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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스토리] 누가 손 교수를 벼랑 끝으로 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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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노컷스토리] 누가 손 교수를 벼랑 끝으로 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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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동아대 거짓 성추행 대자보 사건의 진실

    "가슴 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 앉아 있는 기분 알아요? 성추행 누명 쓴 게 슬픈 게 아니라 사랑했던 주변사람들이 다 사라진 게 제일 슬퍼요...나는 내가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에요. 해도 해도 너무해요...이제 그냥 조용히 끝내고 떠나고 싶네요"

    -2016. 5. 29. 고 손현욱 교수 사망 8일 전 동료 교수와 나눈 카카오톡

    2016년 5월 29일 고 손현욱 교수와 동료 조교수 M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 보이지 않는 음모

    "윙. 윙. 윙"

    손 교수의 전화 진동이 울렸다. A교수였다.


    '급하게 연락 바람. 문제 심각함'

    손 교수는 문자 메시지를 보고 곧바로 A교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손 : 교수님 대구 수업 받으러 왔습니다. 수업 중
    A : 부산 언제오냐?
    손 : 5시쯤이요. 무슨 문제 있나요?
    A : 와서 만나서 얘기해야 됨. 쉬는 시간 잠시 통화합세
    손 : (A교수와 통화 후)그 얘기한 학생이랑 만나서 얘기하겠습니다. 그런 일 전혀 없습니다
    A : 오케이 일 크게 안 번지게 마무리 잘 합시다
    손 : 부산가세 뵐게요. 교수님
    A : 그래

    2016년 4월 6일 오전, 손 교수 사망 두 달 전. A교수로부터 받은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성추행 소문이 돌고 있는데 손 교수와 시간강사 P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것. 손 교수는 급히 A교수에게 달려갔다.

    2016년 4월 6일 고 손현욱 교수와 A교수의 카카오톡. 당시 A교수는 학과 내 성추행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손 교수를 급히 찾았다.

    미술대학은 지난주 학과행사로 경주 일대 스케치 실습을 다녀왔다. 실습 후 저녁 자리에서 학생과 교수가 어울려 술자리도 가졌다. 그날 손 교수는 기분 좋은 마음에 술을 많이 마셨다. 손 교수는 동료 강사와 학생의 부축을 받으며 숙소로 옮겨졌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여학생의 엉덩이를 만졌다니.

    그사이 A교수의 지시로 M조교수(여)는 피해자로 지목된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은 M조교수에게 손 교수가 자신을 성추행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A교수는 일이 학교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손 교수는 술을 많이 마시고 학생에게 부축 받은 것에 사과했다. 이후 손 교수와 학생은 따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성추행 오해를 완전히 풀었다.

    2016년 4월 6일 A교수가 주선한 사과 자리 후 고 손현욱 교수와 피해자로 지목됐던 학생이 나눈 페이스북 대화 내용. 이날 손 교수와 학생은 오해를 풀었고 이후에도 연락을 할 만큼 친하게 지냈다.

    ■ 오래된 파벌

    손 교수는 학부 때부터 석사, 박사과정때까지 B교수의 지도제자였다. 석사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를 하던 손 교수를 대학 강의전담 조교수로 데려온 것도 B교수였다. 미술 작가의 세계에서도 B교수는 손 교수에게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B교수는 손 교수에게 고마운 스승이자 절대적인 존재였다. 손 교수는 그런 B교수를 믿고 따랐다.

    손 교수는 B교수의 잔일을 도맡아서 했다. 행정일에서부터 개인적인 일까지 안 하는 것이 없었다. B교수의 작품활동이 있으면 대부분의 잔일은 손 교수가 했다. B교수가 해외 출장을 가거나 귀국할 때면 늘 손 교수가 공항까지 차를 몰아야 했다. 심지어 B교수의 가족이 귀국할 때도 손 교수가 공항으로 가야했다.

