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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오 감독 "차별을 조장하는 근본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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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오 감독 "차별을 조장하는 근본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노컷 인터뷰] '이장' 정승오 감독 ②

    지난 2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이장' 정승오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영화 '이장'(감독 정승오)은 장남이 없으니 아버지 묘를 옮길 수 없다는 큰아버지(유순웅 분)의 성화에 네 명의 누나가 막내 승락(곽민규 분)를 데려오는 이야기, 라고 정리해도 무방하다. 연락이 제대로 안 돼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화장 처리하겠다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아무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승락 본인이었으나, 큰집에 가자마자 단지 '장남'이란 이유로 예쁨받고 발언권에도 힘이 실린다.

    "세기말적 가부장제에 작별을 고한다"라는 메인 카피에서 알 수 있듯 '이장'은 가부장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무 의심 없이 체화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철하려는 사람, 불만과 원망이 있으나 많은 부분 동화되어 순응한 사람, 문제의식이 있지만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는 사람, 돌아가지 않고 직설적으로 가부장제의 폐해를 꼬집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 수혜자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가부장제와 상관없이 크고 있는 사람 등. 다채로운 캐릭터가 나와 부딪히고 들끓고 잠잠해지다가 마음을 터놓는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정승오 감독 인터뷰가 진행됐다. 정 감독은 "영화가 이분법으로 나뉘어 남녀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치 않았다"라며 "차별을 조장하는 근본 틀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라고 밝혔다.

    ◇ 거대한 가부장제 시스템 안의 우리

    혜영(장리우 분), 금옥(이선희 분), 금희(공민정 분), 혜연(윤금선아 분) 등 네 명의 누나와 막내 승락까지 오 남매가 '이장'의 중심이다. 가부장제 때문에 일어나는 부조리함을 자연스레 노출하는 영화이지만, 누군가 한 명에게 이입하지 않는 태도가 돋보인다. 누나들이 겪은 차별의 설움도, 수혜자임에도 수혜자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승락의 혼란스러움도 잘 녹아들어 있다. 남성 창작자의 작품이기에, 혹시나 승락 캐릭터를 향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 건 섣부른 발상이었다.

    정 감독은 "저는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가진 고집이나 그들이 품은 고민, 부정적인 생각들. 큰아버지가 가진, 그냥 보면 굉장히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부분… 이런 것들이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라기보단, 그들을 둘러싼 거대한 가부장제 안에서 만들어진 게 크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포인트를 뒀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가부장제는 인류가 탄생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거다. 남성 중심적인 역사가 수천 년 이상 지속되다가 이제야 좀 알을 깨는 느낌인데, 여전히 할 게 많지 않나. 가족이라고 하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서로가 가진 입장을 이해해야 할 것 같지만, 정말 가족이란 이름 아래 그게 잘되고 있었나 묻는다면 아닌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어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많은 부조리와 모순, 차별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거기에 포인트를 두고 가니, 그런 장벽을 걷어내면 최소한 기계적 균형을 맞추면서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영화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남녀가 갈등하는 것처럼 피상적으로 보이는 데 그치길 바라지 않았다. 차별을 조장하는 근본 틀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금희 역 공민정, 혜영 역 장리우, 금옥 역 이선희, 승락 역 곽민규, 혜연 역 윤금선아 (사진=영화 '이장移葬' 제작위원회 제공)

     

    ◇ 정 감독 실제 사연에서 가져온 대사

    영화의 핵인 다섯 명의 배우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묻자, 정 감독은 "제가 영화 공부할 때부터 되게 활발하게 작업하셨던 분들"이라며 "그분들의 영화를 다 인상 깊게 봤고 꼭 이분들이랑 작업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각각 전작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오래달리기'에 출연한 장리우, 곽민규를 중심으로 현재 배우들과 접촉해 나갔다고. 금옥 역 이선희는 장리우, 금희 역 공민정은 곽민규와의 인연으로 합류했다.

