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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은 줄어드는데…K문학 해외서 '훨훨'[책볼래]



책/학술

    정부 지원은 줄어드는데…K문학 해외서 '훨훨'[책볼래]

    뻗어나가는 K 콘텐츠, 다음은 K문학…외신도 주목
    "K팝·드라마 인기에 문학계·번역원 등 노력 더해져"
    출판계 예산 줄줄이 삭감…"출판 생태계 지원 절실"

    한국 문학이 페미나 외국문학상·메디치 외국문학상·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앙굴렘 만화축제상 등에서 잇달아 수상작과 후보작을 내며 해외 출판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반면 국내 출판 시장은 유튜브, 웹툰, OTT 플랫폼 등 디지털 콘텐츠 증가에 따른 독서인구 감소와 종이책 시장 축소로 이어지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정작 정부의 도서출판 지원 예산은 줄줄이 삭감돼 출판업계 각자도생으로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부담도 증가하는 중이다.

    2022년 상반기 코로나19 팬데믹 막바지만 해도 출판계는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시장을 견인했지만 이후 성장세가 꺾이며 하락 폭이 커졌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출판 인쇄용지 등 각종 생산비용이 급등했다.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출판 산업 지원 관련 예산이 축소되거나 중단되면서 출판업계 재정이 악화되는 데 일조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공개한 '2023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 인구 중 절반 넘는 수가 지난 한 해 동안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 결과에서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한다는 응답률 85.9%와 확연히 비교되는 수치다.

     한국출판문화협회가 발간한 '2023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신간 발행 종수는 6만 1181종으로 전년(2021년) 대비 5.4% 줄었고, 발행 부수는 7291만 992부로 8.8% 감소했다. 도서 평균 가격은 전년보다 4.4% 올랐다.

    서점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매출권수는 2021년 6.6%에서 2022년 9.1%까지 증가하며 '특수'를 누렸지만 지난해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전환과 맞물려 -8.3%로 크게 빠졌다. 출간종수도 역신장세를 보였다.

    노컷뉴스, 한국출판문화협회 제공노컷뉴스, 한국출판문화협회 제공
    이런 가운데 국내 출판업계가 해외 출판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K콘텐츠의 힘이 커지면서 해외 출판사들이 직접 국내 출판사를 통해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도 늘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유럽 쪽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판권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현지 언어로 번역 출간할 작품들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K팝과 K드라마를 접한 뒤 한국 문화에 빠진 해외 팬들이 문화적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문학으로까지 관심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은 179건으로 2011년(54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해외 문학상 수상작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 4대 문학상인 페미나와 메디치 문학상 후보에 올라 최종 메디치 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 김혜순의 '날개환상통'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의 바리오스 번역상에 이어 시 부문까지 두 개 부문에 최종후보(숏리스트)로 동시 선정됐다.

    프랑스에서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마영신의 '엄마들'이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최종후보(숏리스트)에 올랐다.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 영문판 '마터 2-10'(Mater 2-10) 역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올해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랐다.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다.

    마영신의 '엄마들'은 세계 3대 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 공식 경쟁 후보로 선정되며 다양한 장르의 한국 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북미, 유럽, 일본, 러시아와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면서 최근 국내 출판사들의 국제도서전과 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해외출판인교류사업(K-Literature Fellowship) 참가에도 적극적이다.

    연중 개최되는 해외 국제도서전에 참가하는 출판사들이 과거 현지 도서를 발굴해 국내 번역으로 소개하기 위해서였다면, 최근에는 국내 작품을 해외 출판사에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 집중한다.

    지난해 번역원 번역출판지원사업 신청 수는 281건으로 2014년 사업 시작 시 13건 대비 10년 만에 20배 이상 늘어났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K팝, K드라마가 한국 문학의 확장에 탄력을 준 측면도 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문학계와 한국문학번역원이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전문 번역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다른 언어권과의 교류를 확대해오면서 자연스럽게 그 노력의 성과가 K 문학에 대한 세계의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문화의 확산을 조명하며 K팝, K드라마 이후 '한국 문학'이 주목된다는 영국 가디언 기사 캡처.한국 문화의 확산을 조명하며 K팝, K드라마 이후 '한국 문학'이 주목된다는 영국 가디언 기사 캡처.