    손 교수는 B교수가 호출하면 무슨 일이든 멈추고 B교수에게 갔다. 밤에도, 새벽에도, 술을 마시고 있었도 부르면 가야했다. 저녁 이후 호출의 대부분은 술자리였다. 손 교수는 늘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B교수와 함께하고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일을 했다. 계산도 손 교수의 몫이었다. 하루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정리하려다가 뺨을 맞기도 했다.

    같은 전공이지만 B교수와 A교수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두 교수는 이런저런 일로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손 교수는 A교수와 B교수 사이에서 마찰을 줄여주는 완충재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손 교수는 두 교수 사이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오늘 있은 사과 사실을 B교수에게 보고했다.

    2016년 3월 31일~4월 2일. 동아대 미술학과 야외스케치 당시 교강사 및 조교들 단체사진. 가운데 햇빛을 가리고 있는 고 손현욱 교수와 청색 옷을 입고 있는 A교수.

    한편 A교수의 주선으로 손 교수 외 또 다른 성추행 의혹이 있던 P강사도 피해 학생을 만나고 있었다. P시간강사는 성추행을 사과했다. 피해 학생도 가벼운 수준이고 일이 더 커지길 바라지 않았기에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교내 성추행 의혹은 거짓 반, 사실 반으로 끝나는 듯했다.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모르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손 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변해있었다. P시간강사의 성추행이 실제로 있었고 손 교수도 사과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술대에서는 예전에도 성추행 논란이 계속 있었다. A교수의 성희롱 논란으로 2009년 학생들이 촛불시위까지 한 적도 있다.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손 교수의 성추행 의혹은 마치 사실이 된 것 처럼 학생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사과 자리가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었다.

    2009년 동아대 미술학과 학생들이 A교수 퇴진을 외치며 촛불시위를 하던 모습. 당시 A교수는 학생들에게 성적인 농담을 하는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학교 측은 A교수에게 징계를 내렸다.

    ■ 익명 속의 루머

    미술대학 학생회장인 박 모씨도 소문을 알고 있었다. 박 씨는 미술대학 학과장인 C교수에게 성추행 소문을 이야기했다. 두 교수 외에도 A교수 역시 성추행 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학과 내 성추행 소문을 몰랐던 C교수는 박 씨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박 씨는 학과장이면서 자신의 졸업작품을 지도하는 C교수가 성추행 소문의 사실 여부를 재차 묻자 학생회장으로서 큰 부담을 느꼈다. 박 씨는 학생 신분으로 교수 성추행 의혹을 확인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고 느꼈다.

    2016년 5월 16일, 박 씨는 학생회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박 씨는 들은 소문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증거사진도 있고 교수의 실명과 사진을 밝히겠다는 협박도 함께 적었다. 작성자는 미술학과를 사랑하는 익명의 재학생으로 표시했다. 5월 19일 밤. 박 씨는 미리 출력한 대자보를 예술체육대학 현관 출입구에 붙였다.

    학생회장 박 모씨가 작성한 대자보 내용. 박 씨는 성추행 장면을 목격한 사실도 없었고 증거사진도 없었다. 4월 6일 A교수가 준비한 사과자리는 오히려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혐의를 확정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박 씨가 대자보를 붙일 때쯤 학과장 C교수는 손 교수를 술집으로 불렀다. C교수는 손 교수에게 학생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성추행 루머를 이야기했다. 손 교수는 성추행도 없었고 학생과 이야기도 다 끝났는데 소문이 계속 돌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 끝 없는 추락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손 교수 사망 19일 전.

    학교로 나온 미술체육대학 학생들은 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수많은 눈이 하얀 종이 위에 적힌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교수', '성추행', '사과', '증거사진'. 대자보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내용을 고발하고 있었다. 대자보는 학생과 교수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학과에서는 대자보를 쓴 사람을 찾는데 정신이 없었다. 박 씨는 대자보를 쓴 것과 관련해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부인했다.

    손 교수는 당시 학교에 없었다. 전날 휴대전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C교수는 손 교수에게 연락해 대자보 이야기를 전했다.

