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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일으킨 파장



문화 일반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일으킨 파장

    [페미니즘으로 문화 읽기 ⑧] 아홉 살, 팟캐스트 젠더문화사

    2015년 이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문화 콘텐츠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졌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 사업단이 주최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도 한 예다. 영화·미술·공연·대중음악·웹툰·팟캐스트·SNS·게임 등 여러 장르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두루 다루는 이 강의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1강부터 10강까지 전 강의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약 100년 전,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애정발표'를 했다
    ② 영화 '아가씨' 히데코-숙희 옷으로 보는 크로스드레싱
    ③ "이게 작품이냐?"… 여성이기에 폄하 당했던 예술가들
    ④ '이상한 여자'… 1970년대 미디어의 성매매 여성 낙인찍기
    ⑤ 미치거나 죽거나, 급기야 사라진 한국영화 속 여성들
    ⑥ '썩은 여자'를 자칭하는 후죠시, 그들은 누구인가
    ⑦ 한때 고흐의 작품도 '퇴폐미술'이라고 비난받았다
    ⑧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일으킨 파장
    <계속>

    2018년 1월 현재 기준으로, 팟캐스트 포털 '팟빵'에서 방송 중인 팟캐스트는 11,501개다. 팟캐스트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때가 있었지만, '나는 꼼수다'의 벼락같은 성공 이후 어떤 청취층에게는 가장 친숙한 매체로 자라났다.

    기존 매체에서 덜 다루어졌거나 관심 두지 않는 분야나 소재를 잡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팟캐스트는, 자생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내거나 지상파 라디오와 TV까지 진출하는 '발전'을 하고 있기도 하다.

    도무지 여성 예능인이 설 자리가 없어 고민하던 두 여성 예능인이 시작한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은, 팟캐스트가 어느 경계까지 넘어 뻗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8강 '아홉 살, 팟캐스트 젠더문화사'가 진행됐다.

    영화연구자인 심혜경 씨는 올해로 9살이 된 팟캐스트 가운데 '이이제이'와 '그것은 알기 싫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세 가지 프로그램을, 젠더감수성 측면에서 바라봤다.

    ◇ '이이제이', '그알싫', '비밀보장'의 젠더적 태도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8강 '아홉 살, 팟캐스트 젠더문화사'가 진행됐다. 이날 영화연구자 심혜경 씨는 수많은 팟캐스트 가운데 '이이제이', '그것은 알기 싫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세 가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사진=김수정 기자)

     

    우선 심혜경 씨는 '제도권 밖' 매체였던 팟캐스트에서 젠더 관련한 이슈가 크게 화제 됐던 사건을 먼저 언급했다. 지난 2012년 벌어진 '나는 꼼수다' 비키니 시위 논란이었다. '나꼼수'는 김어준, 김용민, 정봉주, 주진우 네 사람이 진행하는 정치 팟캐스트로, 팟캐스트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을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2012년 1월 21일 방송에서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가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수영복 사진을 보내기 바란다고 말한 후, 가슴 부위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고 쓴 비키니 차림의 사진을 '인증'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로도 비키니 사진 인증샷들이 나왔고, 이 사건은 당시 공개사과를 요구받고 신문 칼럼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논란이 됐다.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동안 비교적 소홀히 취급됐던 '젠더적 관점'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다. 심혜경 씨는 이런 바탕 아래 '이이제이', '그알싫', '비밀보장'의 특징을 분석했다. 그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로, 팟캐스트라는 매체로 잘 된 케이스이자 자생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든 점을 들었다.

    심혜경 씨는 "젠더적 측면에서는 이 팟캐스트들이 얼마나 콘텐츠를 갖고 있고 영향력을 가지고 사람들과 오래 스킨십을 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살폈다. (세 프로그램은) 이런 특성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이제이'는 시사대담 헌정방송을 표방한다. '그것이 알기 싫다' 역시 정치와 시사를 다루며 소소한 이야기도 한다. '비밀보장'은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5천만 국민들을 위한 속 시원한 비밀보장 상담소'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는 2015년 퀴어문화축제 이후 타이틀을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무지개색으로 바꾸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심혜경 씨는 "'이이제이'는 남성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B급 멘트를 한다. 때로 욕설도 섞어가면서 굉장히 재미있는 방송을 해서 금세 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었다"며 "나중에는 '이 방송은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니 임산부, 노약자, 청소년들은 듣지 말아달라'는 안내를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썅X 특집'은 여성관을 알 수 있는 특집이었다"며 "공과 중 대부분 과(잘못)가 있는 여성을 골라 선정적인 장면과 엮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남녀는 평등하며 한국의 페미니즘은 잘못됐다'는 기조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도 '이이제이'의 특징이었다.

