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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미투' 고발자와 피해 상황 전시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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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미투' 고발자와 피해 상황 전시를 멈춰라"

    [노컷 인터뷰] '피해자 중심주의' 선언한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연극 뮤지컬 관객들의 집회 당시 나온 손피켓 (사진=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 페이스북)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피해 발언은 자신의 고통을 직시한 후 수많은 위협 요소를 무릅쓰고 하는 용기 있는 '나'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우리'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가 '나'의 목소리를 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가해자나 가해자를 보호하는 사람과 절대로 함께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가해자도 많을 것입니다. 가해자가 속해 있거나 가해자를 보호하는 단체와는 어떤 행동도 함께하지 않겠습니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에 가해자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에는 꼭 말씀해주세요. 절대로 함께하지 않겠습니다."

    지난달 22일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하 성반연)은 첫 출발을 알리는 글에서부터 피해자를 중심에 두겠다는 약속을 첫손에 꼽았다. 바로 다음에 강조된 것이, 가해자와 가해자를 옹호하는 이들과는 절대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50여 명의 연극인이 연극계 내 성폭력 사태에 대처하고 용기 있는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드러내는 것)를 지지하기 위해 마음을 모았고, 그 결과 성반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성반연은 7일 현재까지 정기 모임을 3차례 열어 현안을 논의했다. 지난달 25일 열린 연극·뮤지컬 관객 주최 집회에 함께했고, 대학생 등 성폭력 피해를 본 다른 단위와의 연대를 시도했으며, 이날은 여성가족부가 마련한 '제1차 #Me too, 공감·소통 간담회'에도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 '미투'란 이름의 성폭력 고백 움직임에 불을 붙인 건 서지현 검사였지만, 한 달 넘게 계속되는 '미투'가 속출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연극계다. 극단 대표 등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뚜렷한 상명하복 문화가 있으며, 좁은 업계라는 점이 성폭력 취약 요소로 거론된다.

    성반연은 현재의 '미투 운동'을 그간 눈치채지 못했던 다양한 성폭력을 깨닫게 되는 '각성의 계기'라고 표현하면서, 특히나 피해자들을 두 번 상처 주는 '2차 가해'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성반연은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언론이 '2차 가해'의 주체로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반연은 현재 '미투 운동'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집하거나, 후세대는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돕는 건설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등의 역할을 언론에 제안했다. 그러면서 가해자 처벌·인식 개선에 대한 부담을 '정책'과 '제도'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가져가서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 성반연은 첫 시작을 알리는 글에서부터 '피해자 중심주의'를 천명했다. 그런데도 용기 있는 발언을 한 '미투' 고발자들은 2차 가해에 노출돼 있다. 2차 가해의 종류나 사례를 설명한다면.

    첫 번째로는 언론이 주도하는 2차 가해가 있다. '미투' 고발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신상이 밝혀지고, 가해자의 면피성 발언을 옹호하는 논조로 보도하며, 추측에 지나지 않는 언급들을 대어 '미투' 고발자를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가장 악질적인 사례다. 언론의 2차 가해는 블로그, 페이스북 등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분별없이 퍼 날라지면서 '미투' 고발자의 괴로움을 가중한다.

    두 번째로는 가해자를 통한 2차 가해가 있다. 신상이 드러난 '미투' 고발자에게 가해자가 무분별하게 연락을 취해 사과를 빙자한 만남을 강요하는 것, 가해자와 그의 지인들이 '미투' 고발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고발 사실을 지우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미투' 고발자의 발언에서 드러난 많은 가해자는 위계질서의 위쪽에 자리하며, 많은 영향력과 지지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내가 아는 한 그럴 리 없다'며 가해자 옹호 발언을 통해 상황을 곡해하고 오히려 '미투' 고발자의 문제로 몰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해자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이 '미투' 고발자에게 용서와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용기 있게 발언한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악랄한 행위다.

