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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도 건넌 애환의 바닷길" 국내 최초의 여객항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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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독립선언서도 건넌 애환의 바닷길" 국내 최초의 여객항로 이야기

    핵심요약

    부산-시모노세키 부관연락선, 우리나라 최초 정기 국제여객선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독립선언서 옷 속에 숨겨 한-일 항로 이용
    국내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 '사의 찬미' 발표 뒤 현해탄서 투신
    염상섭 소설 <만세전>, 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배경

    최초의 부관연락선인 일기환. 부산해양수산청 제공최초의 부관연락선인 일기환. 부산해양수산청 제공
    1876년, 부산항이 처음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항만이다. 부산항은 일제 강점기 수탈과 강제 이별의 애환 장소로 수만 개의 서러운 이야기가 서려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부산항은 전 세계 컨테이너 환적항 2위에 이름을 올리며 '수출 전진기지'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부산항을 기점으로 한 국내 최초의 한일 정기 국제여객선 스토리도 100년을 훌쩍 넘겼다. 부산의 '부'와 시모노세키(하관)의 뒷글자 '관'을 딴 부관연락선이 그 주인공이다.

    1905년 9월 11일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한 최초의 부관연락선 잇키마루호가 부산항에 당도했다. 일본 산요기선 소유의 1680t급 잇키마루호는 거대한 대한해협 240㎞를 건너 11시간 반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관부연락선 첫 입항자는 기시 노부스케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이자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용의자다.

    1945년 6월, 태평양전쟁으로 운항이 중단되기 전까지 이 항로에는 화객선(화물과 여객을 함께 운반하는 배) 13척이 오가며 3천만 명을 실어 날랐다. 선박 이름도 대마(쓰시마) 등 일본 지명에서 시작해 조선 강제 합병 후에는 고려, 신라, 경복 등 한국 이름으로 운항했다. 만주 침략 후 운항 중단 직전까지는 천산, 대륜 등 중국 산맥 이름으로 바꿨다. 일제 강점기에서 독립의 염원까지 굴곡진 현대사를 대변한다.

    부산항 우암 컨테이너 부두 옛 모습. 부산해양수산청 제공부산항 우암 컨테이너 부두 옛 모습. 부산해양수산청 제공
    광복 이후 이 노선은 휴항기를 거치다가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하자 재개 움직임이 빨라졌다. 1967년 8월 제1차 한일경제각료회의에서 부산-시모노세키 정기 여객항로 개설이 공식 논의된 이후 1969년 8월 한국의 부관훼리와 일본의 관부훼리가 동시 설립됐다.

    그해 9월 부산-시모노세키 항로에 대한 정부의 정식 승인이 났고, 1970년 6월 3800t급 카페리 '훼리관부호'가 공식 취항했다. 해방 이후 개설된 최초의 정기 카페리 여객선으로 당시 여객 234명과 승용차 30대가 입항했다.

    1983년 4월 5632t급 국적선 훼리부관호가 취항해 이때부터 이 항로에 2척이 격일로 매일 운항에 돌입했다. 이후 1만6187t급 하마유호가 투입됐다. 2002년 5월부터는 국내 최초 건조 카페리선인 1만 6875t급 성희호가 오가고 있다. 2023년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를 이용한 승객은 여객 10만 6382명, 화물 59만 1232t에 달한다. 여객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 중인 반면, 반도체 장비 수입 감소 등으로 화물은 줄어드는 추세다.

    100년이 넘는 긴 시간만큼, 항로에 새겨진 극적인 역사의 순간도 있다. 1919년 2월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는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재일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서 눈물을 흘리며 연설했다. 이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2·8독립선언서를 옷 속에 숨겨 이 항로로 국내로 들여와 알렸다. 이는 3·1독립운동의 불씨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사의 찬미' 등 음반 13장을 낸 당대 최고의 가수인 윤심덕은 1926년 8월 부관연락선 덕수환에 승선해 현해탄을 건너던 중 바다에 몸을 던졌다. 연인인 극작가 김우진과 동반 투신자살은 당대 한국과 일본의 모든 매체를 도배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혔다.

    부관페리 성희호 모습. 부산해양수산청 제공부관페리 성희호 모습. 부산해양수산청 제공
    일본의 중국 침략이 속도를 내던 1943년 9월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투입한 7500t급 대형선 곤륜환이 연합군인 미국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격침당했다. 승객 543명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다에 수장됐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1923년)과 지금까지 부산시민의 응원가로 사랑을 받는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의 배경도 한-일 항로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부관연락선이 일제 치하 아픔의 역사 속에서도 최초의 여객 항로인 만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한-일 여객항로가 갖는 의미를 재정립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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