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촛불혁명에 가장 기여한 사람은 정유라"



사회 일반

    "촛불혁명에 가장 기여한 사람은 정유라"

    손호철 교수 “‘부모 돈도 실력’ 발언, 헬조선과 흙수저의 현실 드러내”

    - 6월항쟁과 촛불혁명, 닮은 듯 다른 두 항쟁 또는 혁명
    - 촛불혁명은 정치적 요구와 사회경제적 요구 결합
    -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 ‘헬조선 탈출’까지가 목표
    -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 위해 문재인 정부, 협치와 연정의 험한 길 걸어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6월 12일 (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손호철 교수(서강대)


    ◇ 정관용> 지난주 6월항쟁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죠. 그 가운데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대규모 학술대회가 있었는데요.

    이 학술대회에서 <6월항쟁과 11월 촛불혁명 : 반복과 차이>, 이런 제목의 글을 발표하신 서강대학교 손호철 교수님을 오늘 오래간만에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6월항쟁, 촛불집회. 닮은 듯이 다른 이 두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도록 하죠. 손호철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손호철> 반갑습니다.

    ◇ 정관용> 우선 제목부터요. 6월항쟁과 11월 촛불혁명. 6월은 항쟁이고 11월 촛불은 혁명입니까? 왜 이렇게 붙이셨어요?

    ◆ 손호철> 처음에는 광화문항쟁이라고 불렀었는데 처음에 그렇게 불렀던 중요한 이유는 그 아버지는 결국 부마항쟁으로 쓰러졌기 때문에 거기에 대칭으로 광화문이라고 붙였지만 이것은 전국적인 항쟁이기 때문에 지역을 붙이면 안 되고 시점을 붙여야 되는데 사실 11월이 중심이었지만 알고 보면 12월에도 했고 2016년 항쟁 그리고 나니까 또 2017년도 있었고.

    ◇ 정관용> 계속 이어졌잖아요.

    ◆ 손호철> 그래서 16~17년항쟁 그건 너무 이상해서 하여간 시작한 중심적인 11월이 촉발됐기 때문에 11월로 부르자, 이렇게 됐고요.

    그다음에 이제 항쟁이냐 촛불이냐인데 결국 우리 대한민국 최고의 <시사자키>에 시사문제 좀 내봐요. 시험 보신 지 오래되셨죠? 4가지 설이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성공한, 완성된 항쟁이고요. 두 번째는 성공한 혁명이고요. 세 번째는 미완성의 현재진행적인 항쟁, 네 번째는 미완성의 혁명 이렇게 4개가 되겠죠. 혁명이냐 항쟁이냐 그다음에 완성된 거냐 아직 덜 된 것이냐. 이렇게 해서 4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는데요.

    결국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를 때는 정치학적으로 일부에서는 특히 주도한 쪽에서는 이것은 굉장히 높은 의미로, 이게 성공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무혈로 성공한 혁명, 이렇게 부릅니다마는 박근혜를 몰아냈기 때문에. 그렇게 따진다면 직선제개헌을 성공한 6월항쟁도 혁명이잖아요.

    ◇ 정관용> 성공은 했으니까.

    ◆ 손호철> 그렇죠. 그렇게 보면 안 되고.

    ◇ 정관용> 이게 슬로건이었던 ‘직선제 개헌’을 성공해냈으니까.

    ◆ 손호철> 그렇죠. 그러면 5. 18 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피도 많이 흘리고 정말 우리나라 사상 최초로 무장까지 하고 나온 항쟁인데 그렇다고 그래서 이것을 실패한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거죠.

    왜 그러냐. 결국 항쟁이냐 혁명이냐는, 어떤 혁명이라고 부를 때는 물론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이 있습니다마는 단순히 정권교체라든가 정권타도 이런 것을 넘어서서 사회나 또는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어떤 변화 이런 것을 동반하거나 요구할 때 혁명이라고 부르는 거죠. 우리 4. 19도 혁명이라고 그러는데 그건 이승만을 쫓아내서가 아니라.

    ◇ 정관용> 체제의 변화.

