ◆ 김정주> 결혼 망쳤죠.

    ◇ 김현정>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본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데 뭐 나아지는 것도 없고 우리 정부가 달라지는 것도 없고, 답답한 점이 그렇게 많으시다고요?

    ◆ 김정주> 박정희 대통령 때 돈 3억 받아서 온 거 다 경상도 길 닦아놓고 다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개인 돈입니다. 우리한테는 한 푼도 돌아온 것도 없고, 우리한테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습니다.

    ◇ 김현정> 우리에게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다는 말씀.

    ◆ 김정주> 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니네 정부에다가 다 돈 줬다고 하니까 니네 국회의원은 뭐 하냐, 정부는 뭐하냐? 너희 나라에 가서 말 좀 해라.’

    ◇ 김현정> 이런 이야기들을 저희가 이맘때쯤 혹은 8.15쯤 이면 듣는 것 같은데.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똑같은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할머님, 그래도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것만은 좀 우리말을 들어 달라,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마디만 해 주시죠.

    ◆ 김정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때 그런 우리가 아픔을 가진 것을 조금 더 살피고 조금 더 알아서 우리 위안부 할머니, 근로정신대, 나고야 미쓰비시 후지코시 사람들을 조금 자세히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를 듣고 귀 기울여서 일본서 못 받으면 우리 한국에서라도 해줘야죠.

    ◇ 김현정> 사실은 돈으로 보상이 다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김정주> 나는 나 젊은 청춘 다 버린 것을 황금으로도 살 수 없고, 돈으로도 살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예요.[BestNocut_R]

    ◇ 김현정> 근로정신대 또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할머니 중에 지금 살아계신 분들이 몇 분이나 남으셨습니까?

    ◆ 김정주> 우리가 지금 재판 시작한 사람들이 17명이 아직 살았습니다.

    ◇ 김현정> 근로정신대 할머님만 해서 17명인가요?

    ◆ 김정주> 우리 후지코시만 해서. 나고야 미쓰비시도 다 죽고, 지금 4명인가 5명인가 밖에 없어요.

    ◇ 김현정> 할머님들이 하루 이틀 건강 잃어 가시고 세상 떠나는 분들 계시는데 도대체 정부는...

    ◆ 김정주> 우리는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시간이 없습니다.

    ◇ 김현정>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신 말씀이 오늘 하루 종일 제 머리에 울릴 것 같은데요. 할머님 무엇보다도 건강 챙기시고요. 꼭 받아내셔야 됩니다. 보상 받으셔야 돼요.

    ◆ 김정주>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와대나 대통령이나 국회에서.

    ◇ 김현정> 할머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또 괜히 흥분하게 해 드린 것이 아닌가, 저희가 좀 죄송한 생각도 드네요.

    ◆ 김정주> 아니에요. 고맙습니다.

    ◇ 김현정>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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