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시동' 최정열 감독을 만났다. (사진=박종민 기자)
최정열 감독은 첫 장편영화 '글로리데이'에서 신예들을 대거 기용했다.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의 리더로 널리 얼굴을 알렸지만 배우로서는 걸음마를 뗀 상황이었던 수호를 캐스팅했다. 더불어 지수, 류준열, 김희찬 등 이제는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낯설었던 배우들이 '글로리데이'를 채웠고, 거기서 오는 신선함이 있었다.
두 번째 장편영화 '시동'에는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등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하지 않은 유명한 배우가 다수 나오지만, 조금씩 얼굴을 알리는 신인들도 극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맡았다. 택일(박정민 분)과 티격태격하는 가출 청소년 경주 역의 최성은, 어설픈 일 처리 때문에 자주 혼나는 장풍반점 배달부 배구만 역의 김경덕,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는 질 나쁜 어른 문성현 역의 이해운 등이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정열 감독은 새로운 배우가 한국영화를 계속 성장시킬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의 새로운 면을 포착해 노출하는 것, 혹은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배우를 보여주는 것 모두에 관심이 있다고도 전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시동'은 포스터에서부터 단발머리 마동석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여러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데, 마동석과 작업해 보니 어땠나.한마디로 표현하면 일단 천재다. (웃음) 마동석 선배님은 현장을 너무너무 좋아해 주셨고 즐겨주셨다. 그래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선배님은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연기해주셨고, (새) 테이크 갈 때마다 본인 아이디어를 덧붙여 주셨다. 애드리브가 과해지면 상황과 맞지 않고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마동석의 애드리브는) 거석이 형 캐릭터와도, 영화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거여서 덕을 정말 많이 봤다. 되게 행복했다.
▶ 그동안 코믹 연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박정민의 코믹 연기는 재미있더라. 마동석과 주고받는 호흡에서 나오는 웃음이 초중반 유머를 견인했다.정말 잘한다, 정말. 택일 캐릭터가 여러 명과 앙상블을 해야 한다. 어제는 엄마(염정아 분)랑 찍다가 오늘은 거석이 형과 찍는데 그때마다 너무 조절을 잘해줬다. 코미디는 거석이 형의 가발(단발머리) 쓴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잘될 거라고) 느꼈던 것 같다. 저는 정말 좋았던 게 박정민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 반항아 역할을 꽤 했는데,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역할은 '시동'에서 처음 해 본 것 같다는 거다. 박정민 배우님이 이 상황 안에서 즐겁게 연기하기를 바랐는데, 본능적으로 애드리브를 하나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을 보니까 너무 좋게 나오는 거다. 제가 봤을 때도 너무 재미있고. 아, 이분이 이렇게 사랑스럽고 이렇게 귀엽고 이렇게 예쁜데, 이런 모습을 '시동'에서 보여줄 생각에 연출자로서 감사했고 흥분도 됐다. (웃음)
▶ 정해인은 그동안의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의욕 충만한 반항아 역을 맡았다. 의외라는 평도 나왔다.일단 상필이라는 캐릭터를 말씀드리면, 나쁜 길로 빠져들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갈등해야 하는데 돌아왔을 때 우리 모두에게 안도감을 줘야 했다. 그런 배우가 필요했다. 마지막에 그런 과정을 겪고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큰 안도감을 준다는 점에서 정해인 배우님이 너무 좋았다. 말끔하고 달콤한 얼굴이 이런 역할을 해 보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신선하기도 하고. 불안한 모습에선 두 배로 걱정되고, (관객도) 상필 캐릭터에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해인 배우님이 한다고 했을 때 너무너무 기뻤다.
'시동' 웃음의 핵은 역시 거석이 형 역을 연기한 마동석에게서 나온다. 마동석은 단발머리로 파격 변신했다. (사진=외유내강 제공)
▶ 택일과 상필의 현실 친구 케미도 눈에 띄었다. 특히 10대 남자애들이 하는 무심하거나 허세 있는 말투 표현이 사실적이라고 느꼈다. 전화 통화라든가, 옥상에서 대화하는 장면 등.옥상 장면 같은 경우는 일단 두 분이 서로 현장에서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설정이) 밤새고 만나는 건데, 실제로도 스케줄 때문에 밤새고 바로 오게 됐다. 시나리오에서는 (영화만큼) 대사가 그렇게 풍부하지는 않았다. 약간 피곤할 때 말이 막 나오지 않나. 그게 되게 잘 녹았던 것 같다. 우리도 되게 잘 촬영했고. 택일이 집을 나가고 싶어 하는 지긋지긋한 마음이나, 상필이가 택일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잘 살았던 것 같다.
▶ 염정아 배우와도 처음 작업해 본 거였는데 어땠나.염정아 선배님은 일단 너무너무 팬이었고 너무너무 뵙고 싶었다. 택일 모는 되게 무뚝뚝하다. 전직 배구선수로 아들에게 사랑의 매를 때리는 캐릭터고. 그걸 납득시킬 수 있는 배우여야만 했다. 어찌 보면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 때리면서도 사랑이 느껴질 수 있는 배우여야 했는데 염정아 배우님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켰다. 염정아 선배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박정민 배우와 둘이 얘기할 때마다 너무너무 울컥했다. (두 사람 장면이) 항상 뜨거운 장면이었으니까. 아들과 엄마가 부딪치기도 하고 한발 물러나야 할 때의 에너지도 있었는데, 너무 잘해주셨다. 염정아 선배님이 너무 잘 리드해주셨다, 현장에서. 또 자녀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엄마의 마음까지 너무 잘 알고 계셨고, 그걸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했다. 이번에 많은 회차를 함께하지 못해 아쉬울 정도였다. 계속 같이 찍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배우들도 같은 생각이었고.