    ◆ 손호철> 그것만 아니라 그 뒤에 보면 사실상 한국전쟁에 죽었던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운동이라든가 그다음에 전교조 운동이라든가 그다음에 통일운동이라는 다양한 어떤 정말 과거의 반공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이 있었거든요. 5. 16으로 실패하지만.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이승만을 쫓아내는 데 성공해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보면 6월항쟁은 기본적으로 직선제 개헌 플러스 군사독재 종식 이런 거에서 항쟁이라고 보는 것이고요.

    이번의 경우에도 단순하게 박근혜를 몰아내는 것으로 본다면 이미 성공한 항쟁이죠. 그런데 단순히 그것이 아니라 벌써 퇴진행동 주최 측도 적폐 청산 이런 것을 여러 개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답니다. 일부 예를 들면 국정교과서 폐지 이런 건 이루어졌지만 사드 문제라든가 다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 정관용> 지금 진행형이죠.

    ◆ 손호철> 진행형 항쟁이고 그거까지는 항쟁이라고 본다고 봐요. 그렇지만 나중에 얘기할 시간이 있겠지만 촛불혁명의 경우에는 단순히 그것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는 헬조선을 벗어나야되겠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그런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단순한 뭐라고 그럴까 항쟁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 정관용> 87년 6월은 정치적 투쟁 구호 하나로 국민들이 하나가 됐다면.

    ◆ 손호철> 그렇죠.

    ◇ 정관용> 12월부터 시작된 촛불은 정치적 요구 플러스 사회경제적 요구가 결합돼 있다. 그 점이 항쟁과 혁명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군요. 그렇다고 완성된 혁명은 아닌 거고?

    ◆ 손호철> 현재진행형인 것이죠.

    ◇ 정관용> 현재진행형 혁명이다.

    ◆ 손호철> 4. 19처럼 실패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날 수도 있고 상당히 그걸 이룰 수도 있고, 앞으로 바라봐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리고 이 글이 5가지 요인별로 원인이나 배경 그다음에 운동의 주체, 목표, 투쟁방식, 결과 이걸로 87년 6월과 11월 촛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해 보셨는데 하나하나 설명해 주세요. 원인과 배경은?

    ◆ 손호철> 사실 6월항쟁은 물론 배경이 간단합니다. 물론 나중에 7, 8월항쟁, 노동자 투쟁까지 합치면 복잡해집니다마는 6월항쟁 자체는 대통령의 권리를 빼앗은 어떤 유신적 체육관 선거에 저항해서 대통령직선제 하자. 그다음에 좀 더 나가면 군사독재 종식시키고 민주정부 세우자 이거였다면 이번 촛불혁명의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박근혜 게이트가 있죠.

    ◇ 정관용>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

    ◆ 손호철> 누구는 ‘퍼피 게이트(puppy gate)’라 해서 강아지 때문에 최순실하고 고영태가 싸워서 일어난 거다. 미국 신문은 썼습니다마는 그런 것이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사실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도 그렇고 그다음에 블랙리스트에서부터 정경유착, 공안통치 이런 걸 보면 밑바닥에 표면적으로는 박정희 체제의 유산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실은 저는 87년 민주화 체제의 불완전성이 여기에 있다고 봐요. 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를 들면 대통령,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죠.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 문제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도 아들 문제 있었고 하다 못해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박연차 게이트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 걸 생각하면 어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나 불완전한 민주화, 이런 것들에 원인이 있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촛불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떻게 보면 원인은 6월항쟁의 미완결성에 있다고 봐요. 6월항쟁이 제대로 끝났다면 어떻게 30년 뒤에 블랙리스트가 나오고 아직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거죠.

    그것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거고 더 근본적으로 밑에 들여다보면 사실은 저는 역사가 지난 다음에 이번 촛불혁명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누구냐 그러면 저는 정유라라고 평가할 거라고 봐요. 이게 부모가 돈 많은 것도 실력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우리 헬조선과 흙수저, 정말 입시공부하는 모든 젊은이들, 모든 사람들 대부분을..

    ◇ 정관용> 화나게 했죠.

    서강대 손호철 교수(사진=시사자키)

     


    ◆ 손호철> 분노하게 했죠. 이 분노가 결국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번 촛불혁명의 원인이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에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적인 옥스팜이라고 하는 자선단체의 총재가 연설을 했는데 세계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때문에 양극화가 심각하다, 이 얘기를 하면서 한국에서 촛불이 있었는데 이건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경제적 반란이다 이렇게 사실은 설명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손호철> 그럴 만큼 이것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그 밑바닥에 있는 것은 헬조선의 문제죠.

