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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폭스바겐…한국에선 느긋했던 이유



경제 일반

    두 얼굴의 폭스바겐…한국에선 느긋했던 이유

    폭스바겐은 유럽을 제패했다. 유럽 뿐 아니라 '국민의 차'란 이름에 걸맞게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았다.

    그런데 유독 북미(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는 힘을 못 썼다. 휘발유가 싼 북미에서는 승차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디젤 차량을 선호하지 않았다. 디젤 차량에 적용되는 환경기준도 매우 엄격했고 하이브리드 차량, 전기 차량까지 부상하고 있어 폭스바겐이 주력으로 미는 디젤 차량이 설 자리가 없었다.

    반전이 일어났다. 폭스바겐 디젤이 미국 환경기준을 통과한 것.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달았지만 연비와 차량 성능까지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2009년부터 폭스바겐의 인기는 수직 상승했고 미국 내 자동차 브랜드 점유율을 높여갔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박종민 기자

     


    디젤 차량이 많은 유럽은 환경문제와 차량 성능이 언제나 딜레마였다. 환경을 위해서는 차량에서 발생한 배출가스를 다시 엔진에서 재연소 하고 걸러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차량은 추가로 연료를 소모하게 되고 자연스레 연비와 성능도 떨어졌다.

    유럽 비영리단체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폭스바겐 차량을 '모범 사례'로 정밀 분석해보기로 했다.

    ICCT는 2014년 초 미국의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 공학부 산하 연구소에 실험을 의뢰했다. 미국 폭스바겐 사례에서 보았듯이 디젤 차량에서 발생하는 배출가스를 제어하는 기술이 차량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실험 대상은 BMW X5(SUV), 폭스바겐 제타(세단), 폭스바겐 파스트(세단). 모두 디젤차였다.

    보통 배출가스 검사는 실내에서 차량을 러닝머신과 같은 곳 위에 올려놓고 진행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실제 도로를 주행하기로 했다.

    세 대의 디젤 차량은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다.

    실험 결과는 뜻밖이었다. BMW X5는 실내 검사에서 나온 배출가스 수치와 도로 주행때 나온 배출가스 수치가 비슷했다. 반면 폭스바겐 제타와 파사트는 도로주행 배출가스 수치가 훨씬 높았다.

    연구진은 당황했다. 자신들의 연구가 잘못 설계된 것만 같았다. 실험 결과에 대해 폭스바겐에 문의 했지만 이렇다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연구는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미국환경보호청(EPA)에 전달됐고 끝이 났다.

    ◇ 미국에서 멈춰선 이유

    환경부에서 점검 중인 아우디 차량. 노컷뉴스 자료사진.

     


    2015년 9월 18일(현지시간. 이하 미국 현지시간).

    미국환경보호청(EPA)은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폭스바겐 디젤 엔진 승용차에서 배출가스 정보를 조작하는 자동차 소프트웨어가 발견됐다"

    폭스바겐 차량에 담긴 소프트웨어는 실험실 내 테스트 환경과 실제 도로주행 환경을 구분했다. 실내 테스트 환경에서는 배출가스를 제거하는 장치(LNT)가 작동됐다. 당연히 배출가스 수치도 문제 없었다.

    하지만 차량이 실제 도로주행으로 인식할 때에는 배출가스를 제거하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폭스바겐 차량에서 허용기준의 최대 40배가 넘는 이산화질소가 배출됐다.

    발표는 곧바로 언론을 타고 세계로 뻗어갔다. 폭스바겐 주가는 급락했다.

    9월 20일.

    "고객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폭스바겐그룹 마틴 빈터콘 회장은 곧바로 사과했다. 이틀 뒤 공식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리며 재차 사과했다.

    미국 미시건 연기금은 폭스바겐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내 첫 집단소송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리미엄 모델인 아우디 차량에서도 조작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것으로 발표됐다. 이어 고급브랜드인 포르쉐 차량에서도 문제가 발견됐고 얼마 뒤 휘발유 차량에도 조작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폭스바겐의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11월 9일. 폭스바겐은 미국과 캐나다의 자사 디젤차 소유주에게 3년간 무상 수리, 1인당 1000달러(약 116만 원) 상당의 상품권과 바우처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새 차로 바꿀 때는 2000달러(약 232만 원)까지 보상할 것도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미국 법무부는 2016년 1월 5일 최대 900억 달러(약 107조 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건이 중복돼 있지만 만약 폭스바겐이 모두 패소할 경우 피해 금액은 말그대로 천문학적인 수치였다.

    얼마 뒤 폭스바겐 그룹의 마티아스 뮐러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을 방문해 공식 사과했다.

    "소비자, 정부 당국, 미국의 대중을 실망하게 했다"

    폭스바겐 그룹 최고경영자는 미국 내 폭스바겐 중형 SUV 생산을 위해 약 9억 달러(약 1조 850억 원)를 추가로 투자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연방환경 당국은 폭스바겐이 제출한 리콜 계획을 거부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가세했다. '클린 디젤' 허위 광고 명목으로 폭스바겐에 소송을 제기했다.

    4월 20일. 폭스바겐은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들에게 1인당 평균 5000달러(약 566만 원)씩 배상할 것을 미국 법무부와 합의했다.

    이후 폭스바겐 마타아스 뮐러(CEO)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직접 찾아 사과했다.