    정 감독은 "윤금선아 배우님은 '여름의 끝자락'이라는 작품을 좋게 봤고, 작업해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주셔서 캐스팅하게 됐다. 강민준 배우님이야 '우리들'의 씬 스틸러고"라고 전했다. 강민준은 극중 혜영의 아들 동민 역을 연기했다. 정 감독은 "되게 신기한 게, (강민준) 첫 만남 때 할아버지 이장하는 걸 봤다는 거다. 할아버지 뼈도 봤다고 해서 '이거 진짜 운명이다!' 하면서 신기해했다"라고 전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이건 실제로 저와 제 와이프가 결혼 준비할 때 실제로 내뱉은 말이었다"라고 말했다. 극중 결혼을 코앞에 둔 금희가 연인과 통화할 때, 연인이 하는 '치약이나 칫솔은 엄마 집에서 가져오면 안 돼?'라는 대사다.

    정 감독은 "금희 씨가 머리끝까지 화난 저 대사가 저희 커플이 결혼 준비할 때 했던 말이다.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해?' 그것도 그렇고"라며 웃었다. 본인의 이야기가 얽혀 있어 그런지 편집할 때 '저도 모르게' 금희 중심으로 했다는 정 감독은 "스태프들과 PD님이 '금희(분량을) 좀 빼야 한다'고 했고, 편집 기사님이 객관적으로 편집해주셨다. 반면에 공민정 배우는 아쉬워했다"라고 덧붙였다.

    ◇ '이장'으로 확인한 그의 유머, 다음 목표는

    '이장'은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흩어져 지낸 오남매가 오랜만에 모이며 세기말적 가부장제와 작별을 고하는 이야기다. 맨 아랫줄 왼쪽부터 동민 역 강민준, 큰아빠 관택 역 유순웅, 큰엄마 옥남 역 강선숙 (사진=영화 '이장移葬' 제작위원회 제공)

     

    '이장'은 인류가 오랫동안 짊어진 숙제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다. 상황에 밴 아이러니 덕에 오히려 자꾸만 키득거리게 된다. 헛웃음도 나고. 정 감독은 공감을 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 '유머'를 썼다고 설명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 상황이 사실 녹록지 않아요. 굉장히 절망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저는 유머를 잃지 않는 게 공감을 유발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게 가지도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그 안에서 유머를 잃지 않기를 바랐죠. 인물 면면이 가진 캐릭터의 케미스트리를 통해 조금 더 우리 일상에 밀착된 사람들을 보여주길 바랐어요. 영화 보면 되게 묘한 포인트가 있잖아요. 되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우는소리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웃음이 난다든지… 그런 유머요."

    '이장'으로 첫 장편영화를 관객 앞에 내놓은 정승오 감독.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을까. "다양한 인물이 각자의 욕망들로 인해 서로 부딪히고, (무언가가) 관철되고 타협하기도 하고 감정이 교류되고 관계 형성이 되는 데 매력을 좀 더 느끼는 것 같다"라는 그는 "한 상황을 두고 여러 명의 인물이 다르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욕망과 감정이 다른 인물을 서로 교차시키고 매듭지음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도출하기도 하는 세계를 좀 더 디테일하게 탐구해 보고 싶달까요. 아무래도 그런 내밀한 감정이 교차하는 건,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가족 안에서 가장 잘 표현되는 것 같고요. 만약에 그런 생각을 가진 가족들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 하나의 상황을 두고 몇몇 가족이 나오는 거예요. '이장'의 아홉 명이 한 가족이 되고 또 다른 가족이 나오면서 상황이 좀 더 첨예하고 구체적으로 바뀌는 거죠. 그럼 어떤 일이 발생할까! 공통의 상황에서 한계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려고 하잖아요. 이해하는 순간도 생기고요. 그런 경우가 생각보다 일상에서 많이 보이잖아요. 전 그런 데에 호기심이 있는 것 같고, 그걸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끝>

    '이장' 정승오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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