    ◇ 정관용> 정유라라고 하는 이름 하나에 함축된 사회경제적 요구, 그걸 주목하셨다?

    ◆ 손호철> 문 대통령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지금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민주주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바로 거기에.

    ◇ 정관용> 알겠습니다. 역시 항쟁과 혁명이라는 명명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군요. 그다음에 주체 세력?

    ◆ 손호철> 주체세력의 경우에 물론 촛불항쟁의 경우에 우리가 최근에 겪은 것이고 훨씬 더 조사 방법이 많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6월항쟁의 경우는 30년 전이라 자료들이 별로 없거든요.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경험을 못했습니다.

    ◇ 정관용> 왜요, 외국에 계셨나요?

    ◆ 손호철> 제가 사실은 80년 광주 때 기자하다가 80년 광주를 폭도가 한 거다라고 정부에서 무조건 쓰라고 그래서 제작 거부 운동하다가 신문사도 관둬서.

    ◇ 정관용> 왜요?

    ◆ 손호철> 잘려서 미국 유학 갔었거든요. 저를 교수로 만들어준 제일 큰 은인이 전두환입니다. 아니면 지금도 기자를 했을 텐데. 벌써 명퇴했겠죠.

    그래서 유학 시절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6월항쟁은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매일 도서관에서 한국뉴스 보고 이랬었는데 이번에 논문을 쓰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무래도 학생이 중심적인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요.

    ◇ 정관용> 넥타이부대도 있죠.

    ◆ 손호철> 그렇죠. 그리고 시민들의 넥타이부대는 너무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시대 화이트컬러였기 때문에 눈에 잘 띄고 점심시간에 나올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노동자들은 근무 빼먹고 못 오니까요.

    그런데 저녁이라든가 지역 공단지역을 보면 사실 넥타이부대만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자료를 보니까.

    우리가 넥타이부대에 대한 신화 이거는 신화적인 측면이 있는 거고 어쨌든 많이 시민들이 참여했고 그다음에 또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전면적으로 결합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반면에 이번의 경우에는 사실 학생운동은 별로 중요하지 않구요,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도 참여했습니다만 학생운동이 중심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중심인데 훨씬 더 그 범위가 광범위해졌고 깊어졌다는 겁니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에서 실제 참여한 사람들 앙케이트 조사를 했어요. 보니까 여성이 50%가 넘습니다. 정말 87년 때도 여성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거든요.

    ◇ 정관용> 남성이 많았죠.

    ◆ 손호철> 그렇죠.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60세 이상이 23%나 됩니다.

    ◇ 정관용> 그래요.

    ◆ 손호철> 그러니까 노인층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고요.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시민사회의 성장, 시민의식의 발전 이런 것에 기인해서 참여층이 훨씬 넓어졌다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인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 인원을 정확히 모르니까.

    ◇ 정관용> 87년도를 잘 모르죠.

    ◆ 손호철> 그리고 더군다나 100만 명 모였다는 기준을 제일 많이 이야기해요. 87년에 100만 명 모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230만이지 않습니까.

    ◇ 정관용> 최대로 모였을 때가.

    ◆ 손호철> 이번에 5달이었고 그때는 20일인데 딱 압축적으로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5달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토요일만 했으니까.

    ◇ 정관용> 주말만 했으니까.

    ◆ 손호철> 합치면 20일 비슷합니다.

    ◇ 정관용> 비슷하네요.

    ◆ 손호철> 이번에는 1600만 이렇게 얘기하고 그 당시에는 500만 이렇게 얘기하는데 또 그 당시에는 인구도 적었고 훨씬 더 20% 정도 적었는데, 하여간 지금이 더 많이 참여한 게 사실이고요.

    전반적으로 통계를 내보면 인구의 30%, 그러니까 연인원으로. 10명 중 3명 정도가 참가했는데 그 당시에는 10% 초반. 10명 중에 1명 정도 했었고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주목할 것은 이번에는 축제 같았지만 87년 그 당시에 데모에 참여한다는 건 정말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 정말 모든 걸 걸고 나왔었던.

    ◇ 정관용> 무력 진압이 계속 됐었기 때문에.

