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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세요"…그 부자는 누구 몫이었나



문화 일반

    "부~자 되세요"…그 부자는 누구 몫이었나

    IMF 20년, 취약한 헌정질서가 부른 극단의 시대

    (사진=온라인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여러분, 부~자 되세요." 2000년대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유행어다. 노동정치연구소(준) 윤현식 책임연구원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IMF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 2002년, 시중은행연합으로 만들어진 비씨카드의 한 광고는 엄청난 유행어 하나를 우리 사회에 뿌렸다. '부자 되세요'가 그것이었다. 이 유행어의 여파는 가히 쓰나미급이었는데, 기존에 통상적 덕담이었던 '건강하세요' '오래 사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을 한순간에 밀어내고 덕담계의 지존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최근 열린 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움 'IMF 20년, 한국사회의 변화와 전망' 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IMF 20년, 헌정질서의 변화와 전망-취약한 헌정질서가 초래한 외부충격의 효과'를 발제한 윤 연구원의 흥미로운 진단과 분석, 전망을 요약 전달한다. [편집자 주]

    윤현식 연구원은 덕담이 된 '부~자 되세요'에 대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배금주의(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해 삶의 목적을 돈 모으기에 두는 경향이나 태도)를 경계해 왔던 사회적 분위기가 이토록 순식간에 노골적인 배금주의 경향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봤다.

    "'부자 되세요'가 끊임없이 되뇌어졌던 것은 이후 우리 사회에 공존의 가치보다는 개별적 생존 투쟁만이 남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일종의 징후였다. 헌정질서 차원에서 이 징후가 상징하는 함의는 다름 아닌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제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기본적 규범구조가 작동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호부조와 공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핵심적 지향이라고 한다면, 생존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전가하는 IMF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는 이러한 지향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과연 IMF 사태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것인가?" 등의 물음을 던지면서 "만일 그렇다면 IMF 사태는 한국 사회의 헌정질서를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흔들어놨다기보다는 오히려 감추어져 있었던 구조를 드러내게 만드는 기제에 불과한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헌정질서 차원에서 IMF 사태를 평가하고, 추후 유사한 사례의 반복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먼저 과연 오늘날 한국의 헌정질서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의 얼개인 헌법이 성립됨으로써 비로소 국가사회가 제 틀을 형성한다. 이러한 헌법의 규범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체계가 '헌정체계'이며, 이 헌정체계가 헌법의 이념과 원리에 의해 체제를 작동하는 것이 '헌정질서'다.

    그는 "주권자는 때로는 헌정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며, 헌정질서의 변화를 목적으로 개헌을 선언할 수도 있다"며 "이처럼 헌정질서를 현상유지의 목적에 한정된 질서가 아니라 변화 발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체제로 이해할 때 헌법의 규범구조와 헌법현실의 간극을 메울 계기와 요건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역설했다.

    "즉, 헌정질서가 주권자의 주체적 의지의 발현으로 성립되었으며 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주권자의 적극적 실천이 있을 때 헌정질서는 내·외부의 충격을 견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주권자가 배척되거나 수동적 객체로 전락한 상태에서 가설적으로 이루어진 헌정질서는 항상적으로 내외의 충격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 "IMF 사태, 국가 헌정질서 송두리째 흔든 외부 충격"

    1948년 8월 15일 당시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기록관)

     

    대한민국 헌정사를 두고 윤 연구원은 "건강한 헌정질서를 성립하는 과정이었는지는 의문"이라며 "제헌 이래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9차에 걸친 개헌을 거치는 동안, 주권자들의 주권행사, 즉 헌법 제정권·개정권의 행사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승만의 영구집권야욕, 박정희의 종신총통집권음모, 전두환의 군부통치 연장 기획은 헌정질서의 왜곡과 교란을 야기한 내부충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내부충격에 취약한 헌정질서가 유지됐던 것은 헌정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권자의 심도 있는 이해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개입과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4·19혁명이나 광주민주항쟁, 그리고 87년 6월 항쟁과 (같은 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은 주권자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면서 헌정질서 파괴세력을 응징하고 민주적인 헌정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과정이었다"며 "그럼에도 주권자들이 새로운 헌정질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는 반복적으로 배제됐으며, 변화발전을 욕망했던 주권자들의 기대는 지속적으로 배반당했다"고 봤다.