    국내 번역 출판은 일본 문학 수입이 가장 높지만, 한국 가요와 드라마에 빠진 일본 팬들의 관심이 한국 문학으로 옮겨가면서 한국 문학의 일본 출간도 늘고 있다.

    조남주가 쓴 '82년생 김지영'이 2018년 12월 일본어로 번역된 이후 일본과 마찬가지로 삶이 팍팍한 한국 현실을 다룬 소설과 에시이 등 문학 작품들이 일본 독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지 매체인 닛케이는 "여성 차별 등 (일본인에게도) 익숙한 사회문제와 힘든 삶의 원인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 이외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5년간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출간된 도서(776종)만 통틀어 해외에서 185만부가 팔려나갔다.

    유 교수는 한국 문학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그는 "과거에는 분단, 일제강점기, 로컬리즘(토속주의)과 같은 특수성에 주목했다면 한강 작가 이후 폭력, 젠더, 기후위기 문제 등 보편적 가치와 특수성이 담긴 한국 문학이 세계에 통했다"고 진단했다.

    북미에서는 K팝, K웹툰·웹소설처럼 장르 문학이 각광받고 있다. 영미권 출간을 앞둔 박소영의 '스노볼', 진보라의 '메모리케어', 장세아의 '런어웨이', 박현주의 '서칭 포 허니맨' 등 신진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최근 K컬처의 영향력을 조명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한류의 성공 배경에 K팝·드라마·영화뿐 아니라 비교적 신생 분야인 뷰티, 패션, 요리, 언어, 문학까지 확장하고 있다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K문학이 떠오르고 있다고 주목했다.

    강인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소설 '파친코'가 애플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사례를 들며 "한 세기 만에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 빈곤, 독재 등 혹독한 일을 겪은 한국인의 심오한 경험과 회복력이 한국 문학의 깊이와 풍부함에 담겼다"며 "한국인에겐 세계와 공유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영미, 프랑스 등 유럽권 문학상에서 한국 수상작들이 잇달아 배출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노벨문학상 수상작 배출도 가능하리라 내다봤다.

    그는 "유럽 백인 문학 중심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적지 않지만 최근 한림원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문학과 비소설 장르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유럽 본산에서 문학 번역상을 잇달아 수상하고 있는 한국 문학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황석영, 한강, 이승우 작가를 비롯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창래 작가 등 한국계까지 포함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문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문학상에 도전하는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김혜순 '날개환상통', 마영신 '엄마들' 번역서. 한국문학번역원 제공해외 문학상에 도전하는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김혜순 '날개환상통', 마영신 '엄마들' 번역서.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가디언은 한국 경제에서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분야의 급성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 프로젝트로, 다른 한편에서는 민관 협력의 결실로 분석한다며, 정부와 문화예술인들의 관계가 항상 원만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국가가 뒤로 물러서 있을 때 예술이 번창한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해외 평가처럼 최근 당면한 출판계와 정부와의 갈등, 출판계에 대한 정부 지원 사업의 축소·중단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이 해마다 우수 콘텐츠를 공모해 출판사(600만원)와 저자(300만원)를 지원해온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13억원 규모) 사업과 5인 이하 중소출판사들과 작가를 지원하는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7억원) 사업이 올해부터 중단됐다.

    독서 인구를 늘리기 위한 국민독서문화 확산 관련 예산(59.85억원), 서점 진작을 위한 문화활동 지원 예산(6.5억원) 등 '출판·독서 생태계'를 잇는 대부분의 사업들이 중단됐다.

    정부는 "중복성 있는 사업을 폐지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방침이지만 예산만 줄였을 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는 국고보조금 사업인 서울국제도서전의 수익금이 누락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도서전 국고보조금 지원도 유예하기로 한 상태다. 이에 출판협회는 '도서전 발전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서울국제도서전 재정 독립 등 자구책을 위한 기금을 독자적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해외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문학번역원 예산도 전년대비 20%(사업비 기준)나 삭감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출판계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장관은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한 뒤 "저작권 보호, 독서 진흥, 해외수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K콘텐츠의 다음 주자는 K북(Book)이 될 것이다. 지금이 K북 지원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K북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중소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날 한국출판인회의,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한국학술출판협회, 한국대학출판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의 단체장들이 참석했지만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출판문화협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한국 문학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뿌리인 국내 출판 시장은 여러모로 어려운 상태다. 출판 생태계를 유지해야 해외로도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정부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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