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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배우는 감정을 들켜야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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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배우는 감정을 들켜야 하는 사람"

    [노컷 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김규평 역 이병헌 ②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남산의 부장들' 김규평 역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사진=쇼박스 제공)

     

    ※ 영화 '남산의 부장들' 내용이 나옵니다.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에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은 이병헌은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 외에도 걱정이 있었다. 유난히 클로즈업이 많은데, 얼굴만으로 김규평이 느끼는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노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속내를 드러내는 편도 아니어서, 이병헌은 자신의 '연기'가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잘 들켰는지'가 관건이었다. 본인 주관은 뚜렷한데, 관객이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건 소통에 실패했다는 의미였다. 배우는 어떤 방법으로든 감정을 들켜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병헌이 가진 생각이었다.

    영화 개봉을 6일 앞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남산의 부장들' 주연을 맡은 배우 이병헌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함께 연기한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을 비롯해 평소의 연기관 등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큰 스크린에서 마법이 일어나길 바라며 연기

    김규평은 곽상천(이희준 분)과 딱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다. 곽상천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고 가끔은 하극상처럼 보일 때조차 있는 불같은 성미라면, 김규평은 필요한 말만 하고 감정도 굳이 표출하지 않는다. 속에선 천불이 나도 겉으로는 태연하려 애쓴다. 이병헌 역시 김규평이 소화하기 까다로운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규평을 '유독 말이 적고, 상대방의 대화나 행동에도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은 채 누르고 자제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한 이병헌은 "그래서 어쩌면 그 인물에게 클로즈업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느와르라는 장르가 클로즈업이 많기도 하지만"이라고 말했다. 미묘한 떨림까지 잡아낼 수 있는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는 과한 표현을 삼가려고 애썼다.

    "클로즈업 연기 때 (배우가)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은 거북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거든요. 어떤 영화를 보다가 아주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나올 때 배우가 너무 뭔가를 하려고 들면 뒤로 딱 물러나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우리가 직접 사람을 (자기) 앞에서 봤을 때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그 사람의) 감정을 훨씬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감정만 잘 가지고 있다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사실 되게 불안했죠. 현장 모니터는 사실 작으니까요. 그땐 아무 표정도 아닌 것 같은데 크~은 스크린으로 과연 관객들에게 전달될까?

    왜냐하면 배우는 뭔가 들켜야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들키지 않으면 내가 무슨 감정인지 어떻게 알아요? 들켜야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이야기를 타고 감정이입이 되는데. 작은 모니터로 내 감정을 봤을 땐 (그게 관객에게) 전달이 될까 했어요. 큰 스크린에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나왔을 때, 정말 마법처럼 그 감정을 관객들이 가져가는 게 목표 지점이었는데, 그렇게 됐다면 정말 다행이고요. 이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꾹꾹 누르지만은 않고, 두세 군데 이상하리만치 폭발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 더 자제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맨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통 역 이성민, 곽상천 역 이희준, 김규평 역 이병헌, 박용각 역 곽도원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젬스톤픽처스 제공)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법한 김규평답지 않게 이성을 잃는 장면이 있다. 굴욕감과 분노에 담뱃갑을 구기는 장면, 곽 실장과 격한 대사를 내뱉으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병헌도 찍을 때 '와, 저렇게까지 싸우나?', '저렇게까지 열이 오르나?' 하고 생각했다고. 그는 "살짝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다혈질적인데, (김규평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자가발전하는 사람 같은 뉘앙스를 조금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재규(김규평의 모티프가 된 전 중앙정보부장)가 약간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다는 내용의 자료와 증언을 참고해, 우민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고 이병헌도 연기하면서 그 지점을 흡수한 것. 이병헌은 "뭔가… '어?'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삐져나오는 성격이 (관객에게) 보이길 바랐다"라고 덧붙였다.

    ◇ 김 부장이 말하는 부장들과 박통

    지금 이 선택이 제일 효과적인지를 따지기보다, 1인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곽상천은 유력한 2인자가 되면서 김규평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확실한 2인자를 두지 않고 부하들을 충성 경쟁으로 내모는 박통(이성민 분)의 계략이 드러난 부분이다. 이번엔 김규평과 곽상천이 어떤 사이였을지 물었다.

    이병헌은 "잠깐 흑백으로 나오는 혁명의 날 장면에서도 보이지만, 곽 실장은 (박통) 옆에서 비서처럼 서 있다. 제가 곽 실장하고 격하게 싸우는 장면에서 '똑바로 날 쳐다보지도 못했던 쫄다구 새끼가!'라는 대사를 한다. 이 영화가 만약 17~18년 동안의 전체 스토리가 나오는 영화였다면 '와, 저 사람이 김 부장에게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관객들이 제게) 완전히 감정 이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산의 부장들'은 대통령 저격 사건이 있기까지 40일 동안의 기간만 압축했기에 초점이 다른 데 가 있었다. 이병헌은 "이미 변할 대로 변해버린 사람들의 모습부터 나타난다. 어떤 지점에서는 그게 아쉽기도 하다"라며 "그 시간을 다 보여줬으면 (사람들이) 변질된 모습을 보면서 되게 안타까움을 크게 느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전했다.

