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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 '좌편향' 낙인 찍힌 KBS 기자·PD들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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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에 '좌편향' 낙인 찍힌 KBS 기자·PD들 "참담하다"

    [현장] 새노조 긴급 기자회견… 전체 문건 공개 요구 및 법적 대응 예고

    18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국정원이 작성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보고서 내용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이명박 정부 당시이던 2010년 6월,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보고서를 작성, 특정 구성원들을 좌편향 등으로 낙인찍고 관리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는 18일 오후 13시,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 새노조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문건 내용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문건은 KBS 내 대규모 조직개편을 하루 앞둔 2010년 6월 3일 작성됐다. 다음 날 KBS는 바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새노조는 국정원이 이 문건을 통해 △간부급 기자·PD의 성향을 사찰한 후 퇴출을 주도했고 △새노조와 새노조 전신인 사원행동 출신 직원들 배제를 강조했으며 △김인규 사장의 최측근을 특별관리했고 △부사장과 본부장급 거취는 김인규 사장과 협의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 문건에서 용태영 취재파일 4321 팀장, 이강현 드라마국 EP, 윤태호 '추적60분' PD, 김영신 PD, 이상요 PD, 최춘애 KBS아메리카 사장 등을 '좌편향' 인물이라고 적시했다.

    국정원이 "정연주 전 사장 추종 인물", "새노조 비호", "'한명숙 무죄', '4대강에 무슨 일이?', '봉하마을' 등 반정부 왜곡보도에 혈안"이라고 기술한 용태영 기자는 "이게 뭐가 반정부 아이템인가"라고 반문했다.

    용 기자는 '(법원의 1심 무죄 판결로) 1회전이 끝났다. 검찰은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전쟁은 진행형이다'라는 당시 한명숙 아이템 클로징을 언급하며 "원고 자체가 굉장히 드라이하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건 내용을 보니) 이미 그 당시 국정원이 거의 비정상적인 수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런 수준의 보고를 했기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이상한 꼴이 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용 기자는 2010년 3월부터 맡았던 '취재파일 4321' 데스크에서 3개월도 안 돼 물러났다. 그는 "어느 날 국장이 불러서 별 이유도 없이 '너 다른 데로 가야겠다'고 했다. 그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며 "공영방송이 무너진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사진=자료사진)

     

    국정원이 "사원행동 출신, 과거 편파방송 자성 없고 좌파 세력 비호"라고 기술한 소상윤 PD는 "명단에 있다는 얘기 들었을 때 첫 느낌이 '어이없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던, 별로 특별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까지 리스트에 있다니…"라고 말했다.

    소 PD는 "인사 불이익을 받았느냐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건 작성 2개월 후에 부장에서 물러난 건 사실"이라며 "공영방송 인사가 어떤 사람의 역량·성과, 조직에 대한 헌신, 국민에 대한 봉사 등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국가 권력기관에서 간부 성향을 조사해 리스트를 만들고 거기에 따라 인사를 했다면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지 않나. 참으로 자괴감을 느낀다. 참담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문건에서 "정연주 추종 인물"로 '무관용 원칙' 대상자였던 이상요 PD는 "2008년 정권이 바뀌자마자 저는 평PD가 됐고 2014년 퇴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연주 사장 시절에 'KBS스페셜' CP, 기획팀장 등을 거쳤으나 이후로는 아무 보직도 받지 못했고, 지역 발령까지 종용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PD는 "(2010년 이전부터) 회사 다니면서 (제가) 관리 당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회사 간부들이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것들이, 바깥에서 만들어 낸 워딩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면서 "2008년부터 '무관용 원칙'으로 배제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이강현 EP는 "여전히 좌편향 PD들과 연계하며 편파방송 꾸밈, 작년부터 반미 종북 시각의 드라마 제작 추진", 윤태호 PD는 "PD들 편파방송 방치, 노무현 특집 및 천안함 좌초 의혹 제기", 최춘애 KBS아메리카 사장은 "현지에서 정부 정책 비판, 좌편향 언행" 등으로 기술돼 있었다.

    국정원은 정부에 적극 협력하지 않는 간부들에게는 '무소신' 낙인을 찍었다. 임창건 보도국장("편파방송 탈색 주력했지만 보도책임자로서 자질 미흡", "수동적인 업무 자세"), 오진산 기획제작국장("좌파 눈치 보기 체질화돼 있어", "소극적 태도"), 김종진 인터넷뉴스팀장("함량 미달") 등이 문건에서 '무소신 간부'로 나타나 있었다.

    정연주 사장 불법 해임 반대 투쟁을 벌이고, 기존 노조(KBS노동조합)와 달리 개혁적 성향을 보인 새노조와 새노조의 전신 사원행동 구성원들을 '배제'하라는 지시도 포함돼 있었다. "경영진이 의욕적으로 조직개편 추진 중이니 최소한 기준 제시하고 KBS측에 맡겨 사원행동, 새노조 조합원, 편파방송 했던 자는 배제할 것 주문"이라는 문구에서 확인 가능하다.

    새노조 성재호 본부장은 "당초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의 출연을 제한하는 블랙리스트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문건 상당 부분은 '방송사'를 상대로 해 만들어졌다. 공영방송 KBS 인사와 조직에도 개입한, '언론 파괴 문건'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반하고 묵살한 범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성 본부장은 △국정원과 문재인 정부는 지난 10년 과거 정부에서 공영방송을 상대로 어떤 장악과 공작 음모를 벌였는지 조사에 나설 것 △국정원과 결탁해 성향 분석 자료를 건넨 KBS 내부자들은 스스로 고백할 것을 요구했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노조 차원에서 각종 법적 수단 동원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 문건 진위여부와 관련해 새노조 파업뉴스팀은 김인규 전 KBS 사장과 국정원에 문건 작성을 지시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취재를 시도했다. 김 전 사장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이 전 수석은 "국정원에 지시 내린 적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답했다.

    새노조 성재호 본부장(맨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국정원 문건에서 '좌편향'으로 분류된 이상요 PD, 용태영 기자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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