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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이냐 피해 최소화냐, '심각' 격상 요구에 정부 '고민'



보건/의료

    검역이냐 피해 최소화냐, '심각' 격상 요구에 정부 '고민'

    '심각'은 광범위 지역사회 전파를 아예 기정사실화
    "신종플루 당시 발동… 검역 축소, 피해 최소화 주력"
    감염원 원천봉쇄보다는 조기 발견 주력하게 되는데…
    검역 중요하지만 '심각' 격상하면 자원 다른 곳으로 간다는 고민

    정세균 국무총리가 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세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브리핑룸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22일 오후 4시 기준 433명을 기록했지만, 정부는 위기경보 단계를 아직은 '경계'로 유지할 방침이다.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 검역과 역학조사가 최소화되고 질병의 광범위한 전파를 아예 기정사실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전략이 바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지역사회 전파를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차단 중심의 봉쇄 전략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사실상 '격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광범위 전파가 '상수' 될 때 '심각'… "아직 제한 지역서 지역사회 감염 전파"

    현행 '감염병 위기관리 경보'는 관심 - 주의 - 경계 - 심각의 4단계로 나뉜다.

    22일 현재는 '경계' 단계로, 국내로 유입된 전염병의 제한적 전파 상황을 뜻한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꾸려져 방역체계 활동이 강화되고 인력도 보강된다.

    '심각' 단계는 유입된 전염병의 지역사회 전파 또는 전국적 확산 상황을 뜻한다. 필요시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할 것을 요청하고, 나라의 모든 가용 자원을 파악해 동원할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은 22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현재는 일부 제한된 지역에서부터 지역사회 감염 전파가 시작됐고, 대구와 경북은 특별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심각' 단계로의 격상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유행 당시 한 번 발동된 적이 있다. 김 차관은 이 사례를 인용하며 "'심각' 단계 격상은 주된 전략이 검역을 통한 해외 유입 차단과 역학조사를 통한 초기 지역사회 전파 차단에서 벗어나고, 지역사회 환자들의 조기 발견과 치료에 주력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당시엔 검역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축소하고, 개별적인 확진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중단하는 조치가 실시됐다"며 "현 시기는 코로나19의 해외 유입이라는 위험요인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제한된 지역에서부터 지역사회 감염 전파가 시작된 초기 단계로 판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검역 단계 차단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며, 확진 환자에 대해서도 모두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접촉자를 격리해 초기확산을 통제하는 방역망 구축이 여전히 효과적인 시기다"며 여전히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의 발생과 해외로부터의 유입을 차단하기보다는, 광범위한 전파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전환될 때 '심각'으로의 상향이 필요하다는 게 김 차관의 설명이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 (사진=윤창원 기자)

     

    ◇ 범학계 대책위 "지역사회 전파 완전 차단 불가… 피해 최소화로 전략 바꿔야"

    김 차관의 설명은 신종플루 유행 당시처럼 아직 전국에서 지역전파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단계까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있었던 22일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 단계로 격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정부 권고안이 의료계에서 나왔다.

    대한감염학회와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대한소아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등으로 구성된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는 22일 대정부·국민 권고안을 발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대책위는 "지역사회 확산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훨씬 치명적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도 극복했다"면서도 코로나19의 임상적 특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치명률은 중국 후베이성에서 3.3%,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 0.7%, 중국 외 발생 국가에서 0.9%로, 인플루엔자의 치명률 0.05%보다 높고 사스의 10%나 메르스의 3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대책위는 "코로나19는 초기 증상이 심하지 않아 일반 감기와 유사하고, 이 시기에 바이러스의 배출량이 많아 결과적으로 지역사회 전파가 아주 빠르고 높다"며 "증상은 경미하면서 전염력이 높은 새로운 감염병의 지역사회 전파를 완벽히 차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제는 확진자 발견과 접촉자 격리 등 차단 중심의 봉쇄전략(1차 예방)에서 지역사회 확산을 지연시키고, 이로 인한 건강피해를 최소화하는 완화전략(2차 예방)의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며 방역 전략의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출원을 파악해서 접촉자 관리에 집중하는 기존 전략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강력한 이동 제한과 함께, 구체적인 의료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고 고위험 환자들이 일반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부연했다.

    김 차관과 대책위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는 사실상 '심각' 단계로의 격상을 요구하는 권고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 (사진=연합뉴스)

     

    ◇ "'심각' 격상했을 땐 검역도 일상 단계로 축소"… 딜레마에 고민하는 정부

    이같은 내용의 권고안이 잇따라 나오면서, 방역정책을 총괄하는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심각'단계로의 격상을 검토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이를 결단한다면 코로나19의 광범위한 지역사회 감염 전파를 인정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다른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 오히려 검역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문제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2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상황보고서 등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는 신규 환자 감소세가 유지되고 있다.

    전날인 20일 대비 확진 환자 수가 증가한 나라는 싱가포르(1명), 일본(8명), 호주(2명), 이란(3명) 등 4개국이다. 중국 또한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 17일 1886명을 기록한 이후로 감소세다.

    다만 이는 각국이 최근 중국에 체류한 적이 있는 외국인들의 입국을 잇따라 금지하는 등 검역 강화에서 비롯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후베이성에서 체류한 적이 있는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 등 검역을 강화했지만, 대구의 이단 신천지와 경북 청도의 대남병원을 중심으로 대량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는 다소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2일 오후 4시 기준, 이날 추가로 확진된 환자 229명 가운데 대구 신천지 또는 대남병원과 관련이 있는 환자는 185명이다. 지역감염 또는 병원 내 집단감염 환자만 80%를 넘는 셈이다.

    범학계 대책위의 요구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셈이지만, 정부는 아직 상황을 지켜보며 격상 여부를 검토하는 모양새다. 초기 코로나19의 감염원이 대부분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이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때문에 추가적인 감염원의 유입을 막으려면 검역은 필요하지만,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심각' 단계 격상을 결정하면 이런 방책에도 조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김 차관은 2009년 신종플루 유행 상황을 언급하며 "검역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축소하고, 개별적인 확진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중단하는 조치가 실시됐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 때 첫 확진자가 나온 것은 5월 2일이다. 한 달이 지난 6월 1일에는 환자가 39명이었지만 7월 초 300명을 기록했고, 8월 초엔 1400명, 9월 20일까지는 1만 5천명의 환자가 확인됐다.

    질본은 10월 초 지역사회 확산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판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경보 단계는 11월 2일까지 '경계'를 유지했고 다음날 '심각'으로 상향됐다. 이와 함께 김 차관이 언급한 검역 축소 등의 조치도 시행됐다.

    이를 종합해 보면 '심각' 격상은 감염원의 신규 유입 차단을 거의 접어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처방이 되는 셈이다.

    정부는 23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코로나19 범정부 대책회의를 열고 이를 비롯해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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