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씨는 아들 원섭 씨를 잃어버린 직후 경찰에 신고했지만 찾지 못했고 50년을 찾아다녔다. (사진=한기숙 씨 제공)
지난 1969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돌연 사라진 아들, 그리고 50년간 아들을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반세기 만에 다시 만났다.
22일,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한기숙(77) 씨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을 한 채 서울 서초경찰서에 들어섰다.
늘 마음 한편에 짐으로 남아있던 잃어버린 아들이 50년 만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한 씨는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한 씨는 "기절할 정도로 좋다"고 말한 뒤 경찰서로 들어가 아들 원섭 씨를 기다렸다.
아들을 기다리는 노모의 뒤편엔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었다. 50년 만에 품에 안는 내 아들아'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50년 전 잃어버린 아들 원섭 씨가 들어섰고 한 씨와 원섭 씨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기만 했다.
모자는 '집 근처에 할머니가 사셨다'는 이야기로 과거를 회상하며 말문을 뗐다.
이어 한 씨가 "옆집에 살던 아이가 있었는데 기억하느냐"고 묻자 원섭 씨는 "약간 비탈져서 올라갔던 기억인데 맞나요?"라고 대답했고 한 씨는 "진짜 원섭이 맞네"라며 감격에 젖었다.
지난 1969년 9월 22일, 당시 5살이었던 원섭 씨는 '선물을 사주겠다'던 이웃집 누나를 따라갔고 모자의 생이별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머니 한 씨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유괴에 초점을 맞추고 다방면에 걸쳐 수사를 이어갔지만 원섭 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 사이 한 씨는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최근까지도 방송에 출연해 원섭 씨를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50년이 흘렀다.
반세기 만의 만남은 아들 원섭 씨가 지난해 10월, 서초경찰서를 찾아온 게 단초가 됐다.
원섭 씨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싶다"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은 원섭 씨의 유전자와 사진 등을 확보했다.
그러던 중 1969년 프로파일링 자료로 있던 5살배기의 사진을 확인하던 경찰은 사진 속 아이와 원섭 씨의 귀가 너무나 닮은 점에 주목했다.
경찰 관계자는 "상당히 (귀가) 유사해 1대1 비교를 했다"며 "가족의 DNA도 확보했던 상태여서 원섭 씨의 DNA와 대조했더니 결과가 99% 일치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모자는 50년 만에 만났지만 몇년 전부터 치매와 투병 중인 아버지(82)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 씨는 "경찰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