    결국 폭스바겐은 미국에 소비자 보상과 벌금 등으로 총 150억 달러(약 17조 7000억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 한국에서 멈춰선 이유

    노컷뉴스 자료사진.

     


    2015년 9월 19일(국내시간) 미국 환경보호청의 발표는 곧바로 한국으로 전달됐다.

    하지만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폭스바겐코리아는 그 어떤 공식 발표도 하진 않았다.

    이틀이 지난 뒤 폭스바겐코리아는 입을 열었다.

    "국내와 미국의 관련 법규가 달라 생산 시 엔진 세팅 자체가 다르다. 한국 내 판매 제품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독일 본사에 문의한 상태다"

    일부 내용은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판매된 폭스바겐 디젤 엔진(EA189)모델의 경우 질소산화물제거장치(LNT)가 장착돼 있었다. 조작 소프트웨어는 LNT를 조작하는 원리이므로 제거장치가 장착되지 않은 차량은 문제가 없었다.

    국내에 수출된 폭스바겐 차량의 경우 LNT가 장착돼 있지 않았다. 원가절감의 이유였다. 다만 배출가스 재순환 장치(EGR)는 장착돼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과 환경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에 수출된 폭스바겐 차량은 처음부터 배출가스를 많이 방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같은 날 환경부도 입을 열었다.

    "실제 주행 모델과 인증 모델이 다른 만큼 재조사가 필요하다"

    환경부 역시 국내 수입모델의 경우 질소산화물제거장치가 없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환경부는 평택항에 입고 중인 폭스바겐 차량을 묶여두고 무작위로 검사하기 시작했다.

    10월 1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국내에서 판매된 배출가스 불일치 차량이 총 12만 대라고 발표했다. 2010년식부터 2015년식까지 모델도 다양했다. 이후 폭스바겐코리아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사과하고 리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보상이나 배상 언급은 없었다.

    대신 신차구매 고객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전 차종 60개월 무이자 할부, 차종별 10~15% 추가 할인.

    배출가스 조작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국내 판매량도 다시 급증했다. 11월 판매량은 전년보다 더 증가했다.

    환경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스바겐 차량에서 속임 장치를 '임의로 설정'한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폭스바겐 측은 LNT가 장착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지만 정부는 '임의 설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결국 환경부는 폭스바겐에 과징금 141억 원을 부가했다.

    그런데 폭스바겐의 태도는 안이했다.

    이유가 있었다. 국내 수출 모델은 미국에서 논란이 된 저감장치(LNT)가 없는 점. EA189 엔진 장착 차량은 2007년 12월 12일부터 2011년 12월 30일까지 환경부로부터 합법적으로 인증을 받았던 점. '임의 설정'에 관한 환경부 고시는 2012년 1월부터 시행됐다는 점. 거기에 최근 폭발적인 판매량까지. 폭스바겐은 지금 상황이 불리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2016년 1월 6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시정계획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결함 원인 - 배출가스 저감 장치의 동작을 저해하는 소프트웨어 장치로 일부 환경에서 도로 주행 시 배출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

    시정 방안 – 해당 차량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작업을 해야 하고, 여기에 1.6 엔진은 흡입공기제어기 장착 작업을 해야 함.

    딱 두 줄이었다. 이에 환경부는 결함시정계획서가 상당히 부실하다고 판단했고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검찰에 고발했다. 대기환경보전법상 결함시정명령 위반 혐의였다. 배출허용기준 미달 제작·인증 혐의로 추가 고발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폭스바겐을 허위·과장광고 혐의로 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사무실을 압수 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차량판매 리스트, 금융 자료를 확보했다.

    5월 13일. 이번엔 검찰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인증 관련부서와 인증 대행사 2곳을 압수 수색을했다.

    6월. 검찰조사 결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서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국내 인증기관의 절차를 어기고 배출가스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부품을 임의로 바꿔 판매한 것. 기존 EA189 엔진의 배출가스 조작건과 다른 추가 사항이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배출가스와 연비, 소음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 총 139건의 시험 성적서 조작한 혐의와 연비조작 소프트웨어를 두 차례 걸쳐 조작한 혐의가 포착됐다. 검찰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인증담당 A씨를 구속했다.

    7월. 환경부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새로운 문제점을 근거로 국내 판매 인증취소 검토에 착수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요하네스 타머(가운데) 총괄대표와 정재균(왼쪽) 부사장이 2016년 7월 25일 오전 인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열린 판매금지 및 인증취소 관련 비공개 청문회에 참석, 정부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새로운 조작사실 때문에 상황이 불리해지자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대형 로펌에 문을 두드렸다. 김앤장과 법무법인 광장이었다. 정부의 차량 판매 정지 결정에 반발해 이 두 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정해 행정소송을 준비했다.

    논란이 되는 모델의 자발적 판매 중지도 선언했다. 겉은 판매 중지 선언이지만 실상은 새롭게 바뀌는 대기환경법 개정안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법이 시행되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총 680억 원의 추가 과징금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먼저 판매중지를 선언해 과징금 규모를 178억 원으로 낮췄다.

    환경부는 예정대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23개 차종, 80개 모델, 8만 3000대의 인증을 취소하고 판매를 금지시켰다. 사실상 퇴출이었다.

    8월 30일. 마침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입을 열었다.

    "환경부가 내린 인증 취소 및 판매 중단, 리콜 명령, 과징금 부과 조치를 모두 수용하겠다"

    미국에서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폭스바겐은 한국에서도 멈춰섰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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