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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금융' 확산...우리은행 개성지점장 "영업 재개 희망"



금융/증시

    북한 '사금융' 확산...우리은행 개성지점장 "영업 재개 희망"

    기업 여신담당 은행원, 개성지점의 산 증인으로
    "난제 극복하고 개성공단 또 열리길…통일지점이 생겨 북측 직원과 다시 일할 수 있길"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국내 은행으로서는 가장 먼저 북한으로 진출했던 우리은행도 개성지점을 철수했다. 그러나 개성지점을 완전 폐쇄하진 않았다.

    우리은행 개성지점은 지금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사 지하에 임시영업소로 계속 운영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기업들과 북한 주재원, 그리고 미래의 통일을 위해서다.

    2013년부터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까지, 부지점장으로 근무를 해왔던 최호열씨는 이제 개성지점장으로서 '통일지점'을 꿈꾸고 있다. 지난 달 30일 CBS 노컷뉴스와 우리은행 개성지점에서 만난 최씨는 "많은 난제를 극복해서 개성공단이 재개돼 은행이 재입점한다면, 또 다시 북측 직원들과 같이 일하기를 아직도 소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 여신담당 은행원, 개성지점의 산 증인으로

    최씨는 주로 본점에서 기업 여신을 지원하고 심사하는 부문에 오래 있었다. 국내 시장은 작은데 국내 기업끼리 피터지게 경쟁을 하다가 결국 도태되는 일들을 보며 글로벌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그러던 중,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곳, 북한이 보였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국내 기업이 북한에 진출해 일거리를 찾고 북한은 자본을 확보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통일경제의 발전 가능성을 엿보았다. 특히 우리은행이 2004년 개성지점에 유일하게 진출하면서 더더욱 관심은 커졌다. 2013년 개성지점 부지점장으로 발령이 났다.

    개성지점으로의 발령과 함께 삶은 180도 바뀌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없는 삶이 시작됐다. 개성지점에 발령난 직원은 남성직원 3명. 이들은 개성공단 내 숙소에서 생활했다. 개성공단으로 들어갈 때는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휴대전화를 반납했다. 인터넷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일은 팩스로 처리했다. 업무 지시는 국제전화로 했다. 남한 소식은 숙소 내 TV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우리은행 개성지점 외관 (사진=우리은행 제공)

     

    개성지점에서는 북측 여직원 4명과 함께 일했다. 모두 20대 초반으로, 북한에서 뽑아 배치했다. 최씨는 "개성에선 주로 통용화폐가 달러였다. 1달러에서 많게는 어마어마하니까, 은행 직원을 뽑아달라고 요청할 때 돈을 다루는 곳이니 다른 일반 생산근로자랑 다르다는 면을 부각했다"면서 "북측에서도 그걸 신경써서 회계나 상과 전문대 졸업자들을 배치해줬다. 숫자에 밝은 직원들이었어서 일하는데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햇수로 4년을 북한에서 일했지만, 북측 직원들과는 속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밥도 남측 직원 따로, 북측 직원 따로 먹었다. 남한에선 그 흔한 회식, 연말 송년회를 단 한 번도 한적이 없다. 정치, 경제는 예민한 문제다 보니 그에 관련된 대화를 할 수가 없어서다. 불가피한 업무 관련 이야기만 조금 할 수 있었다. 그는 "돈을 다루는 은행이다보니, 우리 개성지점은 북한과 남한의 경제의 최전선이었다"면서 그에 대해 조심스러웠던 분위기를 갈음했다.

    ◇ "난제 극복하고 개성공단 또 열리길…통일지점이 생겨 다시 일할 수 있길"

    최씨는 "북한과는 많은 것이 같지만, 남북의 오랜 '단절'로 인해 오해를 빚었던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우선 말이 좀 달랐다. 한 북측 직원이 "일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기분이 나빴다. 일을 지시하면서 혹시 어려운 부분이 있을까봐 물어본 건데, 단칼에 거절하자 언짢았던 것. 세 차례나 같은 말을 듣고 결국 그 뜻을 물어봤다. 북한에선 "일 없습니다"라는 말이 "괜찮습니다"라는 공손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하자 "아!"하고 묵혀있던 오해를 풀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있었다. 오징어튀김을 시켰는데, 먹다보니 '낙지튀김'이었던 것이다. 왜 낙지 튀김이 나왔냐고 물어보니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로, 낙지를 오징어로 부른다고 했단다. 최씨는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낙지튀김은 맛있었다"고 껄껄 웃었다.

    휴대전화가 없다보니, 개성공단 내 직원들은 주로 운동을 했다. 남측 직원들은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동호회 등을 만들어 운동을 하고, 북측 직원들은 시간 틈틈이 배구를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한다. 최씨도 동호회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여가 시간을 '산책'을 꼽았다. 최씨는 9킬로미터가 넘는 공단 외곽을 그렇게 걸었다.

    "철책 밖에는 북한 병사들이 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섰기 때문에 철책 안으로 걸었다. 특별히 위험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경계다 보니 밤에는 자제하고 아침 일찍 출근 전에 걷고, 퇴근해서 걸었다. 공기가 정말 맑았다. 개성이 서울에서 70킬로미터 거리라고 하는데 겨울엔 좀 더 추웠고 여름엔 공기가 특히 맑았다. 근무를 안하는 일요일, 공단을 한 바퀴 걸으며 바라봤던 파란 하늘,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던 개성지점에서의 근무가 마감됐을 때의 심정을 물었다. 최씨는 "개성공단이 폐쇄됐을 때는 정말 갑작스러운 발표였어서 많이 놀랐다. 그리고 입주기업들 상황을 알기 때문에 상당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1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릴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 지금,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열리고 개성공단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겠다는 고위급회담 소식까지 전해진 시점에서의 소회도 물었다.

    최씨는 "우리나라의 큰 역사의 흐름이자 대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은 남북한이 경제 협력 사업을 통해 남북한 통일 경제를 실험하는 현장이었고, 남과 북이 어우러질 수 있는 현장이었다"며 "많은 난제를 극복하고 개성공단이 재개돼 은행이 재입점해서 북측 직원들과 '통일지점'에서 같이 일하길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 북한의 금융 생활은? '현금' 위주

    개성공단의 북측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받았을까. 남한 기업들이 직원들 월급을 계산해 달러로 북측 개성공단 관리 총국에 입금하면, 북측에서 노동자들에게 줬다. 북측 직원들은 남한의 계좌를 포함, 은행을 이용할 수 없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처럼 카드나 페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현금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북한 국가화폐 및 공식 금융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비공식 사금융도 확산되어 있다.

    북한은행의 자금 부족으로 제때 인출하기 어려워 '저금 기피' 현상도 두드러지고 현금 형태로 보관하는게 흔하다. 저금을 남한처럼 재테크로 여기지 않고 국가 재정 계획 수행에 필요한 자금 동원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소수의 북한 사람들은 물건이나 돈 등을 달러나 위안화로 환전해 보관하는 재테크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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