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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월북 이후 대놓고 '너도 간첩이지?'"



사회 일반

    "임지현 월북 이후 대놓고 '너도 간첩이지?'"

    [탈북청년 남한 정착기] 김하나양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자료사진)

     

    김하나(가명) 양은 16살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남한으로 건너와 올해로 한국 생활 10년차를 맞고 있다. 탈북 후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로 진학했는데 자신의 또래들은 다 중3이었지만 북한에서 배움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동생들과 함께 1학년부터 다니게됐다.

    "저는 처음부터 제 나이와 출신을 밝혔어요. 선생님께서도 반 친구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저의 나이가 많은 것과 함께 북한에서 온 것에 대해서 친절하게 소개해주시면서 반 친구들에게 제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또한 학업에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줄 것을 부탁했었어요. 그래서 지금 저는 중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어요. 방학 때가 되면 같이 만나서 놀기도 하고요."

    함께 한국으로 건너 온 부모님은 혹시라도 하나양이 학교에서 기가 죽을까봐 딸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라면 다 챙겨주었지만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생활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에 2학년 때 어머니마저도 몸져 눕는 바람에 하나양은 직접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중학교 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서 기죽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해주시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당시 저는 핸드폰도 좋은 거 쓰면서 학교생활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무엇보다 문제없이 학교를 잘 졸업하기를 바라셔서 저도 큰 사고 없이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며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고2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제가 대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아프셔서 더 이상 공부만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어요."

    하나 양은 결국 휴학을 하고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반 아르바이트도 있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공장을 선택했다. LED 조명을 만들어 일본에 수출하는 공장이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작은 전등과 나사를 조립하는 단순한 공정에 투입됐다.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해서 한 달에 220만원의 월급을 받아 20만원의 용돈을 제외한 나머지 200만원을 어머니께 드렸다고 한다.

    "저는 북한에서도 농사를 지어봐서 그런지 저에게는 단순 노동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 아르바이트 보다 공장에서 일 하는 게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공장에는 저와 비슷한 또래들은 없고 대부분 어르신들이 계시다보니 점점 아주머니들께서 저에게 '너는 왜 이런 일을 하니?', '나는 네 나이로 돌아간다면 여기서 이런 일을 하지 않을거야!' 라면서 제가 이곳에서 일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말씀하셔서 힘들었어요. 마치 제가 이곳에 있는 게 실패자가 된 것처럼 느끼게 되었어요."

    그렇게 1년 정도 일을 해서 돈을 번 후 하나 양은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방학이 되면 돈을 벌기 위해 공장이나 일자리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다. 3학년 1학기를 마친 2017년 여름에도 그녀는 스마트콘 케이스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방학기간인 3개월 동안 일해야 돈을 벌어 자신의 용돈과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2개월은 큰 문제없이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그 때 탈북민으로 방송인이었던 임지현씨가 월북하면서 모든 매체 기사와 영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보니 함께 일하는 분들께서 노골적으로 저에게 '너도 간첩 아니야?, 무서워서 함께 일할 수 가 있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에게 대놓고 간첩 아니냐고 말씀하시니 더 이상 그곳에서 일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공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처럼 한국에 와서 열심히 살아가려는 탈북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앞으로는 색안경이 아닌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바라봐 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그 부탁과 함께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저는 북한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결 같이 가난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인 욕심은 많지는 않아요. 북한에서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옆에서 시중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농사도 지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앞으로도 저의 할아버지처럼 노인 분들을 돌보며 지내고 싶어요. 그래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어요. 사회복지 쪽이 생활이 어렵다고 하니 언제까지 꿈을 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하나 양은 현재 대학교 3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를 여의고,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기에 그녀에게는 여러 걱정들이 많다. 생활비에 대한 걱정부터, 학업과 취업 등 많은 걱정들을 앉고 있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다시 일을 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박한 꿈을 전해주었다.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꿈은 해외여행 가보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은 방학이면 일본이며, 동남아시아며, 유럽이며 해외여행을 가는데요. 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요. 돈을 벌어서 일본에 가려고 했었는데요. 막상 여행으로 돈을 쓸 생각하니 너무 아까워서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 돈을 벌려면 공장에서 며칠을 일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도저히 가지를 못 했어요. 하지만 대학생 때 꼭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보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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