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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0대 가장은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았나



사건/사고

    왜 50대 가장은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았나

    • 2018-01-11 05:00

    [철거민의 피울음 ①] 변한 것 없는 재개발 현장, 이제 그들은 어디로 가나

    용산 참사가 9주기에 접어 들고 있지만 철거민의 피울음은 여전히 거리를 적시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현재까지, 원주민에게 철저히 불리한 재개발 방식과 이를 보호하는 제반 환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CBS노컷뉴스는 3회에 걸쳐 국가는 물론 사회와 이웃으로부터도 고립된 이들의 '반복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50대 가장은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았나
    계속


    재개발이 한창인 장위 7구역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주민들. 집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알리고 있다. (사진=정석호 기자)

     

    ◇ "어차피 나가면 죽을 거란 생각에 칼을 꽂았다"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이라는 거창한 표어가 조한정(59)씨에게는 '죽음'의 다른 말이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조 씨는 지난 해 11월 재개발에 따른 퇴거 강제집행에 불응하는 과정에서 자기 가슴에 칼을 꽂았다. 그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고 했다. 칼은 심장을 4cm쯤 비껴갔지만 조씨는 4시간 넘는 수술을 받았고,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조 씨는 시세의 절반에 불과한 보상금을 받아들고 숨을 거둘 때까지 살 거라 기대했던 집에서 차마 나갈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가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아직 취업도 하지 못한 아들들에게 얹혀 짐이 될 바엔 그 자리에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실제로 주택 대출금에 양도세, 밀린 공과금까지 처리하고 나면 조 씨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1억이 안된다.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근의 원룸도 구하기 힘든 돈이다.

    용역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장문으로 틀어막은 모습. (사진=정석호 기자)

     

    조 씨의 집은 요새가 됐다. 강제집행에 나선 인력들이 불시에 들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드나들 만한 곳은 모두 가구 등 집기류로 막았다. 장롱으로 굳게 막힌 창문 때문에, 집 안은 그의 처지만큼이나 캄캄했다. 한 때는 탐스러운 감나무가 길게 늘어졌던 대문도 몇 겹의 잠금장치가 달린 흉흉한 모습이 됐다.

    ◇ '전쟁 공포' 떠올리는 70대 "내 평생의 업적"

    주민들은 집 주위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두고 항상 노트북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사진=정석호 기자)

     

    심대구(71)씨는 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연신 흔들며 대문 밖에 누가 있는지를 살폈다. 조 씨의 집처럼 요새가 된 지 오래인 그의 집엔 바깥 상황을 살필 수 있도록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혹시나 들이닥칠 용역에 대비하느라 그의 아내는 폐쇄회로(CC)TV 화면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심 씨는 "수면제가 아니면 잠에 들지도 못한다"며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지만 하루하루 이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금 삶은 '전쟁의 공포'인 셈이다.

    지난 달 19일 동절기임에도 조합 측이 심 의 집을 부수려고 시도하자, 그는 신너를 들고 강하게 저항했다. 30년 넘게 수제노트를 만들어 판 돈을 쏟아부어 '평생의 업적'으로 세운 집이었다. 문 한짝, 타일 한 이 다 부부의 손을 거쳤다. 심 씨 스스로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다"고 느끼고 살았지만 쫓겨나면서 받게 될 돈은 살던 집의 절반 크기도 되지 않는다.

    ◇ "평범한 가정, 고 1 막내까지 투사가 됐다"

    구현회(53)씨는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이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남편과 고 1짜리 막내까지 세 자녀를 두다 보니, 하루 하루를 가족 뒤치다꺼리 하느라 바쁘게 지냈다고 한다. 22년 간 장위동에 거주한 그는 5년 전 대출을 끼고 허름한 주택을 구입했다. 마침 주택 구입 시기 재개발 계획이 철회되는 분위기라 수년을 지낸 지역에서 '평생 살 집'을 꿈꾸며 주택을 가꿨다. 강제 집행에 대비하느라 어수선해졌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곳곳에 손이 간 흔적이 보였다.

    구 씨 역시 지난 달 강제집행 당시 신너에 횃불까지 들고, 한 때는 예쁘게 가꿨던 정원 앞에 섰다. 평소엔 조용했던 그가 울분에 차 흥분한 걸 보고, 대학생 딸은 자기가 먼저 시선을 끌어야 겠다는 생각에 용역을 막아섰다. 자해를 한답시고 인근의 수퍼마켓으로 달려가 칼을 사겠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구 씨는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오죽 억울하면 평범했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겠냐"고 말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장위 7구역의 한 주택. 사다리차를 타고 용역들이 넘어올 것을 대비해 각종 집기들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다. (사진=정석호 기자)

     

    ◇ 하나하나 절절한 사연…4년 동안 7만 건 넘는 강제퇴거 집행

    한창 추운 요즘처럼 9년 전이었던 1월, 철거 과정에서 6명의 희생자가 나왔던 용산참사 이후 약탈적 사업 방식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재개발 방식이 전환됐다. 하지만 당장 한겨울에도 강제철거가 진행되는 게 현실이다. 성북구 장위동은 변한 게 없는 재개발 현장의 단면 중 하나, 일반적인 재개발 현장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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