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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 재량? 과연 노동시간 단축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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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일반

    유연? 재량? 과연 노동시간 단축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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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유연근무제 전환 핑계로 수당만 삭감" 불만도
    현장과 동떨어진 재량근무, '공짜 야근' 개구멍으로 남을 수 있어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 조치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각종 유연근무제 도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도리어 임금 감소는 물론 장시간 노동이 방치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터져나온다.

    ◇"노동시간·강도는 그대로인데…유연근무 이유로 수당만 줄었다"

    장시간 노동이 관행으로 자리잡은 한국 임금 체계에서 상용직의 경우 기본급은 최저임금수준으로 지급하고, 각종 수당이 임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최대 주 52시간으로 연장노동시간이 제한되면서 자연스레 수당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동시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도 사측이 유연근무제 도입을 강행하면서 수당체계도 바꾸는 바람에 지나치게 수입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사측과 교섭을 진행하던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는 지난 1일 8차 교섭을 끝으로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최근 SK브로드밴드 자회사 홈앤서비스는 인터넷 설치 등의 업무 특성상 주말·야간 노동이 불가피하다며 4개 조로 나누는 시차근무시간제 도입을 추진했다.

    A그룹은 월요일~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B그룹은 화요일~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C그룹은 월요일~금요일 정오부터 오후 9시, D그룹은 화요일~토요일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토요일은 12시~15시) 근무하는 방식이다.

    대신 사측은 초과수당 대신 ‘유연근무수당’을 도입해 B타입엔 10만, C타입 15만, D타입 20만 원을 지급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지부는 사실상 야간·휴일 노동을 강요하면서 수당만 삭감하는 꼼수라고 주장한다.

    만약 기존 업무 방식을 유지한 채 주52시간에 맞춰 노동시간을 단축해 D타입과 같이 근무할 경우 주말· 근무 등으로 인해 월 약 60만원의 초과수당을 받아야 하는데, 유연근무제를 도입한다는 이유만으로 40만원 가까이 수당을 적게 받는다는 주장이다.

    SK브로드밴드지부 김선우 정책부장은 "업무 특성상 인터넷을 개통하는 등 장외업무를 하면 전신주에 오르는 승주 작업을 하는데, 야간에는 매우 위험하다"며 "그동안 시간외 수당, 주말당직수당 등을 받았는데, 유연근무제를 하면서 수당이 일괄 삭감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에도 주5일 40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토요일은 두 그룹으로 나눠 격주로 근무하고, 야간에는 희망자를 중심으로 근무했다"며 "주52시간에 맞춰 노동시간을 줄여도 현재 근무형태를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는데, 사측이 유연근무제를 핑계로 사실상 수당 삭감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한 장시간 노동 '재량근로'…"대상 업무 실태 맞게 법 손봐야"

    장시간 연장노동을 막겠다는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와는 달리 유연근무제의 하나인 '재량근로' 적용 업종에는 장시간 노동이 그대로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량근로'는 간단히 말해 '노사가 합의한 포괄임금제'와 유사한 제도로, 사측이 실제 노동시간과 비례해서 수당을 지급하지 않도록 허용하는 특례 제도 중 하나다.

    재량근로는 노동자가 출장 등의 이유로 사업장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울 경우 근거를 찾기 어려운 직종에 적용된다.

    이 때 노동시간을 일일이 산정하는 대신 사용자와 노조, 혹은 노동자대표가 서면 합의로 정한 노동시간만큼 일한 것으로 계산해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가 재량근로다.

    하지만 재량근로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미리 합의된 노동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이 주어지는 경우가 잦아 주52시간을 훌쩍 넘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또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를 겨우 넘기는 한국 노동계의 현실에서는 아무리 업무량이 많이 주어져도 항의하기 쉽지 않다.

    이 경우 노동자의 '재량'껏 일하는 노동시간은 하루 6시간이 될 수도, 20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노사 합의에 따라 사용자의 장시간 노동 책임은 사라진다.

    결국 과중한 업무량 아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더라도 정작 시간외수당은 제대로 받지 못하도록 허용하는 '장시간 노동의 개구멍'으로 악용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재량근로는 노동자로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량근로가 허용된 업무는 각종 연구개발이나 정보처리시스템 설계·분석, 신문이나 방송, 출판업의 취재, 편성, 편집 업무, 패션·광고 디자인 및 고안 업무 등으로 제한된다.

    이들 업종은 구체적인 노동시간을 산정하기는 어려운데다 업무수행 방법을 노동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어 노사 합의를 거쳐 노동시간을 정하도록 한 것이 재량근로의 취지다.

    이 때문에 법에는 사용자가 업무 수행 수단·시간 배분에 대해 노동자에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없도록 서면에 명시하도록 했지만, 정작 이들 업종도 일반 회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노동시간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어 위와 같은 장점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한 지상파 방송국 PD A씨는 "프리랜서 스탭이나 외주제작사 인력은 방송사 정규직과 달리 시간외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제도가 바뀌어도 제대로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들도 촬영을 나갈 때 메인PD의 요구에 따라 구체적인 출퇴근 시각이나 업무 시간 배분이 이뤄지고 있는데 재량근로가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의 조교로 근무하는 B씨는 "일반 기업처럼 엄격하지는 않지만, 교수의 지도 아래 오전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다"며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할 경우 3~4일 넘게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하는데, 모두 교수의 지도 아래 진행된다"고 말했다.

    한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 C씨도 "아침 9시 전에 미리 기자실에 출근해 출입처 관련 기사를 확인하고 출근시각에 맞춰 팀장에 보고하면 하루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시받는다"며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을 뿐, 상급자가 업무시각을 완전히 파악하고 통제하기는 일반 회사원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최진수 노무사는 "적용 직종·업무의 실태에 따라 법을 정하지 않고, 사실상 사용자들의 장시간 노동 요구에 따라 재량근무를 적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라며 "최근 노동시간 특례업종이 줄어든 것처럼 이제 재량근무가 가능한 직종 범위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적용업종에 포함됐더라도 구체적으로 업무시간을 지휘 감독한다면 재량근로를 인정하는 대신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도록 정부가 강하게 감독해야 한다"며 "근무시간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근거가 있고, 실제 근무시간이 합의된 시간보다 훨씬 웃돈다면 법정 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법적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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