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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서 계속 농사를 지으라는 겁니까?"



사회 일반

    "이런 데서 계속 농사를 지으라는 겁니까?"

    [르포] 염해와 고령화, 무관심에 죽어가는 농촌
    농사 못짓는 땅인데도 농지법 탓에 '속수무책'

    전남 진도 갈두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배모씨가 염해로 인해 죽어가는 농지를 바라보며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다.(사진=최창민 기자)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갈두리에 사는 배모씨(79세)는 마을 앞 간척지 논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여느 논들은 이맘때면 6월에 심은 모들이 뿌리를 내리고 푸른 빛을 뽐내기에 여념이 없지만, 여기는 그렇지 못하다.

    이 곳 진도군 군내면과 지산면 일대에는 400만 평(13,200,00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간척지가 펼쳐져 있지만 토양의 바닷물 농도(염도)가 높아 벼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염해'가 매우 심각하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의 자료를 보면 진도군 군내리 일대 간척지 논의 염도는 1600~2600ppm이다. 이는 생육장해 한계염 농도인 500~1300ppm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군내리 간척지에 농업용수로 공급되는 담수호의 염농도도 1400~1900ppm으로 농업용수로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 지역 주변 농민들은 사실상 농사에서 손을 놓고 있다. 벼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모내기를 포기해 잡초만 무성한 논들이 수두룩하다. 일부 논들은 얼마 전 비가 내렸는데도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바닥이 거북이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정부와 진도군에서도 이같은 실정을 알고 일반 벼농사 대신 사료용 벼를 경작하라고 권장하며 지원하고 있지만, 땅이 얼마나 척박한지 사료용 벼조차 자라지 못하고 잡초들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배 씨는 "90년대초 진도군에서 이 간척지를 개간해 농민들에게 임대를 줘서 농사를 시작했지만 염도가 너무 높아 제대로 농사를 지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농사가 너무 안되자 "이런 땅을 주고 농사를 지으라고 임대해줬냐"며 진도군청을 항의 방문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진도군 입장에서도 주민 소득 증대를 위해 임대한 간척지가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지역 소멸을 위협하는 고령화는 진도군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지산면 갈두리에 사는 김 모 씨(74)는 "현재 마을에 사는 남성 24명 가운데 40대는 고작 2명, 50대는 3명에 불과하다"며 "60대는 아예 없고 나머지는 모두 7,80대"라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진도군의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전체 32%로 전국 최고치 그룹에 속한다. 지난 2014년 '인구재생력지표(20~39세 여성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비)'도 진도군은 0.24로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결국 땅도 척박하고 고령화로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주민들은 새로운 소득창출원을 찾고 있다. 그렇게 찾은 것이 태양광사업이다. 주민들은 '진도신재생에너지주민협동조합'을 꾸리고 대기업 등을 접촉하는 등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진도신재생에너지주민협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1ha 간척지에서 농사를 지으면 연간 소득이 3백만 원에 불과하지만, 태양광사업을 하면 이에 4배에 달하는 1,200만 원에 이른다. 여기다 태양광 판넬 아래 염초와 같은 2차 작물을 지으면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실정을 무시한 현행법이다. 절대농지에는 오직 농사만 지을 수 있도록 한 농지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과 민주평화당 장병완 등이 지난 3월과 4월에 염해지나 절대농지에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농지법 개정을 각각 발의했지만, 국회 파행이 지속되면서 법안이 심의조차되지 못하고 있다.

    진도신재생에너지주민협동조합 양승원 조합장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염해지나 간척지 등에 신재생에너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산림훼손을 줄이면서 정부의 탈원전, '재생에너지 3020' 정책에도 부합함은 물론 고령화로 척박해진 농촌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며 농지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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