    C : 완전히 내가 볼 때는, 당신을 지금 회를 쳐 놓으려고 하는 것도 있고
    손 :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교수님?
    C : 응?
    손 : 배후에 누가 있어요?
    C : 배후에...
    손 : X 입니까?
    C : 뭐 여러. 아직 추측은 못하지. 그런데 글을 보니까 애 글은 아니더라. 내 나중에 보내줄게
    손 : 교수님. 제가 학교로 들어갈게요, 그럼 지금

    학교로 들어간 손 교수는 학장으로부터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손 교수는 B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B교수는 손 교수에게 성추행 사실이 없다면 대응하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다.

    손 교수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사이 성추행 대자보는 소문에서 소문을 타고 학생, 교수, 조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 작가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손 교수에게는 비난의 문자가 쇄도했다.

    2016년 5월 20일 대자보가 붙은 사실을 알게 된 고 손 교수와 동료 교수가 나눈 대화. 동료 교수는 손 교수의 지도교수인 B교수가 방향을 알려 줄 것이라고 말을 한다.

    ■ 알 수 없는 배후

    대자보를 본 시간강사 H(여)도 깜짝 놀랐다. 성추행이 있었다는 순간 H가 손 교수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H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뒤늦게 성추행 루머를 들은 H는 당시 성추행은 없다고 못 박았다.

    2016년 5월 24일 화요일, 사망 15일 전.

    증인이 나타나자 A교수는 재차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피해자로 지목된 학생도 같이 있었다. 그들은 '성추행은 없었다' 경위서에 서명을 했다. 하지만 4월 6일 사과자리처럼 A교수의 독자적인 판단일 뿐 학과의 공식적인 행정 절차는 아니었다.

    그날 밤, 손 교수와 H시간강사는 부산역 앞에서 서울에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미술체육대학 학장을 만났다. 학장도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서 실제 다른 교수가 성추행했다는 제보를 받은 상태였다.

    "이것은 위에 교수들의 싸움이니까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

    당시 자리에서 펑펑 눈물을 쏟던 손 교수. 손 교수는 학장에게 모든 것을 밝혔으니 이제 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대자보 사건 후 손 교수가 유일하게 마음을 놓았던 시간이었다.

    고 손교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 손 교수는 주변 교수들의 파벌과 자신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려보며 성추행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고 있었다.

    며칠 뒤 손 교수는 또 다른 루머를 듣게 됐다. 손 교수가 학과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해 공금을 횡령했고 다른 학교에서도 성추행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손 교수는 조교수이기에 법인카드가 없었다. 공금을 횡령한 사실도 없었다. 정확한 실체도, 명확한 증거도 없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학과 교수들은 대자보를 쓴 사람을 찾는 데 주력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교수들은 스승과 제자, 서로를 의심했다. 손 교수를 희생양으로 삼고 음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수소문을 했다. 이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교수들 간의 오해를 증가시키는 꼴이 돼버렸다.

    그사이 손 교수는 배제돼 있었다. 피해자도 아니라고 했고, 증인도 있었지만 정작 학과에서는 학생들에게 공식적인 공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손 교수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당시 현장에서 고 손현욱 교수와 함께 있었던 H교수가 성추행이 없었다고 확인해주었다. A교수는 경위서를 작성하고 당사자들을 모두 모아서 당시 성추행이 없었다는 서명을 받았다.

    교수들은 손 교수에게 '너를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대자보를 쓰게 시킨 것'이라며 위로 했다. 학과 내 파벌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고 손 교수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다른 교수를 임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미 예전부터 미술학과 내에서는 교수 채용과 관련해 금품이 오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손 교수의 모든 신경은 여기에 매달려 있었다. 대자보가 붙은 이후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다. A교수가 사과 자리를 만든 것도, C교수가 소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리에 있었던 증인도 나타났고 학장에게 보고까지 했는데 뜬금없이 D교수가 자신을 부른 것도 이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손 교수는 지도교수인 B가 왜 계속 기다려라고만 말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남자답고 강인했던 손 교수는 스트레스로 점점 무너져 갔다.

