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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숨겨진 진실, 매체 폭력이라 생각… 피해자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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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숨겨진 진실, 매체 폭력이라 생각… 피해자 배려해야"

    [노컷 인터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남정숙 대표

    오는 7월 5일 개봉을 앞둔 영화 '미투-숨겨진 진실'

     

    지난달 27일, 한 포털 사이트에 영화 예고편이 올라왔다. 비장한 얼굴로 "제 안에 괴물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남성은 극중 교수로, 술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성관계를 해 봤냐고 묻는가 하면, 거부하는데도 힘으로 밀어붙여 신체적 접촉을 하고, 아빠나 친구처럼 거리 두지 말라고 당부한다. 선정적인 장면의 연속인 이 예고편 영화의 제목은 '미투-숨겨진 진실'(감독 마현진)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당한 것을 폭로했다. 현직 검사조차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권력형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이 폭로는 각계각층의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를 끌어냈다.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 나왔다"는 서 검사의 말처럼, '미투'는 피해자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불씨가 됐다. '미투'로 용기를 낸 이들을 지지한다는 의미의 '위드유'(#With_You) 해시태그 운동도 뒤따랐다.

    그런데 '미투'가 촉발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미투'라는 제목 아래 남녀의 성 행각에 초점을 맞춘 성인영화가 나온 것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미투-숨겨진 진실'이 "교수에게 성 상납하는 제자 등 갑질과 성 행각을 그린 성애 영화"이며,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린 바 있다.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이 스스로 관련 제도와 정책,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모인 단체인 전국미투생존자연대(이하 미투연대)는 '미투-숨겨진 진실'이 성폭력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의 본질을 흐리는 성인영화라며 상영금지 가처분을 준비하고 있다.

    미투연대 남정숙 대표는 3일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포스터와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끔찍했다. 악몽 같았다"며 "홍보 영상을 보면 일반적인 성인물 영화와 차별점이 없다. 그러면 굳이 '미투'라는 제목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상업영화라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인권이 먼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미투연대는 포스터와 예고편 영상이 공개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긴급회의를 열고, 배급사 SY미디어에 상영본과 시나리오 사전 모니터링을 요청했다. 또한, '미투'를 소재로 영화를 홍보하고 개봉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상영금지 가처분에 대한 논의도 했다. 그러나 SY미디어가 모니터링 요청을 거부해, 미투연대는 '미투'를 앞세워 영화를 홍보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다.

    남 대표는 "국민들이 '위드유'도 많이 하셨는데,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은 일종의 매체 폭력이자 매체 가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사람한테 악영향을 미쳐서 저희가 견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미투연대의 내용증명 발송과 상영금지 가처분 계획에 대한 입장을 듣고자 SY미디어에 연락했으나, "답변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답변만 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컷 인터뷰

    ▶ 영화 '미투-숨겨진 진실' 포스터와 예고편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본 순간에 무척 끔찍하고 되게 악몽 같다는 생각을 했다. 타이틀부터가 '숨겨진 진실' 아닌가. 미투 너머에 뭐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포스터 자체도 되게 성애적이어서 상처가 덧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미투연대가 '미투-숨겨진 진실'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공론화했다. 사전 모니터링 요청에 이어, 오늘(3일)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미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4개월 정도밖에 안 됐다. 미투 관련 사건은 거의 다 재판 중이기도 하다. 사회에 충격을 준 어떤 현상을 영화화할 때는 피해자들 상처가 덧나지 않게 시간을 좀 두고 하지 않나. 그런데 '토일렛'(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1주기였던 지난해 만들어진 영화, '우발성'을 강조해 사건이 지닌 여성혐오적 성격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았다)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그렇고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제일 심각한 건 저희가 온 생명과 인생을 걸고 폭로를 시작한 것이지 않나. 이제 시작한 거고,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사회를 진전시키려고 한 건데 (이 영화가 개봉하는 건) 사회에 역행하는 셈이다. 다시 꽃뱀 프레임을 씌우기 때문이다. 미투 폭로에 꽃뱀 프레임을 씌워서 사회를 퇴행시킨다는 의미다.

    저희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들어갈 거다. 어떤 분들은 (미투연대가 해당 영화에) 놀아난다거나, 노이즈 마케팅에 이용되고 있다고 말하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움직임을) 저지하거나 금지하는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도 필요하지 않냐고 해서 저희가 나서게 됐다. 저희가 당사자이기도 하고.

    ▶ 가처분 신청 시기는 언제로 예상하는지.

    (개봉 예정일인) 7월 5일까지 답장을 달라고 했다. 답이 오지 않을 경우 준비해서 서울중앙지법에 내려고 한다. 가능하면 기자회견도 하고 싶다. 상처가 커서 매우 괴롭다. 국민들이 '위드유'도 많이 하셨는데 도와주기는커녕 어떻게 그런 영화를… 이건 매체 폭력이자 매체 가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사람한테 악영향을 미쳐서 저희가 견제할 수밖에 없다.

    ▶ 배급사인 SY미디어는 "본 영화는 '미투'라는 이름을 붙여 성폭력 피해자들을 모욕 또는 그럴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라고 밝히면서 사전 모니터링 요구를 거절했는데.

    저희가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시나리오하고 상영본을 모니터링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더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니 저희 입장에선 홍보 영상과 포스터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걸 본 결과, 기존에 있는 성애를 다룬 성인물 영화와 똑같다. 거기에 그냥 '미투'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감독이나 배급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홍보 영상을 봐도 일반적인 성애, 성인물 영화와 차별점이 없다. 그러면 굳이 '미투'라는 제목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국민운동을 성인물에 활용한다니… 아무리 상업영화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인권이 먼저이지 않나. 피해자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하시고 사려 깊게 제목을 지었으면 좋겠다. 영화 자체를 상영 금지하라는 것보다는, 일반적인 성인영화니까 '미투'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말라는 거다. 배려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다.

    지난 3월 27일 발족한 전국미투생존자연대의 남정숙 교수. 미투연대는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이 스스로 관련 제도와 정책,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모인 단체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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