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Girls Can Do Anything을 카톡 프사로 하면 벌어지는 일



문화 일반

    Girls Can Do Anything을 카톡 프사로 하면 벌어지는 일

    여성민우회, 페미니즘 백래시 사례 발표… 인신공격부터 노동권 침해까지 다양

    지난해 텀블벅 펀딩 2255%를 기록한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티셔츠에는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사진=텀블벅 사이트 캡처)

     

    지난 2월,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은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때아닌 공격을 당했다. 비난의 이유는 '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라고 쓰인 폰 케이스가 노출됐다는 것이었다. 소속사는 협찬받은 것일 뿐이라며 황급히 해명을 내놨고, 일부 언론은 '페미니스트 논란'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을 달아 이 사안을 다뤘다.

    소녀, 혹은 여자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급진적인 주장이 아니지만, 이름과 얼굴이 잘 알려진 걸그룹 멤버와 연결되자 이 같은 이유 모를 분노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분노는 더 많은 여성에게로 향했다. 해당 문구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 메시지로 해 놨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남성들만 있는 단체대화방에 초대돼 모욕성 발언을 들었고, 누군가는 동아리에서 퇴출당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10호에서 '라운드 테이블 :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행사를 열었다.

    백래시(backlash)는 말 그대로 '반격'이란 의미다. 1991년 나온 '백래시'에서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를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2015년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2016년에는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이 오기를 기다렸다 죽인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벌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페미니즘 이슈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로 발돋움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격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에게 공격당한 게 큰 이슈가 됐다. 이날 라운드 테이블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 때문에 피해를 본 사례를 나누고, 원인을 분석하는 자리였다.

    ◇ 페미니즘 스티커 붙였다고, SNS에 페미니즘 글 올렸다고 공격당해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페미니즘 백래시 사례를 수집했고, 12일부터는 SNS를 통해 #페미니스트라는_이유로_생긴_일'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총 182건의 제보가 왔다.

    공격당한 이유는 사소했다. △메신저 프로필과 상태 메시지에 Girls Can Do Anything을 남긴 것(16건) △SNS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을 리트윗하거나 마음을 찍고 여성단체를 팔로잉한 것(19건)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공부하거나 책을 읽은 것(16건)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한 것(62건) △페미니즘 동아리 개설 및 홍보(6건) △페미니즘 스티커나 배지를 붙이고 티셔츠를 입은 것(18건) 등의 이유였다.

    하지만 공격의 정도는 가볍지 않았다.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임원진이 '저런 프사를 한 것은 페미니즘 같은 걸 하는 게 아니냐. 저런 자가 우리 동아리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 동아리에서 강제 탈퇴당했다. 해당 문구를 폰 케이스로 쓰자 '저런 X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하는 거다. 저렇게 몰아가면서 무고한 남자들을 죽이는 게 제일 몰상식한 짓'이라는 말을 교사에게 들었다.

    트위터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 관련 기사를 리트윗한 후 디시인사이드에서 개인 신상(학교, 거주지, 가족관계, 성 지향성)을 공유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으며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욕설 테를 당한 피해자도 있었다.

    페미니즘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는 "메갈이야?"라는 질문을 듣거나, 경멸의 눈빛을 받았고, 지나갈 때마다 선배들이 "메갈이다!"라며 소리 지르고 욕을 하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괴롭히는 일이 있었다. '메갈'은 지금은 사라진 메갈리아 사이트를 말하는 것으로, 급진적인 여성주의를 지향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날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지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공개됐다. 레드벨벳 아이린도 마찬가지로 일부 팬들에게 비난을 들은 바 있다. (사진=민음사,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여학생 교복 크기가 작고 불편한 것이 옳지 않다고 했을 때도 역시 '메갈이냐?'는 물음이 돌아왔고, 수업 시간에 여성의 경력단절과 독박 육아를 언급하자 교원 능력평가에서 '너무 여성우월자'라는 반응을 들었으며, 조별 과제 중 성차별 이슈가 나와 의견을 밝히자 '메갈X'이란 소리 듣고 결국 과제를 혼자 해야 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도 있었다. 영화의 여성혐오적인 부분을 비판하자 아빠에게 메갈 소리를 들었다는 경우, 여성 인권 이야기를 했다가 온 가족에게 'SNS 군중심리에 휩쓸려 분별력 없는 빨갱이 사상에 물든 참교육 필요한 어리숙한 미성년자' 취급받았다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학내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고 홍보했을 때는 협박 전화나 욕설 메시지를 받고, 메갈이라는 소문이 나거나 일방적으로 포스터가 버려지는 일이 발생했다. 페미니즘 배지를 보고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한 경우, 페미니즘 관련 후드 집업을 입고 돌아다니자 교사가 폭언한 경우도 있었다.

    ◇ 페미니즘 향한 공격 가장 활발한 곳은 '학교'

    권리 침해 종류별로 살펴보면, 페미니즘을 이유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이들은 바로 학생들이었다. 전체 182건 중 학교 내에서 부당한 공격을 받은 사례가 55%(101건)에 이르렀다. 가시적 불이익(퇴출, 하위 평가 반영), 언어폭력, 공동체 내 낙인으로 인한 고립 등 불이익의 형태는 다양했다.

