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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천우희가 꼽은 '이상하게 신났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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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 천우희가 꼽은 '이상하게 신났던' 장면

    [노컷 인터뷰] '우상' 련화 역 천우희 ①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우상' 련화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우상'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늘(20일) 개봉한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은 만만치 않은 영화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빈틈없는 연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셋은 각각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자, 목숨 같은 아들의 죽음을 맞닥뜨린 자,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자를 맡았고, 영화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긴장감 가득한 채로 전개된다.

    천우희는 '우상'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술술 읽히진 않았다고 솔직히 말했다. 숨은 단서가 많아 '왜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천우희는 이 감독의 '한공주'(2014)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우로 발돋움했고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우상'의 련화도 보통 캐릭터는 아니어서 캐스팅 과정이 길어졌고, 대본은 돌고 돌아 천우희에게도 왔다. "눈썹이 청테이프로 뜯겨서 없다"는 지문을 보고 이수진 감독은 절대 CG 처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천우희는, 결국 '우상'에 합류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천우희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곡성' 이후 또 강렬한 캐릭터를 맡은 천우희는 내심 '나한테 원하는 건 다 이런 것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미소지었다.

    ◇ '우상'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사연

    천우희가 '우상' 시나리오를 받은 건 2016년이었다. 영화 '곡성'이 개봉하고 나서였다. '곡성'에서 연기한 무명도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여서, 이수진 감독은 조금 주저했다고 한다. 다른 배우를 찾던 중, 설경구의 제안으로 대본을 받게 됐다는 게 천우희의 설명이다.

    "지문에 '눈썹이 청테이프로 뜯겨서 없다'라고 써 있었어요. 제가 아는 감독님 성격상 (이건) 분명히 CG로 안 할 거다 싶었어요. '눈썹은 밀어도 다시 난대' 이러셨고요. (일동 웃음) 그래도 제가 막 겁내니까 감독님 딴에는 저를 약간 꼬드기려고 '다른 여배우 주면 아깝지 않겠냐?' 하시더라고요. 전 아마 여배우로서 정말 탐이 나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쉽사리 결정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어요. 선배님들도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듣고 선배님들, 감독님 현장 조합이 어떨지, 글로만 봤던 게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해서 내가 한 번 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감독의 두 번째 작품에 출연한다는 건 개인적 의미도 컸다. 천우희는 "'저 어때요? 저, 잘 컸죠?'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열의가 있었던 것 같다. '한공주' 때보다 좋은 배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한공주'로 연기력과 인지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시작한 만큼, 그 보답을 하고 싶었다고. 또, '한공주'와 결이 무척 다른 캐릭터인 만큼 자신에게 어떤 새 옷을 입혀줄지도 기대됐다고 덧붙였다.

    천우희는 시나리오가 술술 읽히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숨은 단서들이 많아서다. 그는 "생각보다 천천히 읽었다. 하나하나 꼼꼼히, 내가 놓친 건 없나 하고. 어렵다기보다 생각을 많이 했다. '감독님이 왜 나를 또 시험에 들게 하나' 이런 생각 하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겠구나, 해내야 하는 데에 겁부터 났던 것 같다"면서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이라 의욕이 앞섰는데 두려움도 그만큼 컸다"고 말했다.

    ◇ 가장 신났던 장면과 괴로웠던 장면

    천우희는 가장 괴로웠던 장면으로 납치 장면을 꼽았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련화는 외형적으로도(부스스한 머리, 눈썹이 뜯긴 모습 등) 독특했으나,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많은 힘이 드는 캐릭터였다. 그중 어떤 장면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천우희는 납치 장면을 들었다.

    "처음에 납치 씬을 5일 동안 12시간씩 계속 찍었어요. 청테이프로 (눈이) 칭칭 감겨있는데 사실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서 촬영 내내 붙였어요. 식사할 때도, 화장실도 다 참았고요. 나중엔 눈이 짓무르더라고요. 아기들이 눈 오래 감고 있으면 짓무르는 것처럼요. 마지막 촬영 때 공황장애 같은 게 오더라고요. 컨테이너가 영하 15도였고 비에 젖어있었어요. 나름 컨트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촬영 때는 많이 힘들더라고요. 근데 배우니까 연기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서 압박이 됐던 것 같아요. 그 씬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마지막 씬은 힘들게 했다기보다는 아쉬운 면이 없잖아 있었어요. 배우 3명 이야기가 겹치지 않고 촬영 일정도 달랐거든요. 한 달 동안 칩거하다가 갑자기 엔딩 찍어서 그런 부분이 좀 아쉽죠. 뭐랄까, 그렇게 센 역할들을 많이 했음에도 저한테는 다른 의미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힘들었다기보다, 제가 심적으로 부담감도 있었던 것 같고,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영향을 끼쳤던 것 같고요."