    고 손현욱 교수가 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내용. 당시 손 교수는 조교수 신분으로 법인카드 자체가 없었다. 손 교수는 또 다른 루머가 계속 생성되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꼈다.

    ■ 절망과 좌절

    2016년 6월 2일 목요일, 손 교수 사망 5일 전.

    손 교수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조형물을 다루던 미술계에서 관행처럼 돼 있던 작품 리베이트 문제였다. 시공사로부터 작품을 수주해 돈을 받으면 일부는 다시 시공사로 돌려주고 이중 일부는 관련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었는데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리베이트 세부조사 화살이 손 교수를 향하고 있었다. 손 교수는 완전히 실의에 빠졌다.

    손 교수는 지도교수인 B교수를 찾아갔다. 손 교수는 힘들어서 더는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네 일이 아니다. 교수들의 싸움...전체 파벌 싸움이다. 단기간에 끝날 것이 아니라 장기간 갈 것이다. 정신 차려라"
    "저는 답답하고 미치겠습니다...죽을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듭니다"

    같은 대화가 반복 됐고 언성이 높아졌지만 대화가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자리는 별 소득 없이 끝났다.

    다음날 새벽 손 교수는 B교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초심 잃지 않고 다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실망만 안겨드려서 죄송합니다. 푹 주무시고 학교서 뵙겠습니다'

    스승인 B교수와 언쟁 후 다음날 새벽 손 교수가 B교수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손 교수는 어제 자리에 함께 있던 후배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어제 내가 했던 얘기는 그냥 다 잊어라. 나는 그냥 B교수님 처분에 따를란다'

    아들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느낀 어머니는 B교수에게 연락을 했다. 아들이 학교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B교수는 어머니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지금 학교에서 파벌싸움이 있고 A교수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잘릴 것인데..그러면
    앞으로 손 교수가 조소과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벌써 이 녀석이 못 견딘다...8월까지는 갈 것 같은데"

    B교수는 평소 자신과 파벌이 있던 A교수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징계를 받을 것이고 앞으로 두 달은 더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 당시 학교는 총장의 재임을 두고 논의가 오가는 중이었다.

    B교수와 갈등이 있은 뒤, 손 교수는 차에 소주 두 병, 번개탄 두 개, 청테이프를 싣고다녔다. 손 교수는 지인들에게는 연락하고 사과와 인사를 남겼다.

    고 손현욱 교수가 투신 전날 친구랑 나눈 대화. 손 교수는 B교수와 만남 이후 주변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마지막 통화

    2016년 6월 7일 화요일, 사망 당일. 손 교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하고 형님(친형)한테 소홀히 했어요. 내일 형님이랑 파라다이스 호텔에 가서 맛있는 저녁 먹어요."

    "그래. 그러자"

    며칠 동안 집으로 오지 않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라앉은 목소리. 손 교수는 지금 자신의 몰골이 말이 아니니 잠을 푹 자고 말끔한 모습으로 가자고 했다. 근래 아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손 교수는 형에게도 전화를 걸어 식사 이야기를 했다.

    얼마 뒤 손 교수가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흐느끼는 목소리 끝에는 죄송함이 가득했다. 손 교수가 숨을 몰아쉬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엄마. 죄송해요. 사랑합니다!"

    손 교수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쥐고 있던 오른쪽 팔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두 팔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손 교수는 받지 않았다.

    어머니는 손 교수를 찾아 나섰다. 손 교수는 자신의 오피스텔에 있었다. 어머니가 오피스텔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쾅!"

    어머니의 신고로 119가 막 도착하던 순간 손 교수가 9층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윙. 윙. 윙"

    손 교수의 전화 진동이 계속 울렸다.

    고 손현욱 교수의 마지막 통화 기록. 손 교수는 어머니와 마지막 통화에서 사랑한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너무 늦은 진실



    -2016년 6월 6일 손 교수 사망 1일 전 지인과 나눈 카카오톡

    손 교수의 장례식장에서 교수들은 서로 배후가 있다고 느끼고 의심하고 있었다. A교수는 평소 대자보를 쓴 배후로 D교수를 의심하고 있었다.

