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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정병길 감독이 '가지 않은 길'



영화

    '악녀' 정병길 감독이 '가지 않은 길'

    [노컷 인터뷰] "남과 다른 것 해보고파…아직 못 보여준 액션 많다"

    영화 '악녀' 를 연출한 정병길 감독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여성 배우 단독 주연에 장르는 액션. 누가 봐도 이 영화는 심상치 않았다. 여성 주연 영화가 전무한 국내 영화계라서 더욱 그랬다. 영화 '악녀'의 이야기다.

    '악녀'는 현재 할리우드 대작들이 포진한 박스오피스에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는 킬러로 자라난 숙희의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악녀'의 볼거리는 단연코 국내에서 거의 보기 힘든 감각적인 액션 시퀀스다.

    메가폰을 잡은 정병길 감독의 연출은 진부한 액션 장르가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실험이었다. 오락적 쾌감을 안기는 '도구'를 넘어 액션 그 자체가 영화의 존재 이유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한계는 존재했다. 액션을 제외한다면 '악녀'의 주인공인 숙희는 여전히 남성이 바라보는 전형적 여성 캐릭터에 갇혀 있다. 로맨스를 위해 소모되거나 어머니의 삶만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아이를 향한 모성애가 최대 약점이 되는 여성,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여성,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배신이 복수의 원동력이 되는 여성. 새로운 액션을 한꺼풀 들춰보면 '숙희'라는 캐릭터의 알맹이는 진부하게 다가온다.

    '악녀'가 국내 영화계에 액션 장르 혹은 여성 주연 영화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데 성공했다.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병길 감독은 조금 피곤한 기색이 느껴졌지만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다음은 '악녀' 정병길 감독과의 일문일답.

    ▶ 영화 이야기에 앞서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악녀'를 먼저 선보였는데 감독으로서 느낀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 그냥 칸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상영한 것 자체가 신기했다. 다음 날 인터뷰가 정말 많이 들어와서 그것도 신기했고.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김옥빈 씨가 '박쥐' 때보다 더 인터뷰를 많이 받았다면서 감독님도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하는 거라고 그랬다. 후반작업도 있어서 3박 5일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정신이 없었고 잠도 못 잤다. 영화 감독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아본 감독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여기까지 와서 잠을 자고 싶지 않더라.

    ▶ 당시에도 '악녀'의 오프닝 시퀀스가 굉장히 화제였었다. 마치 관객들이 '슈팅게임'을 하는 경험을 주는 시퀀스인데, 어떻게 구성했는지 궁금하다.

    - 3년 전에 VR(가상현실·Virtual Reality) 영화 제작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 관객 시점으로만 이뤄진 광고 단편 영화였다. 예산도 10억 정도라서 아주 작은 영화는 아니었다. 사실 영화계에서도 결국 3D 시대에서 VR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있기 때문에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게 결국 불발됐는데 당시 디자인했던 것을 '악녀'에서 하게 됐다. 아마 그 영화를 만들었으면 '악녀'에는 그런 시퀀스가 없었을 수도 있다.

    영화 '악녀' 촬영현장의 정병길 감독. (사진=NEW 제공)

     

    ▶ 액션이 주를 이루는 영화인데,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궁금하다. 주인공 숙희 역의 김옥빈은 감독의 액션 디렉팅이 엄격했다고도 이야기했는데.

    - 엄격하게 했다기 보다는 다치지 않게끔 했다. 액션을 처음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액션을 잘하거나 멋있게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제 3자가 봤을 때는 어색한 게 사실이다.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으니 과하게 액션 연기를 하게 돼서 더 그렇다. 그런 부분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대체로 배우들 얼굴이 드러나는 부분은 위험하지 않다. 김옥빈이 차 보닛 위에 올라가서 운전을 하는 장면도 생각보다 위험한 장면은 아니다. 사실 액션 촬영에서는 서로 방심할 때 다친다.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는 계속 안전 체크를 하니 다치지 않는다.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의 마무리가 비슷하다. 숙희가 경찰에 둘러싸인 채, 피에 젖은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이렇게 연출한 의도가 무엇일까.

    - 같은 앵글과 움직임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는데 표정이나 느낌은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복수였고, 두 번째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여자의 느낌을 가져 가고 싶었다. 이제 정말 악녀가 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숙희의 얼굴은 피범벅이 된다. 그게 꼭 남의 피인데 숙희의 피 같은 느낌도 든다.

    ▶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숙희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보면 국정원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그가 과거에 사랑했던 중상(신하균 분)이 등장하면서 능동적인 인격체로 변한 느낌이다.

    -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숙희라는 여자가 '악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캐릭터는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관객들 또한 숙희처럼 착한 여자가 계속 당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길 바랐다. 그게 쌓여서 절정으로 갈 때는 무지막지한 통쾌함으로 돌아왔으면 했다. 마지막에 숙희가 중상을 쫓아간 이유는 '왜 그랬는지'에 대한 사연을 듣고 싶어서였을 것 같다.

    ▶ 현수(성준 분)와 숙희의 로맨스도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좀 더 액션을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지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 이 부분에 대해서 일반 관객 150명 가량을 모아놓고 모니터 시사를 한 적이 있다. 내부에서 멜로를 줄이자는 의견이 있었고 나 또한 줄이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관객들이 좋다는 평가를 내놓더라. 우리의 눈과 관객의 눈이 틀리니까 어차피 호불호가 갈릴 거면 관객의 선택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서 일부러 축소시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감상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악녀' 를 연출한 정병길 감독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어찌됐든 여성을 단독 주연으로 내세운 액션 영화가 국내에서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여성 중심 영화가 거의 없고, 소재 또한 한계가 있는 국내 상황상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 나는 운이 좋았다. 투자배급사가 나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라'고 기회를 열어줬다. 그 믿음이 고맙다. 사실 국내 시장에서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영화는 맞다. 남이 해본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 액션 영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제는 여자 영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 김옥빈은 이번 영화를 통해 액션 장르를 향한 갈증을 많이 해소했다고 했는데 본인 또한 그런가?

    - 아직 못 보여준 것이 많다. 보통 국내에서 블록버스터급으로 치는 100억 짜리 영화가 아니라 예산이 작은 영화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갈증이 있었다. 연출력과 제작비를 타협하면서 포기해야 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오케이'가 아닌데 '오케이'를 외쳐야 되는 상황이 마음 아프다. 그러나 정해진 제작비 안에서 촬영을 끝내는 것도 연출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 할리우드처럼 드라마를 강하게 깔지 않고, 액션으로만 영화를 꽉 채우는 연출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상상력 넘치는 액션을 마음껏 펼쳐 볼 환경이 있다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논의가 오가는 부분이 있나.

    - 차기작의 다음 작품이 될지 모르겠지만 할리우드 쪽과 이야기가 오가고 있기는 하다. 미팅을 해봐야 알 것 같다. 잘 성사된다면 할리우드 입봉작이 될텐데 지금 기획하고 있는 건 두 시간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액션으로 끝나버리는 그런 영화다. 액션이라는 게 하다 보면 깨우치는 게 있고, 반성하는 게 있다. 공포 장르도 만들어 보고 싶다. 여자들로만 이뤄진 특공대 이야기도 생각해봤다. 국내에는 거의 없는 장르인 SF 영화도 한번쯤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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