    남을 무시하고 짓누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곽상천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규평은 결국 과격하게 싸운다. 당사자들은 진지한데 지켜보는 관객은 왠지 웃음이 나는 싸움 장면에서, 이희준과 호흡은 어땠는지 묻자 이병헌은 "그건 사실 호흡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라며 웃었다.

    합을 맞춰 선보이는 액션이라면 연습해서 하면 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단다. 이병헌은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이 씬은 정말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했다"라고 해 폭소를 유발했다. '현장에서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말 그대로 '막싸움'이었기에. 재미있는 점은 두 사람이 싸울 때 하는 대사가 다 대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 애드리브는 거의 없다. 감정이 넘쳐서도, 덜 해서도 안 된다는 걸 주의하면서 촬영했다"라고 부연했다.

    이희준은 같은 날 인터뷰에서 곽상천의 존재 의의를 '김규평을 화나게 하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병헌이 느낀 가장 얄미운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했다. 이병헌은 "싸우기 직전에 총 닦으면서 하는 대사. 그 씬은 정말 너무 얄밉게 잘한 거 같다"라며 "'내 눈도 못 쳐다봤던 쫄다구 새끼가' 하면서 '알았나, 곽 중령?' 한 게 걔를 건드린 거다. 총으로 툭툭 치면서 얘기하는데, 그런 예측하지 못한 상대방의 연기가 현장에서 되게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들이 많다. 사실 도움이 많이 됐다, 희준 씨 연기가"라고 밝혔다.

    22일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개봉 3일째인 24일 누적 관객수 100만을 돌파했다. (사진=쇼박스 제공)

     

    한때 가장 잘나가는 2인자였으나 이제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채로 불안에 떨며 지내는 박용각(곽도원 분). 영화 초반만 해도 여유로운 '현재의 2인자' 김규평과, 자신이 섬겼던 박통을 전 세계에 고발하는 박용각의 처지는 매우 상반돼 보였으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비슷한 상황이 된다. 박용각과 김규평이 자신의 피 묻은 양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

    이병헌은 "저도 감독님한테 어제(15일) 처음으로 얘기 들었다. 촬영하면서는 그런 얘기 안 했는데, 박 부장과 김 부장이 같은 선상에서 뭔가 서로 겹쳐 보이게끔 해 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더라"라며 "김 부장은 박 부장의 처지를 보면서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고민이 커지고 갈등하는 부분이 생겼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김규평의) 피에 젖은 양말도 더 클로즈업을 보여줬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박용각을 연기한 곽도원을 두고 이병헌은 "가장 절 당혹스럽게 한, 종잡을 수 없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우리가 리허설해 보면 이런 감정으로 이 씬을 생각해 오고, 첫 테이크 후 (다음 테이크는) 살짝 변화를 준다. 어떻게 저렇게 극과 극으로 변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 두 번째, 세 번째 테이크를 너무나 다 다르게 하는, 정말 아주 상대방을 긴장시키는 배우였다"라고 극찬했다.

    이어,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 호흡을 어떻게 받아서 또 나만의 호흡으로 받아쳐야 할지 정말 굉장히 순발력을 요구하는 배우였던 것 같다. 저는 좀 배운 게 있다. 저런 변주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지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하는 거다. 근데 지른 만큼의 효과가 제겐 온 거다. 그럴 때 '와,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아주 묘한 경험을 했다"라고 말했다.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은 처음 세트장에서 만났을 때부터 놀랐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카메라 테스트 때 집무실 세트 안에 엄청나게 큰 그림이 있었다. 이성민 배우 같으면서 묘하게 중간 정도의 느낌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고 되게 묘한, 아주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야~ 어떻게 나올까' 싶었다"라며 "처음 이성민 배우와 호흡 맞출 때 분장실에서 딱 나오는데 너무 놀랐다"라고 전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설 연휴를 앞둔 22일 개봉했다. 왜 '지금' 이 시기에 이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이병헌은 "저희 영화 개봉 시점 같은 거는 쇼박스(배급사)에서 알아서 하는 거다. 배우들의 개인적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하필이면 '미스터 주'가 개봉하는 그날일까. 이성민 배우가 양쪽에 나오는데…"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면서 "(지금이) 이 영화가 의도한 개봉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작년 여름에 개봉할까, 가을에 개봉할까 그랬으니. 겨울에 개봉하려니까 '백두산'(* 기자 주 : 이병헌은 이 작품에서도 주연으로 활약했다)이 있고, 그런 복잡한 사정이 겹쳤다. 그런 게 (개봉 시기에) 더 강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라고 밝혔다. <끝>

    배우 이병헌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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