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뿌리 깊은 '성공 만능주의'가 지워버린, 아이돌 연습생의 고통



문화 일반

    뿌리 깊은 '성공 만능주의'가 지워버린, 아이돌 연습생의 고통

    [노컷 인터뷰]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 저자 이종임 연구원

    지난해 8월 7일,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최종 선발된 연습생으로 꾸려진 11인조 보이그룹 워너원이 데뷔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는 지난 2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현지에서 2018 아시안게임 폐막식 무대에 오른 그룹 슈퍼주니어의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 이한형 기자/자료사진)

     

    1990년대 중후반 한국 가요계에 등장한 아이돌. 하지만 20여 년 전과 현재, 아이돌이 갖는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데뷔와 활동 시기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 등으로 나뉠 만큼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는 것이 첫 번째다. 90년대 가요계가 아이돌을 제외하고라도 비교적 다양한 형태와 장르가 함께 가는 흐름이었다면, 최근에는 아이돌과 그들이 하는 음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 것이 두 번째다.

    뛰어난 기획력과 육성 시스템을 바탕으로 유수의 소속사가 아이돌을 발굴하고 길러내는 것을 지나, 이제는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 아래 시청자에게 데뷔의 기회를 맡기는 시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의 아이돌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상'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동시에 본업 외 드라마·영화·뮤지컬·광고계까지 진출하고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이전보다 대중에게 더 친숙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돌로 데뷔하기를 꿈꾸는 연습생들의 존재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 2016년 방송돼 소녀 11명의 앞날을 시청자에게 맡겼던 오디션 프로그램 Mnet '프로듀스 101'이 대성공한 까닭이다. 덕분에 남자 버전인 '프로듀스 101' 시즌 2, 한일 여자 연습생이 뒤섞인 '프로듀스 48'까지 연달아 전파를 탔다. 시청자는 흔히 말하는 3대 기획사(SM-JYP-YG) 외에도 수많은 기획사가 있고, 거기서 데뷔를 간절히 기다리는 연습생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 가요계에 아이돌이 등장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아이돌은 여전히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개별의 케이스로 인식되고 있다. 성공의 바탕에는 대중의 사랑이 있다는 태생적 특징 때문에, '~해야 한다'는 의무만 강조됐지 존중받아야 할 권리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대중 앞에 선 아이돌도 이런데, 데뷔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아이돌 연습생은 어떨까. 이르면 10대 초반부터 신체적·정신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경쟁 논리와 성공신화를 내면화하는 아이돌 연습생의 인격과 권리는 '원래부터 없는 것'처럼 취급받기 일쑤다.

    지난 7월 발간된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이종임, 서울연구원, 2018)은 화려한 성공 신화에 가려진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을 다룬 책이다.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연구원은 아이돌 연습생도 마이너리티 그룹 안에 속한다고 봤고, 아이돌 연습생 과정을 경험한 이들과 전문가들을 심층 인터뷰해 이 책을 내놨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종임 연구원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서울연구원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주제로 사회에서 잘 얘기되지 않거나 소외된 계층을 다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마이너리티 그룹이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 난민 여성, 외국인 노동자, 가난한 예술가, 아이돌 연습생 등이 거론됐다. 그중 아이돌 연습생이 제게 의뢰가 온 것이다. 연습생들의 고생담이 성공 신화처럼 얘기돼 온 TV나 기사에 많이 노출돼 있던 게 첫 번째다. 또, 기획사가 신비주의 전략 아래 엄폐(가리어 숨긴다는 뜻)해 온 트레이닝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지 궁금했다.

    *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에서는 '마이너리티'를 육체적·문화적 특질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서 집단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로 규정했다.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을 쓴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연구원 (사진=본인, 출판사 제공)

     

    ▶ 과거 기획사에서 아이돌을 준비했던 연습생 5명(여성)과 기획사에 속해 작곡가로 활동했던 1명(남성)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았다. 책을 보면 인터뷰를 위해 아이돌 연습생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웠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어떻게 설득했나.

