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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쓰러지는 드라마 현장, 아이들은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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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도 쓰러지는 드라마 현장, 아이들은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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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한 간담회
    배우 허정도, 드라마 현장에서 보호 못 받는 아동-청소년 배우 사례 전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있지만 개정 필요한 조항 많고 현장에선 무용지물
    해외는 연령별 용역 제공 시간 및 가능 시간대, 휴식 시간 자세히 규정
    학습권과 금지 행위도 명시

    지난해 4월 25일 故 이한빛 PD 추모 행사 '우리는 카메라 뒤의 죽음을 기억합니다'가 열렸을 당시 붙었던 시민들의 메시지 (사진=김수정 기자/자료사진)
    "현장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똑같이 밤을 새우고 똑같이 굶고 똑같이 화장실에 못 갑니다. 더 슬픈 것은 '참고 버텨야 다음 기회가 온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어 웬만해선 힘든 티를 안 낸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배우들은 매니저나 보호자가 옆에서 챙겨주기라도 하지만, 보조 출연하는 아이들의 경우 보호자 또한 같은 현장에 보조출연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따로 인솔자가 있다 해도 현장에서 어떤 요구를 할 분위기가 전혀 못 됩니다."

    배우 허정도는 올해 1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최소한의 권리도 지켜지지 않는 드라마 현장의 노동환경에 관해 문제를 제기했다. 수면 부족이 일상인 비인간적인 상황, 늘 위험에 노출된 세트장,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청소년 배우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정부가 마련한 표준계약서 전면 의무화, 휴식시간 명시 및 모호한 표현 수정을 포함해 현 표준계약서 개정할 것, 미성년자 보호 대책 수립 등을 제안하며 글을 맺었다.

    그로부터 약 11개월이 흘렀다. 지난해 말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된 스태프 소식이 전해져,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사고는 계속됐다. TV 드라마가 본격화된 20~30년 동안 굳게 자리 잡은 초장시간 노동 관행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죽었고(넷플릭스 '킹덤',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다쳤으며 (SBS '황후의 품격') 계약서를 쓰지 못했고('사자') 임금 미지급 사태(웹드라마 '품위 있는 여군의 삽질 로맨스')가 일어났고 급기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OCN '플레이어', '프리스트', tvN '나인룸', '손 더 게스트')당했다. 이마저도 보도된 것들만 추린 것이다. 드라마 현장에서 하루 20시간 전후의 긴 노동을 하는 건 너무 흔해서,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은 작품을 꼽는 게 빠르다.

    19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악명 높은 노동 시간과 강도를 자랑하는 드라마 현장에, 그대로 노출돼 이렇다 할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청소년 배우의 현실을 조명한 자리였다.

    허정도는 이날 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이 보고 들은 드라마 현장에서의 아동-청소년 배우들 일화를 전했다.

    "어른들하고 똑같이, 전혀 다르지 않게, 비인간적인 노동시간이 적용되고 있어요. 아이들 인격(보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윽박지르시죠. 아이들이 산만하게 굴면 윽박지르시고, 제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쌍욕을 들은 아이들도 많다고 해요. 또 하나 제가 관심 가지는 건 건강과 안전입니다. 저는 학습권까지 바라진 않아요.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되게 커요."

    19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배우 허정도도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MBC 'W' 제공)
    "아동 배우 한 명이 탈진해서 입원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런 부분(기온에 따른 촬영 일정 조정)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없어요. 지금은 미세먼지에 대한 기준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또, 세트장은 매일 가도 헷갈리더라고요. 잘돼 있는 깔끔한 곳도 있지만 어떤 곳들은 '야, 여기서 불나면 다 죽겠다' 싶어요. 아동-청소년들은 비상구가 어딘지도 모를 거고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어도 (현장에선) 전혀 (적용) 안 되고 있고, 건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세트장에 들어가면 환경호르몬 때문에 무기력해지고 머리 아파져요. 어른들도 앓고 눕고 병드는데 거기에 걸음마도 못 뗀 애들도 들어온단 말이죠. 그런 아이들과, 고령자들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가장 안전하게 만들어져야 해요."

    "아이들의 문제가 특히 크게 2가지 면에서 문제인 게, 이게 잘못된 것인 줄 모르고 자기 얘기를 할 줄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저보다 밤샘 잘하면서 잘 버티는 아이들을 볼 때 너무 슬퍼요. 저같이 침묵한 사람들이 저런 아이들을 만든 거죠. 또 한 가지는 어렸을 때 몸과 마음의 상처가 오래간다는 거예요. 우울증이든, 공황장애든, 대체로 어렸을 때의 상처와 트라우마들이 오래 가요."

    ◇ 헌법, 근로기준법,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있지만…

    미성년자인 아동-청소년의 노동에 대해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32조 제5항에는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조항이 있고, 근로기준법 역시 아동-청소년 노동자 근로계약의 서면 교부, 근로시간 및 야간·휴일 근로 제한 등을 갖추고 있다. 대중문화예술 용역을 제공하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도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두나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배우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주요 조항을 소개했다.

