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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한 박지후가 말하는 영화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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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한 박지후가 말하는 영화 '벌새'

    [노컷 인터뷰] '벌새' 은희 역 박지후 ②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영화 '벌새' 배우 박지후를 만났다. (사진=박종민 기자)

     

    ※ 영화 '벌새' 내용이 나옵니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는 1994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열다섯 살 중학생 소녀 은희(박지후 분)의 이야기다. 관심과 보살핌, 사랑이 필요하지만 집이나 학교에서는 목마름만을 느끼는 은희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커나가는 이야기다.

    '벌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조금씩의 불안함을 안고 있다. 공부에 별로 관심 없는 은희는 '저런 애는 우리 파출부나 할 것'이라는 수군거림에 노출돼 있고, "언젠가 제 인생도 빛이 날까요?"라고 묻는 아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 강남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괄시받는 수희(박수연 분)는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털어놓고, 우등생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대접받는 은희의 오빠 대훈(손상연 분) 역시 성적에 대한 압박을 느낀다.

    어른인 영지(김새벽 분)라고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의젓하고 사려 깊은 면모를 지닌 그조차 스스로가 싫어진 적이 아주 많다고 말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영화는 은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비추며 모두가 본질적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점을 일깨우고, 그러므로 그 사람 자체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벌새' 은희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지후를 만났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연기에 첫발을 들인 박지후는 열다섯 살 때 동갑내기 은희를 연기했고, 이제 열일곱 살이 됐다. 극중 은희처럼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는지, 그런 슬픈 기분이 들어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은희는 중간에 혹이 나서 수술까지 받는다. 중요한 설정으로 나오는데, 이게 왜 들어갔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이건 진짜 제 생각인데, (웃음)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해서 관심 못 받아서 마음의 혹이 생겼다고 봤다. 혹이 나고 나서 관심을 받지 않나. 은희가 아팠기 때문에 고기반찬도 (오빠보다 먼저) 먹을 수 있었고, 부모님이 병문안도 오고, 영지 선생님도 찾아온다. 성장하기 위해서 혹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 은희가 병원에 있을 때 영지가 찾아와서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그 장면이, 마지막 촬영 날 마지막 씬이었다. 마지막 씬에 은희가 힘을 얻는 대사를 하고 끝나는 거였다. 그걸 김새벽 배우님 목소리랑 같이 들으니까 더 와닿는 거다. (배우님을) 보고 있어도 울컥했고, 그게 또 마지막(촬영)이라는 거랑 겹쳐서 되게 시원섭섭했다. 그 장면 찍을 때, 영지 선생님 눈만 바라보고 있어도 힘을 얻고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영화 '벌새'는 열다섯 살이 된 중학생 소녀 은희(박지후 분)가 맞이하는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사진=에피파니&매스 오너먼트 제공)

     

    ▶ 은희가 어떤 아이인지 정말로 궁금해하고, 은희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유일한 어른이 영지다. 그래서인지 영지와는 내밀한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 같다. 자기가 싫어진 적 있냐라든지. 본인도 자신이 싫어진 적이 있나.

    그냥, 스스로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 못났다고. 어떤 상황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어쨌든 제가 뭘 잘못해서 반성해야 하는데, 그걸 반성하지 않고 합리화할 때가 있었다. 올바르지 않은 행동인 걸 아는데도 그걸 넘어가려고 하는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 극중 영지처럼 사람의 본질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지.

    그냥, 대화도 많이 하려고 하고 관찰을 많이 하는 거 같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진짜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 또, 여러 가지 불안함 속에서도 자기를 지키는 방법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직 찾지는 못했다. 그런 감정을 알아가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에세이를 되게 많이 읽고, 다이어리도 쓰면서 저 자신을 그거로 들여다본 것 같다. 지나간 일을 회상하면서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보고 나 자신을 칭찬하기도 한다.

    ▶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과 대사가 있다면.

    장면은, 제가 지완이(정윤서 분)를 차고 나서 거실에서 방방 뜨는 게 제일 기억에 남고 좋았다. 또, 제가 중간쯤에 엄마~ 하고 부르는 장면. 엄마는 넋을 놓고 있는데 제가 포효하듯이 부르는 장면. 대사는 "제가 불쌍해서 잘해주시는 건 아니죠?"도 좋았지만, 그냥 대사 자체가 끌렸던 거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였다. 편지 속 글인데 그게 진짜 은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 의외로 빵 터져서 놀랐던 장면이 있나.