    섭외 과정을 잘 모르니 처음에는 공식적인 루트로 시도했다. 소속사에 정식으로 문의하고, 음악방송 관계자에게 접촉하는 식이었다. 결국은 아는 분들을 통해 비공식적인 루트로 연결됐다. 인터뷰이들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온 만큼 안전성이 보장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 친구는 자기 지인을 믿고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인터뷰이가 다른 아이돌 연습생을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얘기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아이돌 연습생에 관해) 제가 너무 기본적인 지식만 있는 게 아닐까, 너무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 아닐까 해서. 막상 만나서 얘기하니 생각보다 정말 다양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무척 놀랐다. 인터뷰했던 친구 중에는 현 기획사를 나올 준비 중인 사람도 있어서, 처음엔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면 꽤 자유롭게 얘기했다.

    ▶ 연습생들은 여러 가지 압박을 겪는다. 학교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운 연습 일정, 체중 감량을 비롯한 외모 가꾸기, 빡빡한 사생활 관리, 기약 없는 데뷔 등. 인터뷰해 보니 가장 힘들어하는 게 무엇이었나.

    제일 힘들어하는 건 '언제 데뷔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몸무게든 사생활 관리든 트레이닝 방식이든 불만스러운 점이 있어도, 데뷔만 한다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더라.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기획사에 있는 친구들이 다수였고, 데뷔가 너무 막연하고 기약이 없으니 그걸 가장 답답해했다.

    ▶ 그런데도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실 모두가 아이돌이 되길 원한 건 아니었다. 춤을 전문적으로 추고 싶었던 사람, 가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 등등. 그런데 학원이든 기획사든 모두가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야 한다는 획일화된 방향을 제시했다. 이렇다 할 매뉴얼이 없는 기획사는 더더욱 그랬다고 한다. '아이돌로 데뷔하면 연기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소위 '잭팟'이 터지길 바랄 뿐 구체적인 비전도 없이 아이돌을 권하는 사례도 있어서, 연습생 일부는 기획사의 방향성에 회의를 느끼거나 불신하기도 했다.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3번째 시리즈 '프로듀스 48'에 나온 연습생들 역시 기약 없는 데뷔를 두려움의 요소로 꼽았다. (사진='프로듀스 48' 캡처)

     

    ▶ 체계적인 트레이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인터뷰이들이 꼽은 주된 불만이었다.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최소한의 커리큘럼은 갖췄을 것 같은데.

    연습생들도 말할 때 '3대 기획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는 전제를 달곤 했다. 하지만 3대 기획사가 아니더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대형 기획사에 있던 친구도 '어떻게 이렇게 체계 없이 하지?' 하고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싶어 했는데, 목표 몸무게 달성하는 것과 춤 연습만 줄곧 시켰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들은 소속사 규모와 상관없이 트레이닝 방식이 부실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 그럼에도 연습생들은 기획사에 소속돼 있는 연습생이기에 기획사의 규율을 잘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연습생들이 밝힌 사례를 한두 개만 들어달라.

    기획사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느라 살 빼는 약을 먹고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친구가 있었다. (여자 연습생은) 키가 크든 작든 무조건 50㎏ 아래로 맞추라는 거였다. '이번 주 안에 2㎏ 빼 와' 이런 식. 직접 성형수술을 권하기도 했다. 잘 못 먹는 상태에서 춤 연습을 하니까 더 쉽게 힘들어하고, 과호흡 증상을 겪은 친구도 있었다. 근데 응급처치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밤 늦게까지 연습하느라 대중교통이 끊기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비는 연습생들 몫이고. 기획사가 데뷔를 이유로 일방적인 매뉴얼을 요구해도, 연습생들은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특별한 성과가 보이지 않고, 데뷔 날짜도 막막해서 불안과 불만이 커지는 것 같았다. 인터뷰하면서도 (연습생들이 어려움을 토로할) 소통 창구가 마땅히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생활 얘기도 들어보니 안타깝더라.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이유로 어떤 소문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또 SNS, 메신저도 안 하더라. 연습생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한 게, 기획사가 (다른 기획사) 연습생들과 정보를 교환하거나 친해지는 걸 꺼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기획사 관계자뿐인데, 그마저도 그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불안해했다.

