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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화 '틀딱'이 극복의 길일까"



문화 일반

    "악마화 '틀딱'이 극복의 길일까"

    [박정희세대 관찰 보고서 ①] '박정희' 통과한 '약자들' 바로보기

    다큐멘터리스트 김재환 감독은 시대의 관찰자로서 특별한 경험을 지녔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까지, 이른바 '박정희 세대' 곁에서 그들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다. 그 결과물은 최근 선보인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 담겼다. '틀딱'이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인 박정희 세대는 어느덧 같은 시대를 사는 자녀·손주 세대에게 혐오의 존재로 전락했다. 그간 작품으로 권력자들의 민낯을 들춰내 온 김 감독은, 이들 박정희 세대가 '약자의 언어'를 쓴다는 데 주목했다. 약자인 그들은 어떻게 혐오의 대상이 됐을까. 김 감독의 관찰과 기록에 박정희 세대를 바로보고 포용 혹은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있다는 판단 아래, 최근 그와 가진 심층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악마화 '틀딱'이 극복의 길일까"
    ② "보수혁신 '쇼'에 MB만한 제물 없다"
    ③ "청년 전원책도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다"
    <끝>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 지난 3월 21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집회의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지난 겨울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밝힌 촛불에 맞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선 친박집회 참가자들에게서 김재환 감독은 '두려움'을 봤다고 했다.

    "소위 '태극기집회'로 불린 현장에는 시위에 처음 참석해 본 분들이 많았다. 평생 자기 자녀나 손주들이 시위에 참가할 때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려 온 분들이다. 자기 세계관이 뒤집히는 경험을 한 그들이 혼란과 불안, 두려움을 느낀 채 평생 피해만 다녔던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이다."

    그의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는 충북 청주에 사는 농부 조육형 씨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박정희 사진에 절하며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한다. 조 씨는 새마을 운동 역군으로 자신의 존재를 불러줬던 박정희에 대한 감사가 삶의 힘이고 사람의 도리라고 여긴다. 그런 그가 탄핵정국 당시 친박집회 현장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집회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는 가운데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하신 것 같다"며 "그분들이 느낀 두려움은 자기 시대가 떠나가고 있다는, 저물었다는 데서 오는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제가 본 것들은 시간이 지나봐야 더 명확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분들 역시 어떠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와 함께 이룬 산업화, 박정희와 함께 막아낸 공산화라는 두 가지 자부심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다고 믿는 이들이,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날선 선동의 한가운데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집회를 제사의식으로 보기도 하더라. 자기 시대를 떠나보내는 이들이 행하는 마지막 의식 말이다."

    '미스 프레지던트' 말미에 박 전 대통령 탄핵 소식에 힘겨워하던 조육형 씨는 카메라를 향해 '이제 그만 하자. 더 하면 죽을 것 같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그분들이 박정희·육영수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본인들 역시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분들은 '박정희를 향한 진실한 믿음과 사랑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고 생각하신다. (박근혜 전 대통형의 탄핵으로) 그 시대는 이제 지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도 알고 있다. 스스로 그러한 믿음이나 판타지를 계속 갖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박근혜라는 존재를 붙잡고 가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마음속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생물학적인 딸이면서 육영수의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일 뿐, 박정희·육영수 그 자체의 환생은 아니었다'고 분리한 것 같다"고 봤다.

    "그러한 분리가 탄핵이라는 '제의'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이뤄진 것이다. 제 영화 속 주인공들의 경우 박근혜라는 존재를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다. '물론 잘못이 있지만,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나라도 마지막까지 (박 전 대통령) 곁에 있어야 한다'고들 여기는 것이다."

    ◇ "충효 유교적 세계관, 박정희 일가를 확장된 가족으로 여겨"

    김재환 감독(사진=김 감독 제공)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튿날, 김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걱정돼 '괜찮으시냐'며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당시 청주 할아버지는 울고 계셨고, 울산분(국숫집을 하는 김종효 씨 부부)은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가게에 못 나가셨더라"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청주 할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너무 심하지 않냐' '쫓아낼 수도 있는데, (헌법재판관 8대 0) 만장일치가 뭐냐' '어차피 쫓아낼 거면 한 명이라도 (박 전 대통령)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는 "이는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조원진 의원 등의 당파적 입장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들(조 의원 등)의 당파적 입장은 '마지막 의리를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북 어느 지방자치단체라도 한 자리 잡아, 자기들 입지와 세력을 지키겠다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일 뿐이다. 제가 겪은 박정희 세대는 헌법재판 절차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 정도는 편을 들어주고 쫓아내는 게 맞잖냐'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대한 연민이었다."

