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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뉴스]장관급, 전문가, 최단명…이종섭 호주대사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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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

    [딥뉴스]장관급, 전문가, 최단명…이종섭 호주대사가 남긴 것

    핵심요약

    이종섭 호주대사, 내정 발표 25일만에 전격 사임
    '레드백' 수주 위해 발로 뛴 이종섭 '국방부 장관'
    언론 대응하며 의혹 해명하기보다 회피하는 모습
    '불통' 논란 정재호 중국대사…겹치는 두 대사 그림자

    연합뉴스연합뉴스
    25일. 지난 4일 주호주대사로 내정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결국 사표를 내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그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장관을 역임했던 호주대사라는 기록과 함께, 사실상 '최단명 대사'라는 오명을 우리 외교사에 남기게 됐다.

    사실 호주 측은 이종섭 대사 내정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호주는 우리 이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중요시한다. 2021년 프랑스와의 재래식 잠수함 도입 계획을 파기하고 미국·영국에서 원자력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한 사례(AUKUS)가 이를 방증한다. '중국 견제'를 위해 세 나라가 뜻을 모은 결과다.

    이 대사는 한미동맹을 주제로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군에서 관련 보직을 역임한 전문가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으로, 한미동맹 강화 기조를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호주대사에는 외교부 실국장급 간부나 학자가 보임되곤 했다. 호주 측은 우리 외교부의 아그레망(agrément, 주재국 부임 동의) 신청 당시 이 점에 주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8월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의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 부지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왼쪽 세 번째). 연합뉴스2022년 8월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의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 부지를 찾아 기념촬영을 하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왼쪽 세 번째). 연합뉴스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 이 대사는 호주 육군이 차기 보병전투장갑차(IFV)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AS-21 '레드백'을 채택하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2년 8월에는 이미 수주에 성공했던 K9 자주포의 호주 현지 생산 공장 부지에 직접 가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 당국자는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의 요청으로 하루를 거의 비워서 동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공장은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있는데, 말스 부총리 겸 국방장관의 고향이자 지역구이기도 하다. '외치는 내치의 연장'이라는 말이 있다. 둘 중 어느 쪽에서 보아도 호주 입장에서는 이 대사 내정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이 변수가 됐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실제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장관이 고발되는 경우는 흔하지만, 6일 MBC 보도로 이 대사의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 회피' 논란이 일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단 "아그레망 신청 당시 해당 건으로 호주 측에서 문제나 이의를 제기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석해 약식으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출한 휴대전화가 새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음 날 출국하려다가 이틀을 다시 미룬 이 대사는 언론의 민감한 질문을 철저히 피해 다녔다. '당당하지 못해 보이는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10일 오후 7시 45분에 출발하는 브리즈번행 비행기에 탄 이 대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기다리던 취재진들을 피해 몇 시간 일찍 보안구역으로 들어갔다. 공항에서 VIP 의전을 받을 수 있는 외교관 신분이 아니라면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출국장에서 마주친 취재진에게는 "왜 이렇게까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인천공항=박종민 기자'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인천공항=박종민 기자
    열흘 하고도 하루가 지나 이 대사가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길. 전례를 찾기 힘든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를 이유로 며칠만에 돌아오는 일 자체가 의심을 샀다. 그래도 새벽부터 공항에 나간 취재진들은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을 모아 머리를 맞대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포토라인에 선 이 대사는 "질문을 모아서 하시면 대답하겠다"고 하더니,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공수처의 조사를 받고자 하고, 대사로서의 임무에 집중하겠다'고만 한 뒤 빠져나갔다. "이제 비켜 주세요"라는 말은 덤이었다. 이 모습을 현장영상 등으로 지켜본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비슷한 모습이 계속되자 호주 측도 부담이 커졌던 것 같다. 23일(현지시간) 캐머런 머피 뉴사우스웨일스주 상원의원은 캔버라 연방의회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종섭 대사 파견은 호주뿐 아니라 호주 한인들에게도 무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에 영향을 끼치는 연방의회 소속 의원은 아니긴 하지만, 집권 여당인 노동당 소속이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The Diplomat)은 27일(현지시간) '한국의 신임 주호주대사는 집권당의 골칫거리(Scourge)'라는 기사에서 이 대사가 호주로 출국하던 10일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떳떳한 당국자라기보다는 도망자처럼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내정 발표 25일만의 사임으로 후임자를 물색하고, 아그레망을 다시 신청해야 할 외교부도 무척 난감해졌다. 일단 호주 측에는 명백한 외교 결례를 범한 상황이 됐다.

    주한호주대사관 측은 "호주와 한국 관계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며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차기 대사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고대한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특히 총선을 앞둔 지금과 같은 시기,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외국 대사관이 국내정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교가에서 비밀조차 아니다.

    정재호 주중대사. 연합뉴스정재호 주중대사. 연합뉴스
    마침 지난 28일에는 정재호 주중국대사가 대사관 직원들에게 갑질·폭언 등을 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이종섭 대사가 한미동맹을 연구한 학자이자 군인이었듯, 그 또한 한평생 중국을 연구한 학자 출신이다.

    하지만 정 대사는 2022년 취임 직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발언을 실명 보도했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이메일로 사전 접수된 질문에만 답변하면서 현장 질의는 받지 않고 있다. 어딘가에서 많이 본 모습이다. '불통' 논란은 물론, 악화된 한중관계 속에서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정 대사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호주와 중국은 국제정치적으론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둘 다 외교적으로 중요한 나라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임공관장 두 명의 그림자가 겹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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