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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부상·임금 체불 여전한 드라마 현장,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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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부상·임금 체불 여전한 드라마 현장, 무엇을 해야 하나

    [현장] '이한빛 PD 죽음 이후, 드라마 제작 현장 2년의 변화와 과제' 토론회
    지상파 4사 산별협약 체결, 제작사 가이드라인 제정, 방송스태프노조 설립
    비공식 노동자 조직화·노동권 보장을 위한 정부 부처 협조체계 정비 필요

    지난해 4월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국 드라마가 한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그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이 얼마나 노동착취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잘 조명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10월 26일, tvN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이한빛 PD가 드라마 현장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비인격적인 대우 등을 고발하며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당연한 명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최소한의 수면권, 식사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드라마 현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누군가는 죽고(넷플릭스 '킹덤',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 다쳤으며(tvN '화유기') 계약서를 쓰지 못했고('사자') 임금 미지급 사태(웹드라마 '품위 있는 여군의 삽질 로맨스' 등)가 일어났다. 이마저도 여러 보도가 나온 것만 정리한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사고는 더 잦다는 의미다.

    25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서울미디어노동자쉼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서울노동권익센터·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주최로 '이한빛 PD 죽음 이후, 드라마 제작 현장 2년의 변화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시장의 성장, 노동의 추락: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운동을 위한 제안' 발제를 맡은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는 이한빛 PD의 죽음이 '노동자 개인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CJ ENM 정규직 PD로 입사해 tvN '혼술남녀' 조연출로 투입됐다. 그는 의상, 소품, 식사 등 촬영 준비에서부터 데이터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등 여러 분야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그의 유서에 담긴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 '두세 시간 재운 뒤',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지친 노동자를 독촉하고 등 떠미는'이라는 표현에서 열악한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김 강사는 "이한빛 PD의 죽음은 방송 현장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동안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인격 존중'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CJ ENM 대표이사의 사과를 끌어내 고용주, 채용 담당, 동료와 공공의 인지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김 강사는 초반에 개인의 인권으로 시작한 투쟁은 '법적 정체성'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고용계약의 주체가 누구고, 실제로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지를 묻는 등 '산업 부문 내 공식 지위 획득을 위한 투쟁'이다.

    이한빛 PD의 죽음이 공론화된 후 드라마 현장에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미디어 제작 현장 방문·감시 활동 및 미디어 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법률 구제 활동을 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올해 1월 설립됐다. 언론시민사회단체는 같은 해 2월 드라마 제작 현장 근로 실태 조사를 요청해 답을 받았고, 7월에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출범했다.

    정부 부처 차원의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 5개 부처 합동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이 발표됐고, 올해 9월 KBS-MBC-SBS-EBS 지상파 4사가 촬영·휴식 시간에 관해 스태프와 충분히 협의할 것을 포함한 산별협약을 맺었다. 각각 CJ ENM과 KBS의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과 몬스터유니온, SBS, YG 스튜디오플렉스 등은 드라마 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25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서울미디어노동자쉼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서울노동권익센터·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주최로 '이한빛 PD 죽음 이후, 드라마 제작 현장 2년의 변화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하지만 남은 과제는 많다. 김 강사는 향후 과제로 △드라마 제작 현장 비공식 노동자의 조직화 지원 △노동이 존중받는 제작 현장을 통한 드라마 시장의 변화 유도 △드라마 제작 현장의 인권 및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정부 부처 협조체계 정비 △비공식 노동자에게 맞는 조직화 및 교육 방안 마련 등 4가지를 제안했다.

    토론자들은 각 위치에서 가능한 제안을 내놨다. 이은규 전 MBC 드라마국장은 "방송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1회당 70분, 주당 2회 140분, 일일연속극 주당 200분이라는 관행을 바꿔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일종의 사회 여론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정기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특별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면서 "KBS 사장 선임 마무리되는 대로 (방송사 간) 공동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한다. 자율 합의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 정부 부처가 들어와서 사회적으로 강제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이드라인을 강력하게 지킬 수 있게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명확하게 해야, 법률이나 시행령 개정, 편성의 구조적 변화, 턴키 계약(단일 계약자가 다른 사람들 것까지 함께 일괄 계약하는 것) 관행 근절도 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주 68시간(초과 노동을 포함한 주당 근로시간)을 3~4일에 몰아쳐서 제작하고 있어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정규직 아닌 일용직은 추가 수당이 없고 빈 촬영일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다. 임금은 줄지만 노동시간은 마찬가지"라며 "주 68시간이 아니라 일 12시간 총량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영화 스태프는 고용노동부에서 한 번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본 적이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하더라"라며 "방송 스태프에 대해서는 노동부가 노동자성을 인정했으니 감독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은 표준계약서를 쓰고 근로시간을 줄이는 제작사에 혜택을 주는 '진흥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부연했다.

    방송계갑질 119의 자문을 해 온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방송계)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이렇게 부각되는 때가 또 올까 싶다"며 "(지금이) 큰 틀의 연대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이뤄낼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키를 쥐고 드라마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당노동행위를 감시하고 후속 조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오늘(26일) 오후 7시에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센터 앞에서 '故 이한빛 PD 2주기 추모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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