    천우희는 이 감독이 매우 집요하게 영화를 찍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저도 약간 성격이 밀어붙이면 밀어붙이는 대로 더 오기가 생겨서 발동이 걸린다고 해야 하나? 오, 좋아! 내가 한 번 해 보는 데까지 해 보자. 또 하고 또 해도 지치는 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난히 집요하게 하시는 감독님들을 좀 많이 만났는데 특화가 되어서 그런지, 그런 게 저한테 안 맞진 않은 것 같다"면서 본인의 크랭크인 장면을 언급했다. 극중에서는 CCTV에 담긴 채로 나오는 달리는 장면이다.

    천우희는 "뛰어 내려가는 장면에서 40~50번을 뛰었다. 근데 이상하게 신이 나는 거다, 찍을수록. 련화로서 첫 촬영인데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아, 나도 참 만만치 않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되게 좋더라. 뭔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고, 이제야 조금 몰입하겠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 련화에게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던 시간

    천우희는 '한공주'에 이어 '우상'으로 이수진 감독과 다시 한번 작업하게 됐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천우희는 현장에서 더 펄펄 나는 스타일이었다. 아픈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했고, 연기하는 것들을 집까지 데리고 들어오는 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딱 하고 털어냈는데, 이번에는 작품이 일상에까지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촬영 때문에 눈썹을 밀어서 본의 아니게 칩거하게 됐다는 천우희는 "자의로 집에 있는 것과 어떤 타의에 의해 집에 있는 게 되게 다르더라"라고 웃었다. 련화에게 동화된 지점도 집에 있으면서 느꼈다. 단순하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련화의 마음에 공감하며 문득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평소 감상적인 태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땐 그랬다. "모든 데에 분노하고 억울하고 그랬다."

    련화라는 캐릭터에서 시작된 분노와 억울함을 벗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 천우희는 "7개월 했으니 7개월 동안 쉬겠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하지만 더 큰 일은 뜻하지 않은 데서 왔다. tvN 드라마 '아르곤'(2017)에서 함께 연기한 김주혁의 죽음이 그것이었다.

    "거의 작년 한 해 동안 작품 선택을 안 했어요, 제가. 도저히 할 의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이 작품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저한테 가장 컸던 계기가 주혁 선배님 일이었어요. 아주 의욕이 넘쳐서 촬영을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그런 일을 겪었는데… 내가 정말 배우로서 이 한 작품을 위해서 영혼을 불태워가면서 연기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나 자신도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고요. 연기 시작한 후 한 번도 흥미나 의욕을 잃은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정말 아무런 여력이 없었어요,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그때는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지금은 극복했다. 본인이 나온 작품을 보며 한 번도 운 적이 없다는 천우희는 '우상'을 보면서는 자주 울컥했다고 한다. 련화라는 인물의 불쌍함과 처절함도 있었지만, 힘든 일을 겪고도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본인 모습이 얼핏 비쳤기 때문이다.

    ◇ '선배' 한석규-설경구에게 많은 것 배워

    배우 천우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같이 연기한 배우들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천우희는 웃음 지으며 "선배님들이 진짜 예뻐해 주셨다"고 답했다. 천우희는 "두 분(한석규-설경구)한테 많이 배웠다.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같이 있으면서 느껴지는 격려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건, 두 분이 방식은 달라도 현장에서 흔들림 없이 (자기 역할을) 해내시더라. '내가 내공이 많이 부족하구나, 나도 현장에서 저렇게 하고 싶다'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자신을 낮추는 말을 했지만, '우상'에서 천우희는 존재감에서나 연기력 면에서나 두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천우희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다. 선배님들이 정말 축을 잘 잡아주셨고, 저도 그 하나를 맡은 건데 그 균형이 깨지지 않게 내 몫을 잘 해내고 싶었다"면서 "긴장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같은 '배우'로서 나도 내 몫을 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석규 선배님과) 주거니 받거니 두런두런 얘기 많이 했어요. 조금은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데 연기에 대해서요. 되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고요.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이 귀찮을 수도 있고 집중할 때 방해될 수도 있는데도요.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잘 알아야 한다'고, 그 얘기를 되게 많이 해 주셨어요. 선배님이 얘기해 주신 건 '불씨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너무 활활 타올라서 꺼져도 안 되고 너무 미약해져서 꺼져도 안 되니, 연기 계속할 수 있게끔 유지해야 한다고요. 아마 그런 연유 때문에, 제가 막 저를 불태워가면서 연기하다 보니까 혹여라도 제가 지쳐서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셨나 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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