    심혜경 씨는 '그알싫'에 대해 "제 생각이지만, 남성들이 하는 수많은 팟캐스트 중 여성 구독자가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굉장히 젠더 중립적인 방송이다. 페미니스트 지향적인 태도를 가진 팟캐스트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알싫'은 극우 성향 사이트 일베를 분석하는 '일베 햇볕정책', 산부인과 전문의가 출연해 건강상식을 알려주는 '모두의 건강검진'과 '모두의 분만', 나무위키의 이퀄리즘 조작 사건을 다룬 '이퀄리즘 사건: 인간의 정치적 본능에 대하여' 등 젠더 이슈를 꾸준히 방송해 왔다.

    심혜경 씨는 "이 팟캐스트가 재미있는 게, '우리가 페미니스트적인 감수성이 있다', '여성 친화적이다' 하는 것을 표방하지 않고 계몽하거나 충고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밀보장'은 어떨까. 심혜경 씨는 "젠더적인 측면만 본다면 '그알싫'보다는 젠더감수성이 낮을 수도 있다"며 "여자들이 대부분인 회사(컨텐츠랩 비보)에서 미혼 여성 둘이 모여, 여성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들려주는, 사실상 코미디를 표방하는 방송"이라고 설명했다.

    ◇ '비밀보장'의 성공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은 향후 라디오 방송, TV 프로그램 등으로 발전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지난 2015년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예능총회에 나왔던 개그우먼 김숙은 "2015년은 남자 판이었다"며 "여자 예능인이 살아남기 힘든 해였다"고 말했다. 일이 없어서 '이 길이 아닌가' 싶어 적성검사를 했다는 송은이의 일화도 전했다.

    '비밀보장'은 여성 예능인이 사라진 방송 환경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프로그램 타이틀 영상까지 찍고 갑자기 하차하게 된 김숙의 사연을 들은 송은이가 더 분노하며 만든 '새 길'이 팟캐스트였다. '잘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 기획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초보였던 이들은 처음에는 이성미, 유재석 등 지인들의 음성을 땄다. 심혜경 씨는 "초반에는 두 사람이 너무 불쌍하다며 기도해 주는 이성미의 반응과 '은이야, 너 그렇게 살면 어떡하니' 하는 유재석의 염려가 방송됐다. 이제 염려와 기도는 필요없는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심혜경 씨는 "한 달도 안 돼 1위를 했다. 지금은 지상파 방송사와 관계 맺으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고, 작년 12월에는 비보 TV를 론칭했다. 2016~2017년은 김숙의 해라고 불릴 만큼 활약했고, '언니들의 슬램덩크', '비디오스타', '뜨거운 사이다' 등 여성 예능이 많이 생겼고 김숙은 거기서 중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숙은 '님과 함께'에서 가모장으로서의 캐릭터를 보여주며 40대 미혼 여성의 색다른 롤모델이 됐다. 그간 여성 예능인은 결혼을 해야 방송에 나올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 시어머니 얘기를 하면서"라며 "미혼 여성들이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송은이는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시작으로 영역을 점점 넓혀 왔다. '비밀보장'의 한 코너였던 '영수증'은 KBS 2TV에서 방송 중이다. 비보 TV를 만들어 쇼핑을 도와주는 예능 '쇼핑왕 누이'를 선보이는가 하면, 최근 시작한 '판벌려'는 일본 여고생들의 독특한 퍼포먼스를 패러디한 영상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각 영상 캡처)

     

    송은이에 대해서는 "기획자로서 엄청난 역할을 했다. 비보 패밀리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김수용도 '해피투게더3' 고정을 꿰찼지 않았나. 김생민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옆에 있던 어려운 타자들을 모두 다 끌고 '같이' 가는 행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팟캐스트로 시작했던 '비밀보장'은 SBS라디오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로, KBS2 '김생민의 영수증'으로 발전했고, 컨텐츠랩 비보는 자체 웹예능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심혜경 씨는 "이 프로그램은 내용 자체가 여성 취향이라거나 여성주의를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제작자와 진행자가) 미혼 여성들로 구성돼 있어서 자기 이야기와 성향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며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커리어를 쌓는 여성들의 활동이 빛나게 되고, 이들의 행보와 말이 롤모델이 되는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숙, 송은이가 여성주의적이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그들은 스스로 체득한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며 "여성 예능인으로서 방송 판에서 살아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고 있고, 여성과 직업인 사이에서의 갈등을 터득하고 판별하며, 주변 여성 동료들을 이끈다"고 말했다.

    심혜경 씨는 "김숙 인터뷰 중 굉장히 흥미로운 게 있었다. 자기가 잘 되고 나서 새 프로그램 기획할 때 '편한 사람 누구 있어요? 누구랑 하고 싶어요?' 하고 물어보는 게 놀라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들이 시스템 안에서 생겨나고 있고, 시스템 밖에서도 한계를 깨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비밀보장'은) 지상파와의 관련성을 생각해 내는 걸 보면서 타자 지향적인 기획력이 통했다고 봤다"고 밝혔다.

    심혜경 씨가 청중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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