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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박경추·신동진·허일후 아나운서가 밝힌 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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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리스트' 박경추·신동진·허일후 아나운서가 밝힌 심경

    [노컷 인터뷰]

    왼쪽부터 MBC 박경추, 신동진, 허일후 아나운서 (사진=MBC 제공)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언론사에서 이런 게 작성됐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있을 수도 없고."
    _ 박경추 아나운서

    "더 이상 발뺌하지 말고 실체를 다 밝히고, 이제라도 동료들한테 사죄의 뜻을 밝혔으면 해요."
    _ 신동진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때문에) 저는 저의 30대 방송 인생의 대부분을 날렸거든요. 이렇게 사람을 도식화시켜서, 자신과 뜻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일은 없어야죠."
    _ 허일후 아나운서

    '있을 것 같다'고 예상만 했던 MBC판 '아나운서 블랙리스트'가 실재했다는 사실이 MBC 감사 결과 2일 확인됐다. 지난해 8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가 폭로한 '카메라기자' 대상 블랙리스트 말고도, '아나운서 블랙리스트'와 전 직종을 아우르는 '방출 대상자 명단'이 작성·활용됐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MBC 감사국은 2일 오후, '블랙리스트 및 부당노동행위'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과정에서 발견된 '아나운서 블랙리스트'에는 당시 국원 42명 중 32명을 '강성', '약 강성', '친 회사적' 3가지로 분류해 평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3년 12월, MBC 아나운서국 소속 최모 아나운서가 작성한 이 문건은 당시 아나운서국 담당 임원이었던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에게 보고됐다.

    문건은 '강성'(6명)을 "왕따, 패거리 짓기 등 언론노조 복귀지침 준수"라고, '약 강성'(7명) "복귀지침을 준수하진 않지만 상황에 친 언론노조 성향"이라고 '친 회사적 성향'(19명)을 "파업 이전과 동일하게 조직에 복귀 적응하고 있음"이라고 표현했다. CBS노컷뉴스는 2일 '강성'으로 분류된 6명 중 신원 공개를 허락한 박경추·신동진·허일후 아나운서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언론사에서… 문건 작성 자체가 말 안 돼"

    박경추 아나운서는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대기발령-신천교육 발령을 거쳐,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에서 승소해 2013년 4월에야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4년 10월 대규모 인사 때 라디오에 배정돼 지난해 파업 승리 전까지 아나운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박경추 아나운서는 "사실 (아나운서국) 사람 수가 몇 명 안 돼서 이걸 굳이 문건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만들었더라.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아나운서는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언론사에서 이런 게 작성됐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더구나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이런 걸 만들었다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리고 그게(문건이) 굉장히 자의적이다. 제가 보기에는 큰 근거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쓴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충성심 같은 걸 보여주려고 쓴 것 같아서 더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박 아나운서는 "사규에 따라 공식적으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 물을 게 있다면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 최모 아나운서가 2013년 12월 작성한 '아나운서 성향 분석' 문건. '강성'으로 분류된 6명 중 박경추, 신동진, 허일후 아나운서 부분만 가지고 재편집했다. (표=김수정 기자)

     

    ◇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동료들에게 사과해야"

    신동진 아나운서는 사회공헌실에 있다가 2013년 4월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에 승소해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2월 뉴미디어 뉴스편집부로 발령 나 지난해 파업 승리 전까지 쭉 머물러 있었다.

    신 아나운서 역시 "이런 걸 예상은 했다. 작년에 파업했을 때도 카메라기자만 이러진(블랙리스트가 있진)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국이 제일 타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문건이 작성된 지 4개월 있다가 주조(정실)로 발령 난 거라 이게(블랙리스트)가 작용했을 거라고 본다. 정식 문건으로 아나운서 수장에게 보고됐다는데, 동료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신 아나운서는 "일개 사원이 자기 혼자 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시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고 우리는 그걸 신동호 국장이라고 본다. 부인하고 있다던데, 더 이상 발뺌하지 말고 실체를 다 밝히고 동료들한테 이제라도 사죄의 뜻을 밝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지난 세월에 대해서는 전혀 보상이 안 된다. 가장 방송을 치열하게 할 5년이란 시간을 바깥에서 동료들과도 거의 소통하지 못하고 회사 감시 속에 있던 거라… (관련자들은) 합당한 절차에 따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 "인간에 대한 예의까지 저버려"

    지난해 10월 16일, MBC 아나운서들이 부당노동행위와 업무방해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소한 바 있다. MBC 감사국이 2일 발표한 감사 결과를 보면, '아나운서 블랙리스트'가 인사에 활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자료사진)

     

    허일후 아나운서는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하다 2013년 4월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에서 승소해 아나운서국에 소속돼 있었지만 좀처럼 방송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는 지난해 72일 파업 돌입 전 아나운서들이 연 제작거부 기자회견 때 "(2012년 파업 이후) 출연 거부당한 일을 딱 50번까지만 셌다"고 했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업무에서 배제됐다.

    허 아나운서는 "소위 '찍힌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지 않나. 왜 그랬을까에 대한 답이 명쾌하게 나온 거다. 근데 이것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문건 자체가 많이 미흡했다. 개인의 감정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 문건이라는 얘기를 동료들과 했다"고 밝혔다.

    허 아나운서는 "저는 '반드시 퇴출해야 할 명단'(방출 대상자 명단 78명)에도 들어있더라. 아나운서국에선 박경추, 최현정, 허일후 3명이었는데 두 분은 라디오국으로 발령 냈었고, 저는 방(아나운서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뭘 얻으려고 저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6~7년 가까이 의도적인 배제와 회사 측의 탄압을 받았는데 고작 이런 문건 하나 때문이라는 것 자체가 허탈하고 씁쓸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문서 작성자를 언급하며 "사람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인간에 대한 예의까지 저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봤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밝혀지는 게 두려웠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일부 정당과 결탁해서 MBC가 직원을 사찰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잘못을 덮으려는 듯한 행동들이 정말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허 아나운서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 몇 년을 다 망가뜨려 놓고… 전 저의 30대 방송 인생의 대부분을 날렸다"면서 "나와 뜻이 같지 않다고 해서 사람을 도식화해 이런 식으로 배제하는 불행한 일은, MBC뿐 아니라 어디서도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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