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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만 33개…이 마을에 이웃갈등이 사라진 비결



사회 일반

    단톡방만 33개…이 마을에 이웃갈등이 사라진 비결

    동아리, 공유공간 등으로 활력 되찾은 도심 속 마을공동체

    우리 사회는 경쟁과 성장에 몰두한 나머지 이웃간 유대가 끊어진지 오래다. 그런데 거대도시 서울에서 무너진 공동체가 다시 세워지는 곳이 많다면 믿겨지는가. 다음 주 추석연휴를 앞두고, 따뜻한 서울의 마을 공동체들을 미리 둘러봤다. [편집자 주]

    1만 7천명이 사는 구로구 천왕동 마을. 33개의 주민 동아리가 활동중인이다. ‘보보보’라는 이름의 동아리 회원들. (사진=구로구 제공)

     

    1만 7천명 사는 천왕마을, 관계의 숲 만들다

    서울 구로구의 천왕마을에는 주민들만의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이 33개나 운영되고 있다.

    봉사단(회원 470명), 아빠모임, 풍물패, 독서모임 등 이 지역 주민들이 만든 동아리 숫자와 같다. 동아리 대표자들의 단톡방도 있다.

    단톡방과 별도로 '입주자 모임 카페'에는 이 마을 9개 아파트 단지에 거주중인 1만 7천명 가운데 4,800명이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주민들이 횡으로 종으로 연결돼 있어 한 사람을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관계망이 촘촘하다.

    외부인 들에게는 자칫 관계의 홍수가 귀찮음을 초래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귀찮음의 비용' 보다는 '관계의 실익'이 크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천왕마을 ‘촌장’으로 불리는 박승준(56)씨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서로 모르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경험상 많다"며 "하지만 천왕 마을에서는 대부분 알고 지내기 때문에 그런 이웃 갈등이 발 딛을 틈이 없다"고 말했다.

    '관계의 실익'에 대한 실제 사례를 알려달라고 하자, 얼마 되지 않은 일부터 오래된 기억까지 술술 나온다.

    애완견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던 이웃들이 다시 화해한 사건, 층간 소음을 해결해 주기 위해 여러 이웃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중재에 나섰던 기억, 누가 아이가 안 보인다고 하자 카톡 회원들이 실시간으로 나서 금방 찾아내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 자전거를 잃었다는 신고가 올라온 뒤 얼마 뒤 자전거를 찾았다는 카톡이 올라와 다들 환호했던 추억 등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끝이 없었다.

    박 촌장은 "입주 6년 만에 성공적으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의식 덕분이다"고 말했다.

    2012년 이후 4년 만에 서울에 새로 들어선 5천개 가까운 마을공동체 가운데 가장 모범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천왕마을의 경험은 이제 옆 마을인 오류동으로 ‘수출’되기에 이르렀다.

    천연동, 흉가 개조해 만든 마을 사랑방서 속닥속닥

    주민 활력소 ‘옹달샘’에 모인 서대문구 천연동 주민 모임 ‘엄마품애’ 회원들. 이들은 ‘옹달샘’을 동네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권민철 기자)

     

    천왕마을이 무갈등 마을이라면,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마을은 활기가 넘치는 활력마을이다.

    지난 21일 저녁에 찾은 이 마을의 공유 공간 '천연옹달샘'에서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20여명이 돌봄 프로그램을 받고 있었다.

    동네 어귀에 위치한 이 건물을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수도 가압장으로 남아있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이 된 이후 흉가처럼 방치돼 있던 것을 올해 서울시와 서대문구, 주민들의 협업으로 리모델링해 주민 교육과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주민들의 발걸음이 늘어날수록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그럴수록 다시 지역민들이 찾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주민 손혜영 씨는 이 공유 공간을 "아무나 지나가면서 들를 수 있는 곳, 지역에서 살면서 데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없을까 찾아보게 되는 곳"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은 이 곳을 행복이 넘쳐난다고 해서 ‘행복샘’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공동 밥상으로 이웃 관계 확대, 독산1동 주목

    금천구 독산1동 주민센터가 올해 1월에 마을 활력소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공유부엌, 마루, 다목적실, 강의실. (사진=구로구 제공)

     

    그런가 하면 무너진 공동체가 복원된 사례도 있다.

    서울 서남부 우시장으로 유명한 독산1동의 경우 옛 구로공단 대신 디지털단지가 들어서면서 외지인들의 마을로 변모해 왔었다.

    그러다 3~4년 전부터 이 곳에 마을공동체 사업이 전개되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주민센터 3층에 들어선 '공유부엌'을 상징으로 한 공동체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유부엌'이란 음식을 나누는 곳을 말한다.

    이인식 독산1동 마을계획단장은 이 곳을 "마을 아낙들의 음식 솜씨가 경연되는 곳, 그 음식으로 노인들의 생일잔치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곳, 때로는 마을회의로 토론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오후나 오전 정해진 시간에는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한 강의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오후에는 마을에서 크고 있는 유아들의 탁아소 기능도 한다.

    이인식 단장은 "마을을 위해 큰마음 먹고 조성한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하루 평균 200명이 이용할 정도로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 간의 유대감이나 화합이 몰라보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에서도 인정 모락모락 "사람 사는 것 같아"

    성북구 길음1동 주민들의 안전 동아리 활동으로 함몰 도로가 보수된 모습. (사진=성북구 제공)

     

    공동체 붕괴의 주범으로 여겨졌던 아파트도 '사람 사는 생활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지난해까지 859건의 아파트 마을 공동체 활성화사업이 진행됐다. 엘리베이터 안 주민 소통게시판 설치 등의 작은 사업들이 마중물이 돼 공동체 활성화 단체와 주민 모임 등이 속속 등장했다.

    성북구 길음1동 길음 뉴타운의 경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안전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거리를 깨끗이 하고, 마을길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웃들을 서로 알아 가는 것에도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재난안전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윤자씨는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외롭고 쓸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며 "동아리 활동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퇴근하면 마을 동네 술집에서 이웃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스포츠 중계를 보는 유럽의 일상처럼 서울의 마을 공동체도 주민들을 한 곳에 모으고, 지친 이웃을 위로해 주는 힐링캠프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연구원 안현찬 부연구위원은 "도시의 삶은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연결이 필요하다. 그래야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서울시가 지난 6년간 많은 의문과 비판을 무릅쓰고 시민들의 '사소한' 공동체를 지원해온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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