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있다.(사진=이한형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23일 법원에 출석했다. 헌정 사상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심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오전 9시24분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들어선 양 전 대법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잠시 섰다가 법정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를 대는 기자의 팔을 손으로 밀쳐내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심사 받게 됐는데 심경이 어떤가', '심사 과정에서 검찰과 어떻게 다툴건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사법농단'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는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수사 정보 등 기밀 누설 △법원행정처 비자금 조성 등 크게 4가지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세부 혐의만 40여개가 넘는다.
이중 가장 뚜렷한 혐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개입한 의혹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고의로 지연하고, 심리 내용을 일본 기업 측 소송대리인 김앤장에 귀뜸한 혐의를 받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접 김앤장 한모 변호사와 접촉해 관련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단순히 보고를 받고 지시하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이밖에도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의료진 특허소송 등 당시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판에도 개입한 혐의도 있다. 또 사법부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이 들어서기 5분전쯤 박병대(62) 전 대법관도 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영장이 기각된 이후 두번째 심사다.
변호인단과 함께 청사에 들어온 박 전 대법관은 '후배 재판을 상담해주고 무죄 판결을 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나', '영장이 재청구 됐는데 추가 혐의 부인하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검찰은 이번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박 전 대법관에 대한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이던 2012년 2월 판사출신 정의당 서기호 전 의원이 판사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것을 취소해달라고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변론기일이 8개월 이상 열리지 않자 2013년 8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서 (당시) 의원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으니 신속하게 재판이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이날 밤 늦게나 다음날 새벽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