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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정관념도 노출하는 유튜브 키즈 콘텐츠, '잘' 보려면?



미디어

    성 고정관념도 노출하는 유튜브 키즈 콘텐츠, '잘' 보려면?

    [현장] '유튜브 키즈 콘텐츠-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

    1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 플랫폼의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명숙 인권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 (사진=김수정 기자)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월 317억 분)였다. 유튜브의 인기가 가장 높은 세대는 10대였다.

    10대 중 하루 평균 이용 시간(분)이 가장 긴 층은 10대 미만 남성(78.7분)이었다. 그 후로는 10대 이상 남성(75.6분), 10대 미만 여성(70.5분), 10대 이상 여성(61.7분) 순이었다. 하루 평균 1시간 이상을 유튜브 보기에 쏟고 있다는 의미다.

    한때 가장 인기 있고 보편적이었던 미디어였던 시절에도 TV에서는 10대나 유아·어린이들을 위한 콘텐츠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만화영화, 어린이 전용 프로그램 등은 간신히 구색을 갖추는 정도로만 편성되는 게 현실이다.

    반면 유튜브는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가 풍부하고, 무료로 마음껏 볼 수 있으며, 뛰어난 추천 기능으로 더 적극적인 콘텐츠 탐험이 가능하다. 그동안 주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10대와 그보다 어린 나이대의 시청자가 유튜브로 눈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장시간 노출되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조차 성차별적이거나 성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 플랫폼의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는 '유튜브 콘텐츠가 성 고정관념이 담긴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지', '인권-젠더적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제작되는 유튜브 콘텐츠를 모니터했다.

    모니터 실시 기간인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구독자 수가 적게는 68만 명, 많게는 416만 명에 이르는 상위 채널 10개를 모니터했다. 모니터 대상이 된 유튜브 콘텐츠는 부모나 혈연관계가 아닌 성인과 함께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등장해 직접 각종 활동에 참여했다.

    권 활동가는 △어린이 대상 유튜브 콘텐츠 창작자들의 성평등 의식 고취 △어린이 및 보호자들의 콘텐츠 선택에 대한 정보 및 도움 △유튜브 등 콘텐츠 유통 플랫폼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 의식 강화 3가지를 모니터 목표로 뒀다고 밝혔다.

    모니터 결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내용이 가장 두드러졌다. 여자아이들은 인형 아기를 재우고 아프면 처방을 하는 등 돌봄 노동을 놀이로 구현했고, 청소·빨래를 해 보면서 습관을 들이려고 했다.

    '요리'를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여자아이들이 등장하는 콘텐츠에서는 요리하는 장난감이 자주 나왔다. 남녀 아이들이 둘 다 나오더라도, 뭐가 먹고 싶다고 요구사항을 말하는 건 남자아이였고,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건 여자아이였다. 남자아이도 요리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으나, 이는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한정된다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핑크는 여자, 블루는 남자의 색으로 인식하게 할 정도로 여자아이들의 콘텐츠에는 핑크색 옷, 물건이 자주 노출됐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내용도 있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어린이 화장'은 유튜브 키즈 콘텐츠에서 빠지지 않았다. 한 여자아이 유튜버는 거울에 누가 가장 예쁜지 묻고 거울이 안 예쁘다고 하자, 드레스를 입고 머리띠를 하고 색조 화장을 해서 예쁘다는 말을 듣는다.

    또 다른 콘텐츠에서는 아이에게 왜 세수한 후 화장하지 않냐고 묻는 엄마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작은 화장대는 치워지고 더 큰 새 화장대가 나오며, 아이는 기초화장은 물론 립스틱까지 바른다. 공주 캐릭터를 닮고 싶다며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고 소도구를 활용해 '공주 차림'으로 변신하는 콘텐츠도 있다.

    어린이 대상 콘텐츠를 선보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유명한 헤이지니의 동영상 재생 목록. 핑크 계열의 색감이 돋보인다. 아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배에게 '유령신부' 메이크업을 받고 "지니가 늙어보여요"라며 실망한 지니의 모습 (사진=헤이지니 유튜브 캡처)

     

    '헤이지니'는 어린이 직업체험 편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배를 초대해 화장을 받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때, 할로윈 유령공주에 당첨돼 무서워보일 수 있는 메이크업을 하고 나서, 지니는 "지니가 늙어 보여요"라며 우는 시늉을 한다. '늙음=좋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밖에도 남녀 아이들이 같이 나오더라도 남자아이는 주체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지만 여자아이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게 연출한 점, 여자아이가 공주님처럼 무도회에 가고 싶어 하는 상황을 꾸민 점, 먹고 싶은 음식을 뺏어먹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가감 없이 나오는 점 등이 지적됐다.

    권 활동가는 고정적 성 역할을 주장하면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었다. 좀비 분장을 보고 놀란 남자아이에게 뚝 그치라고 하는 자막이 나오는 것, 한 손 운전을 능숙하게 하는 아이를 치켜세우는 것, 나약한 남성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등이 주요 사례로 등장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은 "여아를 대상으로 한 화장품 콘텐츠는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다. (이런 내용이) 유튜브에 노출되면, 어린아이 때부터 여성은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문화를 자리 잡게 하는 데 일조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소장은 "(다른 미디어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에서, 유튜브 키즈 콘텐츠가 단비 같은 건 맞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를 계속 보면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명숙 인권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키즈 콘텐츠가 성별화되고 성차별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의 유튜브 키즈 콘텐츠는 전 세계적인 성평등 관점에서도 더 뒤로 간 게 아닌가 싶다"면서 기획자·창작자·이용자·플랫폼에 성평등 교육을 시행하는 기본적인 절차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키즈 콘텐츠에서의 '자유'는 무엇이든 팔아도 되는 기업의 자유로 보인다. 아이 유튜버가 장난감 화장대를 판다고 직접 말하진 않지만, 섀도를 바르고 화장품을 갖고 싶다고 하는 게 아이 본연의 욕망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완구회사나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 새로운 소비자를 창출하려는 뷰티 업체의 욕망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강 활동가는 "아이들이 시민으로 커 가는 게 아니라, 소비 대중으로만 혹은 억압의 피해자로서의 길만 활짝 열려 있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 유명 유튜버가 화장하기를 보면서 '나(의 외모)는 부족해'라며 좌절할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하는 게 아니라 외모가 곧 정체성이라는 기호를 배우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유튜브는 이제 더 이상 단순 중계 플랫폼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스스로 콘텐츠 관리할 의무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양한 이야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긍정적인 부분이 존재하지만, 책임져야 할 부분에서 너무나 많이 피해 있었던 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 집행위원은 유튜브뿐 아니라 그간 주류 미디어에서 그려진 어린이와 청소년의 모습 역시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많은 구독자를 지닌 만큼 유튜브 콘텐츠도 자정 기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 활동가는 "유튜브 키즈 콘텐츠는 (젠더 관점에서) 사회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부분이 있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에서부터, 논란이 되는 젠더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교육과 고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모든 콘텐츠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 성평등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을 골라낸 거다. 주체적으로 만드는 콘텐츠가 많아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유튜브의 젠더적인 부분을 고민하는 보호자라면, 특정 콘텐츠만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같이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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