    저만 터진 건 아니고 관객분들도 터졌는데, 좀 신기했다. 저는 진지하게 봐서. (웃음) 은희가 오빠한테 뺨 맞고 나서 (의사가) 진단서 필요하냐고 하는 장면인데, 저는 그 상황이 되게 진지하고 가슴 아팠다. 근데 관객분들은 웃으시더라. 어떻게 보면 의사 선생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데, 갑자기 푸근하게 느껴져서 (분위기가) 풀리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 '벌새'를 찍으면서 가족들과 함께한 장면이 꽤 많았다. 배우들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족들이 단체로 식탁에서 밥 먹는 장면이 많았다. '반찬 맛있겠다~' 하고 하하 호호 했는데, (촬영 시작되면) 갑자기 다 변하는 게 웃겼다. 그냥. 가족 중에서는 엄마, 언니 역을 한 분들(이승연-박수연)과 대화를 많이 했다. 같이 하는 씬이 많아서. 특히 언니랑 누워 있는 씬에서는 촬영감독님이 저보고 '너는 진짜 이 집에 사는 애 같다'라고 하셨다. (웃음) 그만큼 편하게 촬영했던 것 같다.

    운동권 출신 학생이자 한문 선생님인 영지(김새벽 분)는 은희(박지후 분)를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존중하는 어른이다. 왼쪽은 영지 역을 맡은 배우 김새벽, 오른쪽은 은희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후 (사진=에피파니&매스 오너먼트 제공)

     

    ▶ 김보라 감독과 작업해 본 소감도 궁금하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1차 오디션 때는 감독님 얼굴을 모르지 않나. 그날 라이더 재킷을 입고 계셨나? 되게 멋지신 분이 지나가서 '배우인가? 리딩 참여하시나 보다' 했는데, 들어가니까 감독님이셔서 깜짝 놀랐다. (웃음) 첫인상부터가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었다. 대화 나눠보니까 되게 진짜 나긋나긋하게 해 주시고,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셔서 더 끌렸다. 항상 감독님께서 제 의견을 먼저 물어보신다. 그런 게 되게 신기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자기 말이나 입장을 먼저 얘기하는데, 감독님은 항상 저를 위해 주시는 것 같아서. 현장에서는 또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저랑 엄마랑 감독님은 위대하신 분이라고 그랬다. (웃음)

    ▶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처음에는 연기학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연기학원에서 길거리 캐스팅됐고, 연기 배워보자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각쟁이' 이런 잡지 모델을 하다가 중1 때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에서 처음 연기했다. 그게 진지하게 해 본, 진짜 제대로 된 첫 연기였다. 현장 용어가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촬영 후에 알아가는 게 좋았다. 제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진로로 생각해 볼까 긴가민가하던 시기에 단편 하나 더 찍고 '벌새' 촬영하면서 나는 진짜 이걸 진로로 해야겠다 싶었다. 즐거웠고, 꾸준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벌새'는 항상 첫사랑 같은 영화라고 말한다. (웃음)

    ▶ '벌새' 주인공 은희를 맡으면서 극을 이끌고 나간다. 주연을 맡았다는 부담은 없었나.

    32회차 정도를 현장에 있었다. 제가 백지상태라서 어쩌면 연기한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데, 감독님께서도 디렉션 잘 주시고 잘한다 잘한다 해 주셔서 제가 더 맘 편하게 용기 얻고 했던 것 같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좋은 현장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어디에서든 내가 연기하는 것 자체가 행복할 거 같다. 엄마 피셜(오피셜)로는 제가 숙소로 돌아오면 퍼져 잤는데, 현장에선 되게 즐거워 보였다고 한다. (웃음)

    ▶ 촬영 현장 상황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는데, 본인은 당근과 채찍 중 어느 방법에 더 자극받는 편인가.

    아직까지는 당근! (웃음) 왜냐하면 평가할 수 있는 경험치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올바르지 않은 행동은 바르게 잡아야 한다는 주의긴 하지만, 저 자신을 가혹하게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 게 좋다. 나중에 어느 정도 연륜이 됐을 땐 채찍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저는 저를 제어하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관객들에게 '벌새'를 소개해 달라.

    이 영화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영화인 거 같다. 하지만 '이건 꼭 봐야 돼!'라고 말할 수 있다. 본 사람만 아는 영화라고 저는 생각한다. 관객분들이 영화 볼 때 은희를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만 보는 게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은희라고 보시면 좋겠다. 느린 템포에 맞춰서 감정 흐르는 대로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 영지가 은희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지?'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본인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말도 안 되는 일'은 뭘까.

    저는 진짜, '벌새'로 많은 영화제에 가고 제가 상을 받은 것 자체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웃음) 기적 같은 일! 진짜, 실감이 안 난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게 꿈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기사를 보면 와 닿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웃음) <끝>

    배우 박지후 (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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