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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흐의 작품도 '퇴폐미술'이라고 비난받았다



문화 일반

    한때 고흐의 작품도 '퇴폐미술'이라고 비난받았다

    [페미니즘으로 문화 읽기 ⑦] 퇴폐, 불온, 낙인-'퇴폐미술전'(2016)과 '오염'의 언어들

    2015년 이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문화 콘텐츠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졌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 사업단이 주최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도 한 예다. 영화·미술·공연·대중음악·웹툰·팟캐스트·SNS·게임 등 여러 장르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두루 다루는 이 강의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1강부터 10강까지 전 강의를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약 100년 전,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애정발표'를 했다
    ② 영화 '아가씨' 히데코-숙희 옷으로 보는 크로스드레싱
    ③ "이게 작품이냐?"… 여성이기에 폄하 당했던 예술가들
    ④ '이상한 여자'… 1970년대 미디어의 성매매 여성 낙인찍기
    ⑤ 미치거나 죽거나, 급기야 사라진 한국영화 속 여성들
    ⑥ '썩은 여자'를 자칭하는 후죠시, 그들은 누구인가
    ⑦ 한때 고흐의 작품도 '퇴폐미술'이라고 비난받았다
    <계속>

    "퇴폐미술전의 의도는 독일 국민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에, 위대한 변화에 선행하는 저 몇십 년의 문화적 데카당스의 끔찍한 마지막 장에 대한 최초의 연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건전한 판단에 호소하고, 그럼으로써 저 모든 글자 그대로 패거리들과 어슬렁거리는 무리들의 쓸데없고 불필요한 말들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그들 중 다수는 우리에게 예술적 퇴폐 같은 것이 온 적이 없다며 부정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예술에서 퇴폐는 단명하는 어리석음, 바보짓, 경솔한 실험들보다 더 나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후자들은 국가 사회주의 혁명이 없어도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퇴폐가 '필연적인 발효'가 아니었으며 예술의 본질과 지속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산된 공격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37년 나치의 기획으로 독일에서 열린 '퇴폐미술전' (사진=김수정 기자)

     

    1937년 나치가 독일을 지배했을 때 만들어진 '퇴폐미술전'(Entartete Kunst) 도록에 담긴 기획의도다. 국가가 불온하고 위험하며 나쁜 작품들을 골라 한자리에 모아두고, 전시회에 온 사람들에게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이 전시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7강 '퇴폐, 불온, 낙인-[퇴폐미술전](2016)과 '오염'의 언어들' 강의가 진행됐다.

    80년 전 독일에서 열린 퇴폐미술전을 패러디했던 큐레이터 안소현 씨는, '왜 예술은 항상 사회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는가?', '왜 전시장에선 질문이 사라졌는가? 등의 질문에서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 왜 이렇게 전시는 힘이 없을까

    '퇴폐미술전'(2016)을 기획할 당시 안소현 씨는 '예술이 사회를 먼저 규정할 수는 없는가?', '전시는 미디어인가? 전시는 어떻게 예술의 발언을 탈색하는가?', '큐레이터십(curatorship)과 검열(censorship)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등의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전시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기보다 그냥 예쁘고 밝고 명랑한 그림들로 꾸며져 있었다"며 "저는 그게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어도 (전시 중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밋밋해지는 것 같았다. (전시의 의미가) 얌전한 그림들을 보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고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 지역 미술관에서 일했던 안소현 씨는 큐레이터로서 전시될 작품을 선별할 때 경험하는 '합리적인 선택'의 딜레마를 토로했다. 기금과 연관 있는 누군가가 비난을 하면 내년에는 돈을 못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결정권자들이 싫어할 만한 것들을 자연스레 피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안소현 씨는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불편해 할 것 같다며 어떤 작품을 자제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진짜 무서운 검열은 제가 하는 이 과정, 민원과 분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걸러내고 조정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2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 7강 '퇴폐, 불온, 낙인-[퇴폐미술전](2016)과 '오염'의 언어들' 강의가 진행됐다. 이날의 강연자 안소현 씨가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주최 측 제공)

     

    또한 이른바 '문제작'을 전시했을 때 받게 되는 민원과 그에 따른 고민을 고백했다. '가능한 밝고 명랑한 예술을 해 달라는 요구'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전시는 위축됐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전시해 달라'는 민원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어린 아이들이 봐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에 이르게 했다.

    안소현 씨는 "처음에는 합리적인 이의제기라고 생각했는데 꽃이나 귀여운 동물만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성기를 무조건 성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시민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민원 역시 쉽지 않았다. 안소현 씨는 "10년 전에는 LGBT(성소수자인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통칭하는 말) 작품 전시가 안 됐다. 미술관에서 LGBT 작품은 절대 안 된다는 상태에 머물렀다면 지금도 똑같았을 것"이라며 "세금은 시민들이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해 쓰이는 건데, 왜 내일의 생각을 자극하는 전시를 하면 안 되나"라고 반문했다.