    우선 제21조(청소년의 대중문화예술용역 제공)를 들 수 있다. 1항은 대중문화예술사업자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계약을 맺을 땐 그 당사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 선택권 등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계약에 포함해야 한다고, 2항은 대중문화예술사업자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게 과다한 노출 행위나 지나치게 선정적인 표현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제22조와 제23조는 각각 15세 미만, 15세 이상 청소년의 대중문화예술 용역 제공과 관련한 내용을 명시했다. 15세 미만인 경우 용역 제공 시간이 1주일에 35시간을 넘기면 안 되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활동을 할 수 없다. 15세 이상의 용역 제공 시간은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당사자 합의에 따라 1일 1시간-1주일에 6시간 한도 안에서만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2014년 3월 2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보이지 않는 드라마'에서 보조출연 아동 배우들이 제작진의 연기 지시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다큐 3일' 캡처)
    청소년 유해 물건 및 청소년 유해 업소 등을 광고하는 대중문화예술제작물 제작에 용역 제공, 청소년 고용 및 출입을 금지하는 직종과 업종에 용역 알선 등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게 해서는 안 될 행위를 정해 둔 조항(제20조)도 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하다. 김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배우들의 기본권 보장을 나타낸 제21조에 관해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모호하다. 위반 행위에 대한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용역 제공 시간 규정에 대해서는 "장시간 고강도 촬영이 이어지는 국내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야간 촬영 등을 거부하기 어렵고, 다른 기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동-청소년 배우나 부모가 문제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당사자 동의 조항 역시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해외 사례 보니, 연령 세분화해 각종 규정 마련

    해외에서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 관해 더 자세하고 분명한 규정을 갖고 있다. 김 변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이 각각 용역 제공 시간, 휴식, 노동 가능 시간대를 어떻게 두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우선 연령대부터 △생후 15일~6개월 미만 △6개월~2세 미만 △2~6세 미만 △6~9세 미만 △9~16세 미만 △16~18세 미만으로 6가지로 세분화했다.

    예를 들어 생후 15일~6개월 미만은 오전 9시 30분~11시 30분, 오후 2시 30분~4시 30분 시간대에만 최대 20분간 용역을 제공할 수 있다. 한 장소에 체류할 수 있는 최장 시간도 2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나이가 올라갈수록 용역 제공 시간이 늘고 연장도 가능하다.

    영국은 휴식 시간을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5세 미만이면 휴식 없는 공연은 30분까지만 할 수 있었다. 9세 이하일 경우 휴식 없는 공연은 최대 45분까지 가능하고, 2회 이상 휴식이 없으면 3시간 30분을 초과할 수 없고, 3회 이상 휴식 없이는 8시간을 넘길 수 없다. 9세 이상이면 휴식 없는 공연 최대 1시간, 2회 이상 휴식 없이 4시간 초과-3회 이상 휴식 없이 8시간 초과 금지가 적용됐다.

    지난해 4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은 이날 참석자가 들고 있던 손팻말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아동-청소년 배우의 학습권 관련 규정도 구체적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학생이 작품에 출연할 경우 학교장 허가를 받아야 하고, 부모나 보호자, 한 명의 현장 교사와 한 명 이상의 간호사가 촬영장에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을 가졌다.

    영국 역시 아동-청소년 배우가 작품에 출연하려면 학교장의 동의를 얻고, 학습 계획과 방안을 촬영·공연 21일 전까지 거주지 교육관청에 제출해 허가받도록 했다. 아동은 촬영 현장에서 돌봄을 담당하는 샤프롱(chaperone)이란 보호자와 동행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용역 제공 시간 관련해 연령별로 나누고,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을 돕는) 선생님의 자격이 어때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나와 있어서 유용한 관점을 제시한다"고 평했다.

    ◇ 하나의 '자본'으로만 판단되는 한계… 지금 필요한 것은

    문화산업의 노동에 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아동-청소년 배우 수조차 파악이 어려웠다. 관련 자료가 많이 부족하다는 현황만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아동-청소년 배우들의 힘든 경험(비인격적인 대우)이 예능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소비되고, 우리도 거기에 무감각해진다는 게 너무 심각한 문제다. 환경의 문제를 알아서 헤쳐나가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게 굳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 위원은 "이들이 가진 연기력은 능력 자본으로, 외모는 신체 자본으로 규정된다. 인권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자본화된 연기자로만 남는 게 가장 문제"라며 "휴식 시간, 학습권 등에 대해 체계적인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장시간 촬영 및 턴키계약 강요하는 MBC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자료사진)
    허정도는 "학교든 노동부든 외부 보호자가 한 명 들어가야 한다. 에이전시 분들은 현장에선 을이기 때문에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 권력 관계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 들어가 아이들 입장을 항상 물어보고 (현장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과거 아동-청소년 배우들은 보조출연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역할이 커졌다. 작품에 대한 공이 커지는데 학습권, 수면권 등 인권에 관한 부분이 현장에서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면서 "정부에 바라는 점은 현장에 가서 현장 목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인지했을 경우 시청자들 혹은 팬들이 문제를 제기해 콘텐츠 보이콧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은 관련 법령에 처벌 조항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김기영 PD는 노동환경 이슈가 생길 경우 방송사에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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