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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장발장의 눈물…"그런 마음 아세요?"



사회 일반

    일용직 장발장의 눈물…"그런 마음 아세요?"

    현대판 장발장 구제하는 '장발장은행'

    (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그런 마음 아세요? 내가 애들이 셋이에요. 큰딸과 둘째 딸, 셋째 아들 이렇습니다. 저도 원래 장사를 했었는데요, IMF 터지고 나서 돈 빌리고 이자 갚고 하다 보니까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강원도로 왔어요. 내가 노력을 안 했느냐고요? 강원도 와서 대형면허 땄고요, 포클레인 자격증 땄고요, 택시운전자격증 땄고, 화물운송자격증도 땄어요. 왜냐면 애들 먹여살려야 하니까요.

    2011년 3월이었어요. 남의 차를 빌려서 철거 일을 하던 때인데, 누가 철거를 해달라고 했어요. 파티션(사무용 칸막이) 알죠? 파티션 옆에 스텐(스테인리스)이 박혀 있어요. 고철 중에서도 스텐이 비쌉니다. 그걸 떼다 팔면 수입이 괜찮았어요. 집에 갖다 놓으면 애들이 그걸 뗐어요.

    2.5톤 차량을 빌려서 파티션을 싣고 오는 날이었어요. 낮에는 먼지 날린다고 일을 못하게 해서 밤새 일했죠. 아침에 집에 가는데 해가 쫙 나니까 눈이 부시고 졸음이 오더라고요. 집에 거의 다 와서 전봇대 지지대를 들이받았어요. 그거 세우는데 (벌금이) 무슨 50만 원이나 됩니까? 솔직한 말로 못 냈어요.

    또 하나 있어요. 의무보험에 가입 안 한 차량을 운전하다가 속도기(과속 단속카메라)에 찍혔어요. 그렇게 해서 벌금이 총 100만 원 나왔는데 돈이 없어서 도저히 낼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10만 원씩 냅시다'라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한꺼번에 내야 한다는 거예요.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이게 말이 돼요? '그래. 그럼 내가 살살 피해 다니면 되지' 하고 생각했어요. 방법이 없잖우. 그러다 잡히면 가서 노역 사는 거예요, 5만 원씩. 누구는 하루에 5억 원씩, 10억 원씩 한다는데….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수배령이 내려진다. 장발장은행의 또 다른 수혜자인 김진우(가명·26) 씨 제공.

     


    노역장 안 가려고 엄청 착실하게 살았어요. 그렇게 5년 정도를 살았는데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니까 '장발장은행'에 관한 내용이 언뜻 지나가더라고요. 세상에 공짜가 있겠느냐만은, 집사람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했어요. '좀 도와주십쇼' 하고 간단명료하게 써서 보냈는데 (대출 승인이) 됐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세상에 그보다 더 고마울 게 뭐가 있겠어요. '아, 내일부터는 눈치 안 보고 경찰서 앞을 그냥 지나간다', 그런 마음 아세요? 단속할까 봐, 뭐 할까 봐, 항상 먼 전방만 보고 다니는 그런 기분 아세요? 겨울에 제주도에서 밀감이라도 따서 애들 먹여 살려야 하는데 배 타고 가려면 신분증을 내야 하잖아요. 돈 벌러 제주도도 못 갔어요.

    애들 대학 끝나고 나면 돈 만 원씩이라도 다달이 (장발장은행에) 보내주자고 집사람이랑 얘기했어요. 두 번인가 넣어줬네요. '매달 20일날 넣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힘들지 않겠습니까'라면서 다음 달부터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위 기사는 지난 3월 장발장은행에서 100만원을 대출 받은 장일영(59·가명) 씨와 인터뷰한 내용 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은촛대를 들고 있는 모습(출처=UPI)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죄질에 비해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죠. 한국은 어떨까요? 불행히도 150여 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감옥에 갇히는 사람들이 연간 4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죠. 가난이 곧 죄가 된다면 그 형벌을 과연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현행 형법상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벌금을 한꺼번에 납부하지 않으면 최대 3년간 노역장에 유치됩니다. 하지만,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는 장 씨 같은 사람에게 벌금 100만 원은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큰돈입니다. 벌금을 분할 납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검사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제한적이죠.

    남은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벌금 낼 돈이 없으면 장 씨처럼 숨어 지내거나, 노역장에서 몸으로 형벌을 때우면 됩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하루 5만 원인 노역 일당이, 고액 벌금자에겐 하루 수억 원에 달하는 '황제 노역'이 되기 일쑤죠.

    현행 벌금제의 개선책으로 거론되는 것이 '일수벌금제'입니다.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다르게 부과하자는 것이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이기도 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채택한 제도인데요, 지난 2002년 핀란드 통신 회사인 노키아의 안시 반요키 부회장이 과속 범칙금으로 11만 6000유로(약 1억 4300만 원)를 낸 전례가 있죠. 이밖에도 벌금 분할 납부제와 납부 연기제, 벌금형의 집행유예 등을 통해 불합리한 벌금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이 장발장은행에 보내온 편지들

     


    장발장은행은 이처럼 벌금 낼 돈이 없어 감옥에 갇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이자·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곳입니다. 은행이 설립된 지난 2015년 2월부터 지난 3일까지 모두 3020명이 은행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대출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죄목이 음주운전이나 성범죄 등인 경우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지금까지 489명이 9억 2051만 원을 대출 받았고, 전액 상환한 70명을 포함해 247명이 대출금을 갚고 있습니다. 지난 3일 기준으로 상환액은 2억 1388만 원이었습니다. 대출금은 전액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531명이 장발장은행에 7억 4000여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장발장은행 운영진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장발장은행의 최종 목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일이라도 (장발장은행) 문 닫았으면 좋겠어요. 장발장은행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돼서 하루빨리 폐업하는 게 소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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