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주변의 '비중' 걱정… 문소리의 답 "쉽게 안 묻힐 거예요"



영화

    주변의 '비중' 걱정… 문소리의 답 "쉽게 안 묻힐 거예요"

    [노컷 인터뷰] '배심원들' 김준겸 역 문소리 ②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심원들' 김준겸 역 배우 문소리를 만났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배심원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국민이 참여하는 역사상 최초의 재판이 열리는 날, 배심원단으로 8명의 보통 사람들이 증거-증언-자백도 확실한 살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거기다 제목부터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이다.

    이 영화에서 문소리는 강한 신념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 김준겸 역을 맡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되는 중심 사건의 선고를 내리는 것은 김준겸의 몫이었지만, '배심원들'은 법조인이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윤그림·양춘옥·조진식·변상미·최영재·장기백·오수정·권남우 8명의 배심원이 각자 다 중요한 역할이었다. 김준겸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배심원들' 캐릭터의 비중은 1/n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거다. 주변에서는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판사 역할이 묻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심원들'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를 만났다. 혹시 비중이 작다고 느끼지 않았냐는 질문에 문소리는 "더 작은 비중도 많이 해 본 것 같은데…"라고 호쾌하게 답했다.

    ◇ '판사' 역할 문소리가 배심원들 평의실에 자주 간 이유

    문소리는 지난 2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배심원들'이 좋았던 이유로 "여러 사람이 마음을 모아서 무언가 작지만 승리감을 주는 영화"라는 것을 들었다. "우리가 팀플레이를 하는구나, 이걸 너무나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라고도 했다. 권남우 역의 박형식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듯, 배우들은 수다가 너무 길어지는 걸 걱정할 정도로 친해졌다.

    문소리 역시 본인 촬영이 아닐 때도 배심원 평의실에 들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진 않았지만 반나절씩은 촬영하는 걸 지켜봤다. 거기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가 재판의 흐름과도 연결됐기 때문이다.

    문소리는 "배우들 각자의 캐릭터는 어떻게 엮어가는지, 배우들도 많은데 이들을 데리고 신인감독님이 어떻게 헤쳐나가실지 그것도 걱정되고, 혹시 도와드릴 일은 없나 등 여러 가지 마음으로 현장에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촬영 현장에서 리더 역할을 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문소리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 듯했다.

    장편 상업영화가 처음인 박형식이 27테이크를 가서 당황하자 '이창동 감독님은 30테이크, 40테이크도 갔어. 이건 별일이 아냐'라고 다독인 게 문소리였다. 그는 "(전작에선) 천재 변호사 역이고 한두 테이크만 오케이가 나왔을 텐데, ('배심원들'에선) 잘한 것 같은데도 자꾸 다시 가니까 놀랐을 거다"라고 말했다.

    문소리는 '배심원들'을 찍으면서 팀플레이하는 기분을 느꼈다며, 팀워크가 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매우 컸다고 밝혔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문소리는 박형식에게 첫날이니까 톤을 맞추기 위해서 여러 테이크를 간 거고, 홍승완 감독을 믿어봐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한 장면을 너무 여러 차례 촬영하는 것을 보고 걱정한 김홍파(장기백 역)에게 '별일 아니다. 둘이 맞춰보느라 그런 거다'라고 수습(?)하는 것도 문소리의 몫이었다.

    하지만 정작 홍승완 감독은 작업을 마치고 나서 문소리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저는 편집본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영화 끝나고 선배님이 더 판사같이 느껴져서 더 어려워졌습니다."

    홍 감독에 대해 들려달라고 하자 문소리는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홍 감독의 비범함을 눈치챘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출연을 확정해서 크랭크인하기 약 1년 전부터 홍 감독을 만난 문소리는 '너무 놀랐다'고 했다. 영화를 볼 땐 '저런 일이 실제로 가능해?' 싶을 수 있지만, 홍 감독이 다 법리로 나와 있는 것을 내용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굳이 어긋난 걸 꼽자면 마지막에 판사가 선고를 즉석에서 바꾸는 것이 있다. 결론을 뒤집는 결정을 할 때는 보통 휴정하고 다른 판사들과 논의 과정을 거치는데, '배심원들'에선 흐름상 이 부분이 생략됐다. 이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다. 판사가 말하는 것에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문소리는 "1심-2심 결과가 다른 수많은 사건을 참조하고 공부하셨다. 판결문을 엄청 보고 법대 가서 청강도 하시고 취재도 하셔서 그런 부분에 신뢰가 깊었다. 이렇게 나와서 준비를 많이 했구나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방 안에만 오래 갇혀 있으면 시나리오가 한길로 빠질 수도 있는데, '아, 이분이 이 시나리오를 굉장히 집요하게 준비하셨구나' 생각이 들더라. 세상 누구보다도 '배심원들' 이 영화에서는 이 사람이 전문가라는 신뢰가 들게 하셨다"고 부연했다.

