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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품 쓰지마"…방과후학교 강사의 눈물



교육

    "학교비품 쓰지마"…방과후학교 강사의 눈물

    10년 넘게 운영된 '방과후학교'…관련법도 없어 교사들은 이방인 취급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방과후학교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 존재를 규정하는 법률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교육비 경감' '교육격차 완화' 등을 목표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임에도 그 공적 성격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 '학교 물건 쓰기'는 어렵고 '잘리기'는 쉽다… 방과후 '깜깜이 행정'

    방과후학교 강사 A 씨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칠 때마다 쓰레기를 따로 챙긴다. 미술을 가르치느라 한 번 수업을 하고 나면 색종이 등 쓰레기가 많이 생겨 번거롭지만 별 수가 없다. 8년 전쯤 수업을 나가던 학교로부터 "교실에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어느 학교에 가든 지레 쓰레기를 챙기는 게 버릇이 됐다.

    A 씨는 "사는 동네와 수업 나가는 학교 동네가 달라 쓰레기봉투도 달라서 쓰레기를 그냥 집으로 가져오는 게 낫다"며 "이런 지적을 처음 받았을 땐 기가 찼는데, 주변의 다른 강사들에게 물으니 많이들 그렇게 한다 해서 오히려 제가 늦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사 B 씨는 집에서 따로 프린트물을 챙겨 온다. 학교 비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방침 때문이다. 강사료를 청구하기 위한 출석부 복사 등 공적인 프린팅도 물론이다. B 씨는 "학교 측에선 '교실만' 사용하라더라"며 "종이를 따로 사가도 '잉크 값이 든다'며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방과후학교는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수업을 수강하는 사람, 곧 수익자가 강의에 대한 수강료를 낸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규 수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해당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자료사진)

     

    '수용비'는 수익자 부담성의 상징적인 요소다. 방과후수업에 소요되는 학교의 전기료‧냉난방비‧복사비 등으로 쓰이는 수용비는 수강료에서 제해져 학교로 꼬박꼬박 빠져나간다. A 씨와 B 씨의 수강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교의 '깜깜이행정'은 수용비가 지불됐음에도 강사들의 비품 사용을 제멋대로 금기시한다.

    이처럼 학교 비품 사용은 값을 치르고도 어려운 처지지만 학교와의 계약이 일방적으로 끝나버리는 것은 쉽기만 하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2년 동안 방과 후 강사로 일했던 C 씨는 지난 2월 황당한 '이별'을 맞았다. 새 학기 시작을 겨우 이틀 앞두고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또 다른 강사로부터 별안간 "강사님 수업이 새 학기 시간표에 없더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이미 다음 학기 계획까지 제출했던 C 씨는 학교 측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학교 측은 "강사님이 소속된 위탁 업체 사정 때문에 계약이 끝난 걸로 안다"더니 나중에서야 "학부모에게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말을 바꿨다. 해당 민원이 무슨 내용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C 씨는 "동료 강사는 저를 빼고 새로 만든 단체 메신저창에서 해당 사실을 전해 들었다더라"며 "그 사실도 모르고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황당함을 토로했다. 또 "방과후학교 강사는 계약도, 해약도 '학교 재량'에 따른다"며 "계약이 끝난 이유가 '민원' 때문이라면 사실을 확인하고 시정할 기회라도 있어야 하는데, 통보조차 없이 잘렸다"고 설명했다.

    ◇ '법 없이 사는 사람들'… 가이드라인으로 지탱되는 현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이 같은 '재량주의' 깜깜이 행정이 가능한 이유는 방과후학교의 존재부터가 법적으로 보장돼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과후학교의 운영과 강사 처우 등은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준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법적 강제력이 없다. 심지어 강사 계약의 갱신과 해지 절차, 강사의 의무와 권리 설정 등은 학교장과 운영위 등 학교, 심지어 외부 위탁업체에 위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방과후강사노동조합 김경희 위원장은 "지난 1995년 '특기적성'의 이름으로 시작됐던 것까지 고려하면 방과후학교는 벌써 시행 23년을 맞았다"며 "국가에서 사교육을 줄이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시작한 공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운영과 취지가 명시된 법안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학교는 방과후학교를 학교 공간만 빌려서 하는 사교육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일이 아닌데 마치 '떠맡은' 양 하며 교육부는 '공교육이 아니'라는 말만 한다"고 말했다.

    학교와 교육부의 '나몰라라' 방임에도 방과후학교는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도 전국 학교의 방과후학교 운영율은 99%가 넘으며 학생 참여율 역시 51.4%에 이른다.

    반면 방과후학교의 '존재'를 규정하는 법안들은 수년째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세종시의회가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방과후학교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이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다.

    지난해 12월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방과후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설치 근거 규정만 두고 있는 상태"라며 "국가와 교육감 등이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방과후학교는 엄연히 학교 교육현장에서 진행되는, 공교육에 편입된 프로그램“이라며 "단순히 '공교육 밖 별도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방과후학교는 교육부의 '선행학습 불가' 방침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공성과 관련된 의견은 늘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방과후학교는 그 자체가 '필요한 학생들만 선택하는' 수익자 부담 프로그램"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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