    ◇ 나치 괴벨스가 기획한 '퇴폐미술전'의 의도

    나치 최고의 선동가 괴벨스가 기획한 '퇴폐미술전'(1937)은 아주 분명한 목적이 있는 전시였다. '독일정신'에 위배되는 것을 한자리에 모여놓고 작품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시회였다는 게 안소현 씨의 설명이다.

    그는 "제가 이걸 패러디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당시 퇴폐적이라고 분류됐던 것들은 현재 미술사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고흐, 고갱,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 그들(과 작품을) 억압하고 탄압했던 사상 최악의 전시를 보며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주류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 예술을 규정했다면, 지금은 그렇게 했던 사회를 우리가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당대 예술을 규정하는 방식이 늘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주어가 '예술'이 되어, 수동태가 아닌 방식으로 사회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1937년 당시 독일에서 열린 '퇴폐미술전' (사진=김수정 기자)

     

    마음껏 욕하라고 만들어 둔 '퇴폐미술전' 옆에는 짝꿍을 이루는 다른 전시가 있었다. 바로 '위대한 독일 미술전'이다. 둘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작품을 다닥다닥 붙여 놓고, '문 위'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에 걸고, 공공연한 비난 문구를 붙인 '퇴폐미술전'과 달리 '위대한 독일 미술전'은 작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소수의 작품을 잘 보이게 전시했다.

    안소현 씨는 "퇴폐미술전은 650점이나 되는 작품을 전시했고 디스플레이도 복잡했으며 나중에 불태우거나 해외에 헐값에 반출하기도 했다"며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을 동시에 열며 좋은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을 대비해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안소현 씨는 "예술의 퇴폐가 '필연적인 발효'가 아니었으며 예술의 본질과 지속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산된 공격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퇴폐미술전' 도록 문구를 인용하며 "이 문구가 계속 반복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권력을 더 적게 가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엄청나게 예민하다. 은유의 세제곱을 보여줘도, 뭔가 기분 나쁘다고 반응하는 건 영락없이 정치인이었다"며 "소수자와 약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저들만큼 노력했는가 하는 질문이 생겼다. 권력을 지키려 저렇게 죽도록 노력하는데 우리는 너무 순진했던 게 아닐까 하고"라고 설명했다.

    '퇴폐미술전'과 대비를 이뤘던 '위대한 독일 미술전' (사진=김수정 기자)

     

    ◇ 79년 후 재현된 '퇴폐미술전'에 담긴 메시지

    2016년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진행된 '퇴폐미술전'은 1937년 나치의 시도를 패러디한 것으로, 고전적인 예술가들을 과격하고 신랄하게 비난하는 설명을 붙인 것이 특징이었다. 이때 안소현 씨는 "만일 이 패러디가 성공적이라면 비난의 기준들은 이 사회의 경직된 통념들을 드러내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퇴폐미술전'(2016)에는 한나라당 현판 모각,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의 슬로건을 형상화한 '우리는', 파격적인 자세와 강렬한 색채로 여체를 담은 'Lady X series' 등이 전시됐다.

    1937년 독일의 '퇴폐미술전'이 그랬듯, 2016년의 '퇴폐미술전'에도 작품을 모욕하는 문구들이 동원됐다. 안소현 씨는 비난의 근거와 문체, 표현을 찾기 위해 극우 성향 사이트 일베를 모니터링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 쓴 것을) 작가들에게 보냈을 때는 (의도를) 알고는 있지만 이 정도는 심하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어 다 다시 썼다"고 밝혔다.

    2016년 '퇴폐미술전' 작품 중 일부 (사진=김수정 기자)

     

    안소현 씨는 "(작가들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재미있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이게 비난인지 칭찬인지 모호하게 쓰면 누군가는 비난으로 듣고 누군가는 칭찬으로 듣더라. 여러분들은 (작품에 붙은 설명을 보고) 반어법이라는 걸 알기에 웃었지만, 정말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분들도 전시장에 많이 왔다. 그래, 이건 비난해야 한다 그러셔서 제가 몸 둘 바를 몰랐다"고 전했다.

    안소현 씨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는데 장년층 남성들이 이 전시에 유독 불쾌감을 표하거나 당황해 했다"면서 "작품 보면서 불쾌해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뭔가를 생각해 보게 됐다는 반응들이 있어 반가웠다. 내 안의 관성과 경직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페미니즘 비평'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자, 안소현 씨는 "저는 페미니즘이 모든 뭉뚱그림에 대해 맞서는 것이라고 본다.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 여성의 시선으로 봤을 때만 보이는, 그동안 놓쳤던 부분을 찾아내고 (어떤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끔 속도를 늦춰주는 비평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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