    박형식을 두고는 "장편 상업영화를 처음 하니까 '내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을 텐데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러기가 어렵다. 더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방어적으로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형식 씨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다른 7명의 배심원한테 마음을 열고 하나가 돼서 같이 움직이더라. '참, 저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 굉장히 좋은 태도를 가졌으니까 더 성장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 '심판하는 인간'의 중압감

    법을 바탕으로 어떤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판결을 내리는 판사. '배심원들'에서 그 역할을 연기하며 문소리는 '판사도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체감했다. 문소리는 "제가 해 보니까 판사도 인간이더라. 법이 이래야 한다는 것보다 그걸 더 많이 느낀 것 같다"고 강조했다.

    문소리는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겠나. 신은 할 수 있겠지만…"이라며 "많은 사람을 옭아매거나 혹시 억울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게 되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 훨씬 무겁게 생각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문소리는 '배심원들'을 촬영하고 나서 '심판'을 내리는 직업인 판사의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어, "판사라는 분들은 그런 심리적 부담도 되게 크시겠다 싶었다. 형사 재판에서 양형이 조금 높은 선고 내리고 집에 돌아가면 본인들도 심리적으로 굉장히 마음이 힘든 순간이 많다고 하더라. 법정에서는 안 드러내지만. 그런 책임을 갖고 산다는 것은 대단한 무게를 지고 가는 것이겠구나 싶더라"라고 부연했다.

    취재진 중 한 명이 혹시 판사가 된다면 꼭 혼내주고 싶은 범죄자가 있냐고 묻자, 문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안 된다"며 웃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자기가 혼내지 않아도 벌 받을 거라면서, "저는 누구를 혼내줄 만한 무게를 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판결을 뒤집은 김준겸의 결정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는 긴 답이 돌아왔다.

    "김준겸이 형사부 18년을 했다는 건, 출세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형사재판은 기피한다고 하더라고요. 형량도 많이 내려야 하고, 끔찍한 사건도 제일 많고. 그러니 가장 권력욕이 없는 사람인 거죠. 판사라는 자기 직업에서, 원론과 기본에 가장 충실한 사람. 일은 많고 마음의 부담도 크고 끔찍한 사건들도 많고 서로 격론을 벌여야 하는, 판사로서 가장 힘든 길을 여성 판사임에도 불구하고 18년을 걸어온 거예요. 거기다 비법대 출신이고. 다른 배석(판사)과 주심(판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잖아요. 그렇지만 자기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여기까지 버텨온 인물이고 뺑뺑이 돌려서 국민참여재판에 들어갔죠. (법원이 원하는 걸) 척하면 척하는, 우리(법원) 판을 유리하게 할 만한 플레이어는 아니었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그런 재판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봐요."

    ◇ 문소리에게 '비중'이란

    '배심원들'은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판사 김준겸을 포함해 법조계 사람들이 특별히 부각되는 영화는 아니다. 혹시 비중이 작다고 생각하진 않았냐는 물음에 문소리는 "더 작은 비중도 많이 해 본 것 같은데"라며 웃었다.

    "그런데 재판장 혼자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죠. 같이 가야 되는 영화인 거고, 처음부터 저는 그 점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고요. 물론 영화 하다 보면 저 혼자 돋보이는 영화가 있을 수도 있는데, ('배심원들'은) 모두가 함께 풀어가는 게 장점인 영화여서 오히려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됐죠. 그런 측면은 감독님이 잘 맞춰주신 거 같아요. 근데 시나리오 보고 주변에서는 그런 걱정을 좀 하시더라고요. '배심원들이 중심인 것 같은데 재판관은 묻히지 않을까?'라고요. 저는 '쉽게 안 묻힐 거예요. 아시잖아요? 쉽게 안 묻히는 스타일이라는 거. 걱정 마세요'라고 했어요. (일동 웃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이 걱정 안 하고 촬영한 것 같아요."

    영화에서 얼마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는 말에 문소리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그냥 제가 일하는 곳이라고 그전부터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공부도 더 하고 싶었던 거고, 재미있는 작품이고 좋은 인연이면 하게 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비중이 작으면 좀 서운할 때가 있다고 털어놔 웃음을 안겼다. 문소리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특별출연했을 당시 일화를 꺼내며 "(촬영 마치고) 집에 가라고 하니까 눈물 나려고 하더라"라고 말해 일동 폭소했다.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준겸이 판사 임관했을 때부터 새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처럼 문소리의 초심을 다잡는 말이 있을까. 그는 특별한 말이 있다기보다는, 자신을 영화에 데뷔시킨 이창동 감독을 떠올린다고 했다.

    "저는 늘 이창동 감독님을… (웃음) 초반에 호되게 저를 트레이닝시키셨기 때문에 그때를 늘 떠올려요. (웃음) 언제나 강한 존재감으로 제 주변에 존재하고 계세요.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이창동 감독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요. 정말 새끼 오리가 가장 처음 본 대상을 엄마 오리로 보듯, 제게도 그렇게 각인된 분인 것 같아요." <끝>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