    이어 "목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됐던 정치세력들이 주권자를 배제한 채 조성한 그들만의 헌정질서는 결국 내부충격을 배태하는 조건으로 작동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1997년 말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이른바 'IMF 사태'를 두고 "개별 국가의 헌정질서라는 것이 외부충격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진단했다.

    "표면적으로 IMF의 요구조건은 관치금융과 재벌의 방만한 경영구조가 왜곡한 한국의 경제체제를 개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IMF의 요구조건이 가진 핵심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완벽한 이식이었다. 시장지상주의를 본질로 하는 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종국적 목표는 소수 기득권층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IMF의 요구 조건으로 정리된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구조재편은 특정 재벌에게 부를 몰아주는 효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실제로 한국은 이후 이 과정을 착실하게 밟았다"는 것이다.

    "1996년 연말의 노동법 날치기를 총 파업으로 무력화시키면서 막아냈던 노동시장유연화는 국가경제회생이라는 명목 하에 무용지물이 됐다. 정리해고의 요건은 완화되었고 파견근로제가 도입됐다. 한번 물꼬를 튼 노동시장유연화 정책은 IMF 사태가 일정하게 정리된 이후에도 오히려 강화됐고, 참여정부 당시 이루어졌던 소위 '비정규직 로드맵'을 통해 제도적으로 고착됐다. 비정규직의 양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고용불안은 가중됐으며, 대량해고를 동반한 구조조정과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폭증 속에 노동자들의 삶은 저하됐다."

    ◇ 금모으기 운동, 무엇을 못 보게 만들었을까

    (사진=자료사진)

     

    윤 연구원은 'IMF 사태가 헌정질서를 교란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바로 IMF 사태 당시 벌어졌던 금모으기 운동"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1998년 1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금모으기 운동기간 약 227톤의 금이 모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날마다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금모으기 운동은 실질적으로 IMF 사태를 극복하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이 운동의 와중에 대기업들은 오히려 금 사재기로 이윤을 챙기는 등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함에도 국가적 위기사태에 전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는 "헌정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였다면 국민들이 금을 모아 재벌을 살리는 모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정상적인 헌정질서가 작동했다면 오히려 국가를 부도사태로 몰아간 정부와 함께 환란을 조성한 기업들의 위기를 주권자의 책임으로 떠넘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금모으기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주권자들을 여전히 신민적 지위로 고착시키는 사고방식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입장에서 주권자는 여전히 백성이었고, 이들이 국가적 위기상황의 책임소재를 밝히는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책임을 덮어줄 수동적 객체일 때 감동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윤 연구원은 "IMF가 가져온 헌정질서의 왜곡이 얼마나 장기간에 걸쳐 그 여파를 미치고 있는지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경제조치들을 미루어볼 때에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환율 개입에 정부차원의 힘이 소요되면서 자본의 이윤을 보장했던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나, 5대 노동입법안과 일반해고지침 완화·취업규칙변경요건 완화 지침으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자본의 이해에 맞는 각종 규제완화법제를 남발했던 박근혜 정권의 방침은 이미 IMF 사태에서 와해된 헌정질서의 허약함 위 에서 태동했던 것이다."