▶ 새빨간 머리로 등장한 소경주 역 최성은은 '시동'이 첫 영화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최성은 배우님은 완전 이번이 처음 출연이다. 소경주 역할 캐스팅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오디션을 봤다. 처음 연기한 영상을 보고 거의 첫눈에 반했지만,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오디션도 보고 리딩도 하고 신체적인 것도 봤다. 액션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권투도 배우고 뛰는데 그 과정을 묵묵히 잘 견뎌서 최종 캐스팅된 배우였다. 저는 그 눈빛이 너무 좋았다. 소경주는 길 위에 오래 있었던 캐릭터였고, 눈이 중요한 캐릭터였다. 최성은 배우 눈을 보면 정말 마음을 안 줄 수가 없지 않나. (웃음) 스크린 장악력과 흡입력도 좋다. 보통 신인배우가 그 정도로 쫙 빨아들이는 힘을 보여주기가 쉽지는 않은데, 소경주라는 어려운 캐릭터를 너무너무 잘 소화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조연이나 특별출연으로 등장했다. 섭외 비결은.배우분들에게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굉장히 많이 노력해주셨다. 많이 감동했다. 정말 필요한 역할이었다. 그분들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지 생각 못 할 정도로 간절히 필요했는데, 시나리오 드렸을 때 진짜 흔쾌히 해주셨다. 역할이 크지 않아서 시나리오 드리는 것도 정말 너무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영광이었다, 모든 분들이.
▶ 영화 '시동'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사실 연말은 되게 큰 시장이고, 보통 큰 영화들이 개봉하는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그렇긴 하고. '시동'은 연말에 굉장히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12월이 굉장히 복잡한 달이다. 새롭게 출발하는 내년을 준비하기도 하고 한 해를 정리하기도 하니까. '시동'은 시동을 걸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 영화라서 연말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주는 이 따뜻함과 캐릭터가 주는 즐거운 드라마를 재미있게, 따뜻하게 잘 공감하면서 보셨으면 좋겠다.
최정열 감독은 '시동'이 캐릭터 무비라고 소개했다.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도 캐릭터를 더 친숙하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구만 역 김경덕, 상필 할머니 역 고두심, 동화 역 윤경호, 소경주 역 최성은, 공사장 역 김종수 (사진=외유내강 제공)
▶ '글로리데이'도 그렇고 '시동'도 그렇고 10대 끝자락이나 20대 초반의 주인공을 썼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성향 자체가 청춘 영화를 되게 좋아하긴 한다. '글로리데이'는 청춘 성장물이라기보다는 사회성을 다룬 영화였다. '시동'도 그 나이대(10대) 주인공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 나이대뿐만 아니라 공사장(김종수 분), 거석이 형, 택일 모 등 다양한 연령대가 나오니 청춘영화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많은 것 같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의 순간들, 그 선택에 대한 관심, 선택을 했을 때 오는 결과, 딜레마, 인생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 등… '시동'처럼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 데에도 호기심이 있다.
▶ 청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청춘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나.정말 청춘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런 영화가 주는 장점은 그런 것 같다. 최성은 배우, 김경덕 배우, 이해운 배우 등 이런 분(신인)들이 한국영화를 계속 성장시킬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배우가 계속 나와 온기를 불어넣어 준달까. 꼭 청춘 영화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배우가 계속 나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배우분들이 나오는 게 스스로도 재미있기도 하고, 좋은 흐름을 만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너무너무 매력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배우분을 이 영화에서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아직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배우를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런 캐릭터 표현이 영화를 되게 재밌고 신선하게 만든다고 본다. 젊고 잘하고, 혹은 앞으로 잘할 수 있는 배우분들이 끊임없이 나와주는 게 산업에도 되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저도 거기에 관심이 많고 재미있어한다.
▶ 첫 장편영화 '글로리데이'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이번 '시동'에선 연출만 했는데 작업의 차이가 있나.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시동'은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담고 싶었다. 택일, 상필, 택일 모, 거석이 형, 소경주, 공사장의 '얼굴'을 굉장히 담고 싶었던 이야기다.
▶ 차기작 계획은.차기작은 '시동'이 개봉하고 나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하는 건 여러 가지가 쫙 펼쳐져 있는 상태인데, 하나로 모이는 건 '시동'이 끝났을 때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영화가 될지 결정 안 돼서 확실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게 캐릭터일 수도 있고 이미지일 수도 있는데 내가 빨리 보고 싶은 것들을 중점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고르는 것 같다. <끝>
최정열 감독은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고 그 작업이 재미있다고 밝혔다. 왼쪽은 최 감독의 첫 장편영화 '글로리데이', 오른쪽은 두 번째 장편영화 '시동' (사진=각 제작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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