    여성 인권, 성소수자 인권 운동 동아리를 만들고 홍보했다는 이유로 홍보지가 찢겨 버려지는가 하면 '만나면 죽여버리겠다', '페미X이 나대네', '메갈X 존X 패야 한다', '어린 X들이 뭘 알고 성차별을 논하냐', '미투 운동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데이트폭력 당하고 싶냐' 등의 혐오 발언이 뒤따랐다. 교사는 한쪽으로 편향된 동아리라며 개설을 제지했는데, 그동안 이런 사례는 없었다는 게 피해자의 주장이다.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고 노트북에 페미니즘 스티커를 붙이고 가방과 겉옷에 배지를 단 한 학생은 모르는 선생님에게 배지를 떼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을 들었다. 이를 거부하자 교내 봉사와 학교 갤러리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전시가 무산됐다.

    한 학생은 중3 때 국어 수행평가로 프로그램 비평문 쓰기가 나와 모 프로그램의 여성혐오 문제를 성의 있게 다뤘지만 최하점을 받았다.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자,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했던 국어 교사를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가장 자주 일어나는 일은 '메갈' 낙인이었다. 친구에게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고 해서, 갓건배(남성 게이머들이 여성 게이머들에게 하는 태도를 미러링하는 것으로 유명한 게이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해서 그래도 사람을 죽이려고 해선 안 되자고 하니,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자, 페미니즘 책을 읽자, 여성학 시간에 '82년생 김지영'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조롱과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사상 검증을 당하거나 노동권을 침해당한 사례는 14건이었다. SNS 계정을 이유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한 외주 프리랜서, '왕자는 필요 없다' 티셔츠 인증을 이유로 성우를 해고한 넥슨 거부 운동을 했다가 공개된 작업물이 전부 삭제됐고 납품을 마친 웹툰 역시 공개되지 못한 작가가 있었다.

    SNS 계정에서 페미니즘 글을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여성단체를 팔로잉했다는 이유로 직장 상사에게 지적을 듣거나,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알바비를 받지 못하고 해고됐고, 이력서에 페미니즘과 여성아동교육지원을 썼는데 면접관이 '분란의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고 채용 탈락한 경우도 있었다.

    ◇ 백래시의 원인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10호에서 '라운드 테이블 :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행사를 열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민우회가 받은 사례 발표 외에도 은송 작가가 웹툰계 내 백래시를,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가 대학교 내 백래시를 발표했다. 게임업계 종사자는 이날 행사에 직접 오지 못해 게임계 내 백래시는 유인물로 대체됐다.

    앞선 다수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가장 배타적인 곳은 '학내'였다. 고대 여학생위원회는 고대 강간문화 철폐를 위한 오픈 세미나를 예고했다가 문과대학 측에서 '강간이란 말이 너무 자극적'이라며 장소 대여를 취소한 사례를 소개했다.

    강간 문화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회적 태도 때문에 강간이 만연하고 정상화되는 환경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을 의미하지만, '고대 남학생은 다 강간범이냐', '고대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사과해야 한다' 등 본질과 무관한 내용의 반발이 쏟아져 화제가 됐다.

    이 같은 백래시가 넘치는 것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공저자이자 여성학자인 정희진 씨는 "새로운 문맹의 시대, 앎의 양극화 시대라는 맥락이 있다고 본다"며 "(페미니즘을) 모르는 게 너무 당당하고, 그게 곧 권력이 된다"고 말했다.

    정 씨는 "한국 남성이라는 주체는 한국 여성이나 가족 관계에서 형성된 게 아니다. 외세와 싸운다고 생각한다. 이때 여성들은 자기를 도와주거나 보조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 평등을 외치니 불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저자인 손희정 씨는 "여성 인권 진보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백래시라고 한다. 백래시는 우리가 피해자이기 때문에만 닥쳐오는 게 아니다. 그만큼 목소리를 키웠고 무엇인가를 견인해 왔고,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형질 전환을 여성들이 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손 씨는 페미니즘 백래시 사례를 들으며 크게 분노했다고 밝히면서도 "뭐가 됐든 지금 닥쳐오는 백래시의 원인은 페미니즘에 있지 않고, 스스로 문맹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 있다"며 "절대로 우리 탓이 아니다. 어떻게 제대로 싸울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익인권재단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백래시의 종류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움말을 전했다. 우선, SNS 활용 행위는 헌법상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 동아리 설립은 결사의 자유에 포함되는 일반적인 자유권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 사상을 표현하는 것 역시 통상적인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인격권을 침해하는 혐오표현은 형법상 모욕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일터에서의 부당대우에 대해서는 "근로계약의 부수적 의무 중에는 근로자에 대한 보호도 포함돼 있다"며 "SNS 활용을 문제삼는 경우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가능한 사안"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행사는 백래시를 행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청중들은 박수를 치거나 환호를 지르고 문구를 따라 읽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반격이 한마디'를 즐겼다.

    "절대 우리를 막을 수 없다" / "가소롭다. 가소로워" / "우린 간다! 넌 거기 있어!" / "너희가 좋아하는 세계적 흐름이 이것이다" / "욕만 하지 말고 페미니즘 공부해 봐 생각보다 재밌어" / "변화할 줄 알아야 문명인이지" /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렸다" / "너 따위의 승인은 필요없어" / "해일이 오는데 모래알 세고 있을래?" / "변화될 사회에 너의 자리는 없을 거야" / "2018년인데 업데이트 좀 하자"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