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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본능을 깨워준, 마법 같은 '서울국제도서전'



책/학술

    '애독자' 본능을 깨워준, 마법 같은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2017 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날 관람기

    그린비(엑스북스) 출판사 부스에 놓인 책들 (사진=서울국제도서전)

     

    금방이라도 책 속에 빠져들고 싶은 하루였다. 지난 14일부터 5일 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 A, B1홀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도서전'을 마지막날에야 다녀오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조금 부지런 떨어서 하루 더 올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스쳤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후원하는 '2017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계의 가장 큰 행사로 꼽힌다.

    다양한 출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독자들 품에 안기고 싶은 '귀중한 책'을 소개하고, 독자들은 단 몇 줄의 글자로만 만났던 '책 만들고 엮는 이들'을 만나는 '연결'의 자리이기에 그 의미는 작지 않다.

    특히 올해 도서전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흥미로운 프로그램과 부대행사로 더없는 인기를 끌었다. SNS 상에서 도서전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찍은 사진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날이라 평소보다 더 일찍 문을 닫는 18일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맞춰 가면 평소보다는 사람이 적겠지?' 하는 상상은 코엑스 전시관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깨졌다. 혼자, 연인끼리, 친구와, 가족 모두 온 관람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사전등록 시기를 놓쳐 현장등록을 하려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 '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건만…

    문학 자판기에서 뽑은 '긴 글' 영수증, 도서전에서 산 책, 입입장권, 안내서. 원하는 만큼 들고 갈 수 있었던 쇼핑백에는 올해 도서전의 홍보모델 정유정 작가, 유시민 작가, 가수 요조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내부는 다소 정신없었다. 내 기억 속 코엑스 전시관은 '널찍함' 그 자체였는데, 수많은 참가사들 부스가 빼곡히 들어찬 그곳은 의도치 않고도 모르는 이의 어깨를 치고 갈 수도 있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A홀에는 국내관·책예술관·전자출판관과 국제관, '특별기획전: 서점의 시대'가 마련돼 있었다. 국내관은 문학동네, 열린책들, 창비 등 유명 출판사에서부터 컨셉도 주력 독자도 제각각인 다채로운 출판사들이 모여 있었다.

    각 출판사의 대표작, 스테디셀러뿐 아니라 출판사가 엄선한 '좋은 책'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어떤 책에 조금만 길게 시선을 보낸다 싶으면 출판사 관계자들의 친절한 설명이 바로 뒤따라왔다. 책의 기획부터 출판까지 담당한 '전문가'들이자, 누구보다 그 책에 대한 애정이 큰 주인공들이니만큼 설명을 듣는 것마저 재미있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서일까. 일반서보다 훨씬 더 컬러풀하고 눈에 짤 띄는 유아·어린이용 도서와 그림책도 많았다.

    각 출판사의 '비장의 무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애서가'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은 할인 혜택이었다. 대부분의 부스는 10% 할인제를 실시했고, 일정 금액 이상 주문했을 경우 사은품 증정, 무료 택배 등의 부가 서비스가 더해졌다.

    지인들이 몇만 원씩 '털리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최대한 지갑을 열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왕 발을 들인 이상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눈 밝은' 이들이 선택한 책의 위력에 꼼짝 못하고, 두 권을 업어왔다.

    ◇ 작은 서점 만나고, 책으로 치료받고, 글귀 선물받고

    2017 서울국제도서전에는 20개의 동네서점이 모인 특별기획전 '서점의 시대'가 열렸다. (사진=서울국제도서전)

     

    올해 도서전의 특별기획전에는 '서점의 시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장에서도 미디어에서도 한 발 뒤의 존재인 것처럼 취급됐던 독립서점들은,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가장 '중심'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서울 각지에 위치한 개성만점의 서점을 비롯해 강원 속초의 동아서점에서부터 경남 통영의 봄날의 책방, 일산 백석동의 미스터버티고,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등 지역 서점을 들른다는 것도 '2017 서울국제도서전'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또 하나의 주인공은 책 문화 프로그램이었다. 김훈, 황석영, 이미경, 김선재 작가와의 만남, 만화가 사인회 및 작품 전시회, SF·번역·사진·팝업북 등 여러 가지 주제로 이루어진 강연 등이 날마다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독서클리닉'(사전 신청 프로그램)이었다. 글쓰기·장르문학·과학 분야 등 전문가가 고민이 있는 독자에게 '책 처방'을 내리는 프로그램이었다. 금정연 서평가, 서민 교수, 은유 작가, 이권우 도서평론가, 김봉석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 그 면면도 화려했다.

    이 중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의 김정연 작가를 명단에서 발견하고 신청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길게 쓸수록 환영한다는 안내 문구가 왠지 반가워, 고민 끝에 사연을 넣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뜻밖에 당첨 전화를 받아 18일 오후 4시에 맞춰 '사적인 서점' 부스로 갔다.

    2017 서울국제도서전의 부대행사 '독서클리닉'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 (사진=서울국제도서전)

     

    신청자가 자신의 증상을 포함해 고민하는 지점을 이야기하면 거기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는 것이 기본 틀이었지만 '누가' 상담을 해 주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클리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독서 습관과 취향을 나누면서 맞장구치는 수다가 되었다. 할당된 시간이 30분짜리여서 애석했을 따름이었다.

    이밖에도 도서전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깨알 같은 재미와 정성이 있었다. 짧거나 긴 글을 새롭게 접하는 기회를 열어 준 '문학 자판기'가 그 중 하나다. 짧은 글, 긴 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하면 글귀가 프린트되어 나온다.

    평소에는 금액만 확인하고 휴지통에 버리는 영수증이, 낯선 글귀를 만나게 해 주는 통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뽑은 것은 김현경의 '익명의 편지1'이었다. 지금 나의 상황에 꼭 맞는 특징을 지닌 화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신기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것은,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고 더 널리 읽히길 바라는 마음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도서전에서 경험한 '열기'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달뜬 마음으로 사들고 와서는 책꽂이에 꽂아 두고 묵히기만 했던 지난날이 새삼 부끄러웠다. 이제 기사도 마무리했으니, 사 온 책에 빠져드는 일만 남았다.

    잠재된 '애독자' 혹은 '애서가' 본능에 불을 댕겨줄 이 신통한 행사는 다행히 '매년' 열린다. 올해 놓쳤다면, 내년을 노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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