    '미투' 고발자의 발언 때문에 본인이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게 되는 상황이 있다. 부당함을 말한 후 여러 가지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소속된 조직에서 배제·해고되거나 하는 경우다. 이는 연극계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실제 당사자가 아닌 이상 구체적으로 이런 사례가 있다고 임의로 적시하기는 어렵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 및 성폭행 피해자 16명 기자회견 '미투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가 열렸다. 김수희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그동안 '미투' 고발자들은 피해자 신상을 억지로 밝히지 말 것, '미투'를 강요하지 말 것 등을 당부했는데.

    '미투 운동' 피해자의 신상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아직도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 소재 또는 가십거리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투' 글에 드러난 사건 외의 피해자가 겪는 일상의 어려움을 많이 이들이 알 수 있도록 좋은 기사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많은 피해자가 '나도 미투를 해야 하나' 하고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성폭력 피해를 알리고 가해자의 반성을 촉구할 수 있는 창구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창구에 접근하기가 쉬워져야 하고, 많은 공동체는 성폭력 사건 처리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 언론도 2차 가해의 주범으로 선정했는데, 현재 '미투'를 둘러싼 보도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가해자의 행위를 전시하듯 보도하며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양상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범죄행위를 개인 일탈로 치부하며, 사실을 적시하는 척 가해자의 행위에서 나타나는 선정적인 부분을 강조해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차라리 아무것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더 많은 시민에게 발생한 사건을 공유하고 공론화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담론을 형성하는 언론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해를 말하려면 가해 사실과 가해자에 집중하고, 고발자와 피해 상황을 전시하는 것을 멈추기 바란다.

    지금의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이 현상의 기저에 깔린 사회적인 병폐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더욱 첨예하고 분석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시민사회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 상황을 명확히 읽어내는 전문가들의 정리된 의견을 수집해야 한다. 나아가 다음 세대는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논의하는 장을 열 수 있는 이슈 제안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바란다.

    ▶ 각 분야에 빠르게 확산되는 '미투 운동'의 의의는 무엇일까.

    지금의 '미투' 운동은 앞선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통한 발언들, 서지현 검사의 '미투' 등 용감한 발언들이 이어지면서, 연극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전반은 물론 교육·의료·종교 등 분야의 경계 없이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가슴 속에만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먼저 말한 사람들의 용기에 힘입어 드디어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이러한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그저 '내가 예민한가?' 하며 개인의 불편함, 기분이 불쾌한 문제로 치부해 왔던 사소한 순간들조차 사실은 성희롱, 성추행, 나아가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각성의 계기로서도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발언이 전방위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분야나 상황의 특수성에 기인한 단발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 즉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 문화, 성별과 위계에 의한 보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관습과 관행이라는 핑계로 반복되도록 묵인한 사회 전반의 적폐와 병폐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이를 함께 바꾸어 나가자는 용감한 제안을 던지는 것, 이것이 지금 '미투 운동'이 가지는 의의라고 생각한다.

    ▶ '미투' 이후, 각 분야에서 터져 나온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풀려야 한다고 보시는지.

    미투 글의 내용은 현 사회가 성폭력을 묵인하는, 또는 성폭력 가해를 문제로 보지 않는 시각이 만연하다는 증거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 얼마나 미비했으면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막고자 하는 피해자가 이렇게 많을까.

    조직마다 상담 창구뿐 아니라 가해자 처벌과 징계에 대한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가해자가 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으면 피해가 늘어나고, 어렵게 피해에서 벗어난 피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미투 중 내부고발 형식을 띠는 글들이 많은데, 이 피해자들이 생계와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가해자 처벌과 (성폭력 사건에 관한) 인식 개선에 대한 부담을 오히려 피해자가 지고 있다. 이를 정책과 제도 개선을 통해 사회적 차원으로 가져와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7일 오전 제1차 '#Me too, 공감·소통 간담회'를 열었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도 패널로서 참여했다.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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