    B교수의 예언이었을까? 8월이 되자 신임 총장이 임명됐다. 학교 측도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고 손 교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에서는 대자보를 붙인 학생과 배후를 찾는 데 주력했다. 수사과정에서 학생회장인 박 씨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불응했다. 심적 부담을 느낀 박 씨는 대자보를 쓴 것을 자백했다.

    허위 대자보를 쓴 박 모씨의 자술서. 대자보 부착 이후 줄곳 범행을 부인하던 박 씨는 손현욱 교수 투신 후 경찰조사가 시작되자 범행을 자백했다.

    손 교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경주 스케치 당시 A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학생이 나타난 것. 어렵게 자리에 나온 학생은 손 교수의 어머니에게 경주 스케치 당시 A교수가 엉덩이를 만졌다고 증언했다. 소문에 떠돌던 성추행범은 손 교수가 아니었다.

    학교 측의 조사 결과 A교수가 2016년 경주 스케치 현장에서 한 학생을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추행과 별도로 2015년 학교 주최 전국 고등학생 미술실기대회에서 A교수가 당선 학생들의 순위를 조작한 정황도 파악했다.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A교수를 파면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거짓 대자보를 쓴 박 모 씨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학교 측은 A교수가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A교수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은폐할 의도로 경위서를 작성하게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A교수가 손 교수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 스승과 제자

    2017년 11월 22일 손 교수 사망 533일 후.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4단독 김웅재 판사는 허위내용을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산 동아대 퇴학생 박 모(26) 씨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씨가 마치 손 교수의 성추행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고 증거까지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해 진실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했다고 적시하며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박 씨 측은 형이 무겁다고 판단 재판부에 항소했다.

    학교 측으로부터 성추행한 혐의를 인정받아 파면당한 A교수는 현재 학교 측과 복직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복직 소송과 함께 파면 가처분 신청도 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이에 A교수 측은 항고한 상태다.

    A교수는 취재진에게 "학교 측의 파면 처분의 근거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조사결과뿐"이라며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반면 학교 측은 "적합한 절차를 통해 피해학생에게 학교 측이 최종적으로 피해 사실을 확인 했다"고 말하며 A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성추행 피해 학생의 경우 아직 막심한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어서 취재진에게 이와 관련한 증언을 피하는 상태다.

    지도교수였던 B는 현재 작품 보수비 부당환급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 B교수는 학교 측에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학교 측은 현재 검찰조사 중인 것을 고려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B교수는 취재진에게 "손 교수와 관련해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C교수와 대자보를 쓴 박 씨 사이에 제기됐던 의혹은 드러나지 않았다. C교수가 박 씨에게 사실관계를 확인을 지시 했지만 그것이 대자보를 의미하진 않았다. 학교 측에서는 다른 시간강사를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C교수를 조사했지만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가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아 조사가 종료됐다.

    C교수는 취재진에게 "대자보 부착 당시 손 교수를 만났던 것은 친한 제자이기 때문에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였다"라며 "박 씨에게 대자보를 쓰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시간강사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밝혔다.

    A교수로부터 대자보를 지시한 배후로 의심받던 D교수는박 씨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모든 것은 손 교수의 어머니가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면서 밝혀질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진실을 찾기 위해 고인이 삭제한 휴대전화를 복원했다. 전화에는 어머니가 그동안 몰랐던 아들의 고통히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금도 어머니는 손 교수의 휴대전화를 보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손 교수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슬픔을 참으려 애써왔던 어머니. 그녀는 인터뷰 마지막때쯤 기자 앞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만약, 하늘나라에 닿는 계단이 있다면 올라가 현욱이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제 편하게 눈 감고 쉬어'라고'"

    작가 고 손현욱 교수 잠들다
    (1982.11.19.~2016.06.07.)

    *이 기사는 고 손현욱 교수의 죽음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수사자료와 조사자료, 판결문, 주변 지인, 학생, 관련 교수, 유가족, 피의자, 변호사, 피의자 변호인, 학교측 관계자 등 20여명을 인터뷰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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