    ▶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들이 대거 출연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었다. 다음 주에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더 채찍질해야 하고, 더 많은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서바이벌'이 생중계됐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습생과 연습생 기간이 뭔지 알게 됐으나, 동시에 이들이 겪는 혹독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워진 건 아닐까.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데뷔 경쟁을 너무 오락화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누가 1등을 하나, 내가 지지한 연습생은 몇 위인가 등 모든 것들이 데이터가 된다. 노력이 수치화되어, (그 주의) 결과로 명확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떨어진 사람들을 뒤돌아보지 않고, 뽑힌 사람들만 주목하는 걸 너무 당연시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노력과 눈물과 땀은 지나가는 과정으로 허무하게 소비되고 잊힌다. 최종적으로는 1등만 살아남는 사회라는 것이다. 처음에 시작했던 101명은 사라지고,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람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내면화한다.

    프로그램은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연 그런가. 얼마나 화면에 노출되는지도 중요한데, 방송은 시간이 제한돼 있다. 결국 연출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PD픽(PD가 선택한 연습생)이라는 말이 나오고, 공정성 논란이 이는 이유가 뭐겠나.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인 경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이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젊음의 경쟁'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아름다운 외모와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니 미디어가 반길 만하고, 거기에 (데뷔하고 싶은) 절실함이 있지 않나.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오락이 되는 게, 공정한 경쟁인지 묻게 된다.

    지난 2016년 1월 22일 첫 방송된 Mnet '프로듀스 101'은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대를 알렸다. 국내 50여 개 엔터테인먼트사에 소속돼 있거나 개인 연습생인 101명의 소녀가 최종 11인에 들기 위해 11주 동안 경쟁을 벌였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때로는 아이돌 팬이 아닌 이들보다, 아이돌 팬들이 더 아이돌과 연습생에 더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전에 아이돌을 주제로 집담회를 했을 때 한 참가자가 '윤리적 소비'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적잖이 놀랐다. 팬덤 활동을 곧바로 '소비'로 볼 수 있는가 싶어서. 제 생각에는 한국 사회가 성공에 관한 강박감이 너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의 자유로움, 게으름이 절대 용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걸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게 아이돌(연습생도 포함)인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데뷔해서 성장 과정을 봐 왔기 때문에 좀 더 약한 존재로 여기기도 하고 조언도 더 쉽게 한다. 또, 아이돌과 아이돌 팬덤의 관계가 더 끈끈하다. 음원, 음반이 얼마나 잘 되는지, 콘서트 티켓 파워가 어떤지 등에 따라 아이돌의 흥망이 결정되다 보니. (활동하는 아이돌이 대부분) 10~20대에 몰려 있어, 연령의 서열화가 투영되는 면도 있다. 아름다운 외모, 완벽한 퍼포먼스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거기에서 벗어나면 바로 실패 혹은 게으름으로 인식하게 되는 문화도 있고. 특히 여성일 경우 외모 지적이 일상화되어 있는 게 안타깝다.

    ▶ 앞서 말했듯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이나 연습생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 거의 모든 문제 제기를 무력화한다.

    한국 사회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대부분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돌린다. 최소한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먼저인데도. 그럼 10대에게 성인의 기준을 대는 것은 온당한가. 아주 소수의, 성공한 아이돌의 삶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생의 존재가 잊힌다. 이를테면 아직 10대고, 적절한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고, 수면권이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역시. 누구나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묵살되고, (그 고통도) 성공을 위한 프로세스로 비치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고 학대에 가까운 폭언이 일어나는데 이런 문제가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 결과에만 주목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성공신화가 10대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이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

    ▶ 성공을 위해 인권침해조차 감내해야 하는 것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뿌리 깊은 문제다. 각자 위치에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특히 미디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아이돌이나 아이돌 연습생의) 인권침해 사례를 성공 신화로만 비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해도, (목표 몸무게를 위해) 어디까지 밀어붙이는지 여부는 기획사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다. 누군가 이와 관련해 눈물 고백을 하더라도, 한 번 그러고(화젯거리로 삼고) 마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살쪘다고 '육덕지다', '굴욕' 이렇게 쓰는데, 이런 기사들의 영향이 사실 되게 크다. 개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 2와 '프로듀스 48' 최종 1위를 차지한 전소미, 강다니엘, 장원영. 순위 변동이 그래프로 나타나 있다. (사진=각 프로그램 캡처)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