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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주의가 경제 발전의 적``이라뇨..



``평등주의가 경제 발전의 적``이라뇨..

  • 2004-01-19 09:34

 

[시사자키 하종강 칼럼]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이 "평등주의가 경제 발전의 적"이라는 내용의 주장을 했다고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좌 원장은 "지난 80년대 이후 관치 평등주의가 만연해 장기 저성장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한국경제의 이륙"이라는 표현으로 치하하는 한편, 30대 재벌에 대한 규제를 잘못된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습니다.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하기 위한 개혁이 장기 성장 침체를 가져왔다"고 비난하면서, 심지어 "경제를 절대평등 사상에 의해 운영하겠다는 선언인 헌법 제 119조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헌법 제 119조 제 2항에서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경련 부설 연구기관 책임자의 위와 같은 주장은 잘 모르고 한 말이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평등은 경제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최근 몇년간 거시경제학 분야의 중요한 연구성과입니다.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그것을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요,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비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었을 정도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제성장과 아울러 사회 불평등구조가 심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은 한국 경제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에게 이미 상식입니다. 정부의 경제관료나 학자들이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건전한 내수를 창출하지 못했다.", "소비가 위축됐다.", "구매력의 안정적 유지가 불가능하다.", "경기가 부양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돼 불평등구조가 심화된 현상을 각각 다르게 표현한 것들입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가 이념과 사회 체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왔던 경제 발전 모델이 인류에게 남긴 공통적 교훈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면 그 어떤 놀라운 경제 성장의 성과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제학도 휴머니즘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 정책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가 인류 사회에 확립된 것은 단순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돼야 한다"는 고전적 휴머니즘의 차원이 아니라,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에모리 대학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평등의식과 정의감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불평등하게 대우하기 시작하면 무리 중에서 자신의 먹이를 포기하면서까지 그 불평등에 저항하는 원숭이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거듭된 그 실험에서 얻어진 결론은 "정의감은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진화돼온 본능적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도덕률이 사회에 확립된 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 진화 과정 속에서 그 원칙들을 지키는 것이 인류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좌 원장의 주장에는 옳은 내용도 있습니다. "시장경제란 잘하는 경제주체와 못하는 경제주체를 차별해 못하는 쪽은 탈락시키고, 잘하는 쪽은 더욱 지원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우월한 경쟁력을 갖는 재벌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그렇게 주장했겠으나, 이 말은 자승자박입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재벌기업이 아무리 부실경영·족벌경영의 잘못을 해도 시장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금융 특혜 등 온갖 지원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그 잘못이 결국 수십억불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리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도산할 수밖에 없는 치욕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두둔하는 주장을 들을 때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함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시사자키 칼럼 하종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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