    그는 "서론에서 언급했던 '부자 되세요' 에피소드는 IMF 사태 이후 헌정질서가 교란된 실정을 상징한다"며 "거대자본 중심의 경제구조개편과 이윤독식 그 반대편에서는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노동의 증가, 더불어 사회복지망의 붕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화 전반에서의 보수화와 탈정치화가 도미노처럼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 "우리네 불안정한 헌정질서 역시 IMF사태 유발 요인"

    전 대통령 박근혜(왼쪽)와 이명박(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헌법이 당위와 규범으로서 실질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은, 헌정질서가 헌법의 규범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 윤 연구원의 지론이다. 그는 "헌정질서의 작동상태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째는 헌법전의 규정들에 문제가 있는지, 둘째는 헌법전의 규정이 실질적인 규범으로 작동하는지, 셋째는 주권자들이 헌법의 규범구조를 이해하고 이에 따른 헌정질서에서 주체로 서 있는지가 그것이다."

    윤 연구원은 위 세 가지를 기준으로 면밀한 분석을 거친 뒤 "IMF 사태가 우리의 헌정질서를 교란한 외부충격인 동시에, 우리 헌정질서에 내재된 불안정성 또한 IMF 사태를 유발한 요인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헌정질서를 구성하는 원리와 원칙에 대한 이해와 이를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합치가 사회적 합의로 성취되지 않은 상태임을 지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정질서의 유지 발전은 누구라도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일체의 이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대립을 보장하되 갈등을 최소화하고 민주공화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할 것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모색이 결여된 채 갈등을 증폭하거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헌정질서의 작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생각의 다름이 때론 경쟁으로 때론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과 갈등을 발전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 그리 충분치 않으며, 그 결과 헌정질서는 여전히 살얼음판 위에서 헤매게 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IMF 사태라는 거대한 외부 충격으로부터 지켜야 할 헌정질서, 또는 이러한 외부충격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낼 수 있는 헌정질서에 대해 주권자의 이해와 합의가 없이는 IMF가 설정한 의제를 따라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 "주권자 배제한 채 청산 주체들이 헌법개정 논의"

    지난 2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는 "헌정질서의 건강함은 최선의 상태를 만드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판단된다"며 "IMF 사태는 외부에서 강제된 충격이 취약한 헌정질서에 편승할 때 사회를 어떤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건강한 헌정질서는 내외의 충격에 강한 내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광장으로부터 촉발된 헌법 개정 논의는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헌은 그 자체로 사건이다. 헌법의 명문 규정 중 어떤 것이 빠지고 어떤 것이 들어가느냐 보다, 개헌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된다. 개헌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기존의 헌법이 규율하고 있던 국가체계가 헌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변화를 겪었거나 그에 상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윤 연구원은 "그렇다면 기왕에 논의되고 있는 개헌을 통해 내구성을 갖춘 건강한 헌정질서를 창설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 개정 논의는 헌정질서의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는 취지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꼽은 문제점은 △주권자의 참여가 배제된 채 헌법개정 논의가 진행 △현재 헌법 개정 논의가 헌법 개정을 통해 청산돼야 할 주체들에 의해 진행 △ 헌정질서를 구축하는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 필요 등으로 모아진다.

    윤 연구원은 "무엇보다도 주권자들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규정의 규범적 작동이 어떤 효과를 자신들에게 부여하는지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며 "광장의 촛불들은 참여를 통해 연대를 경험했고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실질을 체감했다. 거기에 어떤 이론적 교육이나 체계적 학습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촛불은 함께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공론의 장이 마련된다면, 주권자들은 얼마든지 주권자로서 각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취하게 된다. 헌법과 헌정체계, 헌정질서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여전히 상존한다. 예컨대 최근 벌어진 촛불정국 과정에서 헌법 및 헌정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민심도 헌법 아래 있다' '헌법에 어긋나는 주권도 없다' '민주주의도 헌법 아래에 있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이 입장에 따르게 되면 4·19 혁명, 광주민주항쟁,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최근의 탄핵촛불은 모조리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만든 것이 된다. 이 견해는 전형적인 헌법물신주의를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 대응해 헌법을 만드는 주체가 민심이며, 헌법을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주권이고, 민주주의의는 헌법구성의 원리일 뿐 규범체제 안에 안주해야 할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개헌 과정에서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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