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법원 외벽에 목을 맨 40대 여성, 도대체 왜?



법조

    법원 외벽에 목을 맨 40대 여성, 도대체 왜?

    6년동안 재판만 9번....국정원 직원인 남편과 힘겨운 이혼소송

    오명선

     

    찬 공기 속에 햇살만은 따사로웠던 16일 오후. 별안간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제각기 갈 길을 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곳을 쳐다봤다.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서관 건물 외벽이었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제복을 입은 방호원들은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10여분 만에 구급차가 출동했다. 하지만 흰 나일론 줄에 몸을 매단 40대 여성을 바로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사다리차가 도착하고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소방관들은 오후 1시쯤 여성을 구급차에 실어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사건이 생긴 지 약 30분 만이었다.

    그리고 오후 2시 10분 413호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여성이 햇수로 6년을 끌어온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청구소송이었다. 재판장은 “당사자에게 닥친 사정으로 인해 선고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여성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 것일까.

    ◈ 이혼소송에서 남편의 국정원 퇴직금은 인정받지 못해

    서울가정법원 등에 따르면 황모(52) 씨는 지난 2007년 11월 부인 오모(48) 씨를 상대로 이혼과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부부는 오씨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면서 갈등을 빚기 시작해 이미 한 차례 협의이혼한 뒤였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불과 한 달 만에 재결합을 시도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남편의 폭력과 부인의 잦은 진정으로 인한 갈등 등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은 양쪽에게 있었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는 서로 위자료는 주지 않되, 부인 오씨가 남편에게 재산분할로 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 비율에서 오씨는 남편보다 높은 60%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자신 명의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어 현금 2억원을 넘겨줘야 했다.

    오씨는 국정원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의 향후 퇴직금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래는 2억8천7백만원을 줘야 하는데 퇴직금을 감안해 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할 뿐이었다.

    당시 오씨가 국정원에 사실조회를 신청해 받아낸 자료에 따르면 남편은 계급정년인 2011년 6월에 퇴직일시금과 퇴직수당을 합쳐 2억3천8백만원을 받게 돼 있었다. 게다가 국정원 직원의 기여금을 재원으로 하는 양우회 퇴직금도 수령할 수 있었다.

    ◈ 국정원 상대로 남편의 급여 정보 공개하라며 2차 소송

    결국 오씨는 2009년 다시 소송을 냈다. 이번에는 남편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장이 피고가 됐다. 남편이 받게 될 정확한 급여와 퇴직금을 알아내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1심 법원은 오씨의 청구를 모두 각하하거나 기각했다. 국정원의 예산내역을 비공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 개인에게 지급하는 금원을 공개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오씨는 다시 항소하고 상소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친 최종 판결에서도 오씨의 주장은 대부분 기각됐다. 다만 남편이 받게 될 양우공제회 퇴직금은 알 수 있었다. 남편 황씨의 퇴직금은 물경 4억5천만원 가량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 재심 사건 선고 앞두고 16일 극단적 선택

    오씨는 힘들게 확보한 자료를 근거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남편의 퇴직금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청구는 받아들여졌다. 두 차례의 재판이 열렸고 판결 선고일이 잡혔다. 2월 16일 오후 2시 10분이었다.

    수년의 법정 공방으로 오씨는 지쳐갔다. 법원은 믿을 수 없었다. 명백한 자료가 있는데도 재판에서 시원하게 이길 수 없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보도하는 곳은, 적어도 오씨가 보기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오씨는 법원청사 바로 앞 길거리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2011재르○○ 단식○일째. 억울한 심경을 담은 대형 펼침막을 걸어두고 오씨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9번째 재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씨는 판결이 선고되는 16일 오전부터 법원을 찾았다. 사고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한 법정 방호원은 “오전에도 얼굴을 마주쳤는데 이런 일이 생겨 황망하다”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estNocut_R]

    재판이 열리기로 한 413호 법정 앞 복도에서 오씨는 준비한 노끈으로 스스로 목을 맸다. 창문 앞에서는 “재판을 믿을 수 없다. 판사를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의 메모지가 발견됐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