    김 감독은 "박정희·육영수를 부정하는 것은 박근혜 세대에게 있어서 자기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놓을 수 없는 끈"이라면서도 "다만 정서적 본드로 강력하게 붙어 있어서 도저히 도려내질 것 같지 않던 박근혜는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울산에 사는 김종효 씨 부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를 "우리 근혜, 지만이"라고 부른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등장한다. 김 감독은 "그분들은 박정희 일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며 "이는 박정희·육영수를 부모의 넓은 개념인 국부, 국모로 여기는 확장된 가족 공동체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에서 (청주 조육형 씨가) 매일 아침마다 의관을 갖추는 모습을 진득하게 잡아낸 것도 그분들이 충효(忠孝)로 대변되는 유교적인 세계관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데 있다"며 "그러한 세계관이 탄핵 정국에서 뒤집어지고 반토막 나면서 그분들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 속) 조육형 씨가 성전처럼 암송하는 '국민교육헌장'이 나온 때는 개인의 자유를 모두 국가에 헌납했던 시대다.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접수하고 전진하면서 저 높은 곳에 있는 '산업화'를 이루고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시대였잖나. 그러한 교육의 영향, 스스로를 시대정신으로 규정한 집권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인식을 유려한 문장으로 쓴 것이 국민교육헌장이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 낭독이 국민교육헌장의 대구처럼 보이길 바랐다"며 "개인의 자유를 거둬들인 지도자 한 명이 자기 뜻대로 방향을 결정해 따르라고 하는 시대는 저물었다는 종언으로서, 지금의 시대정신을 헌재 판결문의 유려한 문장으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헌재의 탄핵 판결은 '이제 박정희 시대는 갔다'고 선언하면서 관 뚜껑에 마지막 못질을 했다"는 것이다.

    ◇ 박정희세대에게 "이념적 말고 이기적으로 투표하시라"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사진=단유필름 제공)

     

    열 달가량 박정희 세대와 함께하는 동안 김 감독은 그들이 전하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먼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정해 드렸더니 나중에는 제 이야기도 들으시더라. 그분들의 마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적어도 대화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가 쓴 책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시대의창·2014년)를 보면 '악마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악마화 과정을 거치면 그 시대가 어떻게 왔는지 등에 대한 성찰이 생략된 채 정리된다는 것이다. 결국 박정희 세대를 악마화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순간 한국 사회를 되돌아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의 존재와 생각을 인정하고 얘기를 들어준 뒤,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박정희 세대에게 "제발 두 가지만 알아 주셨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이후의 일이다. 그가 박정희 세대에게 전한 이야기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이념적으로 투표하지 마시고, 이기적으로 투표하시라. 촛불을 '빨갱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어르신 세대가 애써 대학 보내 교육시켰던 자식·손주들이 다 빨갱이라는 말이잖나. 어르신들의 자녀·손주들도 모두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든 것이다. 누가 어르신과 자녀·손주 세대에게 더 잘해 주는지만 생각하시라. 손주라면 끔찍하게들 생각하시니 어르신과 손주 세대에게 누가 더 잘해 주느냐를 기준으로 투표하시라. 어르신들을 '표'로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투표하지 마시라."

    나머지 하나는 "누군가, 어떤 정치인이 어르신과 손주 세대를 갈라 놓으려는 듯한 말이나 행동을 하거든, 자꾸 젊은 손주들을 모욕하고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느낌이 드시면 단오하게 그 사람, 정당을 찍지 마시라"라는 내용이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조육형 씨가 보내는 일상에는 박정희 세대가 지닌 다소 비극적인 특징이 오롯이 담겼다고, 김 감독은 복기했다.

    "청주 어르신(조 씨) 댁에 처음 가 보고 깜짝 놀랐다. 유신시대에서 바로 걸어나온 듯한 분을 직접 만났다는 데 따른 것이었다. 이 세대를 인터뷰한 육성이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비주얼 쇼크였다. 이분이 또 마을에서 소를 타고 다니시지 않나. 소는 민주공화당(5·16군사쿠데타 세력이 만든 집권당)의 상징이기도 했다. 박정희가 가장 원했던 국민상도 소였을 것이다."

    그는 "소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근면하게, 죽도록 일만 하다가 마지막에 죽어서는 고기까지 내놓는다"며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의리를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딸 박근혜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죽어서 고기까지 내놓는 존재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세대의 두려움과 괴로움을 보면서, 평생을 죽도록 고생하신 분들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 내놓고 간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라는 존재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외치는 선동가들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굉장히 싫어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 거대한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그 거대한 동상을 보면서 이를 주도한 몇몇 사람들이야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 동상 설립 계획을 들으면서 북한, 스탈린 등 독재 이미지를 떠올린다"며 "자신들의 행태가 대다수 사람들로 하여금 박정희에 대한 반발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안다면, 이제는 보다 현명해질 필요가 있잖나"라고 꼬집었다.

    [② "보수혁신 '쇼'에 MB만한 제물 없다"]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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