    ◆ 손호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그 당시에 결단이라든가 용기 그런 측면에서는 87년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나 범위와 폭 이런 걸로 봐서는 11월이 더 넓어졌고.

    ◆ 손호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제일 중요한 변수는 사실 정부의 대응인데요. 경찰이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 정관용> 함께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이 많았죠.

    ◆ 손호철> 그리고 이쪽 대응도 굉장히 최소한의 폭력, 대항폭력을 사용했고요. 돌, 화염병 이런 거는 기본이고.

    ◇ 정관용> 보도블록 깨서 던지고.

    ◆ 손호철> 그래서 보면 학생들은 그 당시에 비폭력 이런 걸 외치지만 시민들이 오히려 뭔 소리냐. 우리도 같이 대항해야 한다라고 했던 그런 거라면 이번의 경우에는 정부의 대응 자체가 비폭력적이었고 전반적으로 비폭력으로 한 것이 중요한 차이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다음 목표, 목표는 아마 원인과 배경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 손호철>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제한된 목표였죠. 그래서 직선제 개헌 그다음에 또 나가면 민주정부 수립이었다면 이번에는 굉장히 좀 넓은. 물론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박근혜 퇴진이었지만 그다음에는 소위 적폐청산 플러스 헬조선을 벗어난 탈헬조선 이런 것들이 목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정관용> 투쟁 방식 부분에 있어서는요?

    ◆ 손호철> 투쟁 방식의 경우에는 소위 80년하고도 비교할 필요가 있는데요. 80년 봄에 실패한 거는 우리가 최대주의와 최소주의로 나뉘어서 분열돼 있었던 반면에 87년은 우리가 직선제 개헌이라는 목표로 전부 다 단결되어서 최소주의적으로 단결했기 때문에 이겼다고 항상 정치학계에서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그 함의는 보수적인 해석이에요. 그러니까 너희들, 많은 걸 요구하지 말고 최소 목표로 다 합쳐야지만 이긴다는 것인데 사실은 80년도에 보게 되면 목표는 그냥 정말 계엄령 철폐라고 하는 아주 작은 목표였잖아요. 그런데 투쟁 갈라진 거는 목표가 아니라 투쟁 방식에서 갈라진 거예요. 제도권하고 가자는 거하고 거리로 나가자 하고 나눠져 있었다면 87년은 뭐예요. 전부 거리로 나왔잖아요.

    ◇ 정관용> 거리밖에 방법이 없다?

    ◆ 손호철> 오히려 최대주의적으로 단결해서 이건 거거든요. 다 거리로 나왔기 때문에 이겼던 것이죠. 오히려 최소주의적으로, 거리로 나가면 안 돼 이 얘기를 자꾸 하는데 그게 아니라 다 거리로 나와서 이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민주화 역사를 사실 해석할 필요성이 있고요. 그런데 어쨌든 그런 중에서도 예를 들면 다른 나라나 또는 광주 5. 18과 같이 무장투장이나 이런 건 하지 않았고요. 그냥 거리에 나왔지만 폭력적인 대항폭력, 최소한의 폭력을 했던 게 87년 6월이라면 이번의 경우에는 다 거리로 나왔지만 거기에다 플러스 비폭력.

    ◇ 정관용> 그렇군요.

    ◆ 손호철> 가능하다면 비폭력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더 진화된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은 물론 그 당시에도 초기에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니까 전두환이 4. 13 호헌 조치를 합니다. 그러면 전경련. 하다못해 한국노총도 지지 선언을 했어요.

    그렇지만 그 6월에 항쟁을 할 때 보수세력이 나와서 개헌 반대한다라고 하는 시위는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번에 보면 태극기 같은 그런 집회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거는 어떻게 보면 그동안에 30년 동안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분화되고 특히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세력이 어떻게 보면 조직화 이런 것들이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그런 측면들이 있는 것 같고요.

    결과 면에서 보면 87년에 반 성공한 거라고 봐요. 왜? 우선은 직선제 개헌에는 성공했지만 그렇지만 양김이 분열하면서 정권교체 실패하고 군사독재가 계속 이루어진 측면은 있고요.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정치의 민주화에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된 87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했고요.

    이번 촛불의 경우에는 박근혜 퇴진, 탄핵 1차 목표는 확실하게 성공을 했고 2차 목표인 적폐 청산의 경우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런데 사드 같은 거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지 않습니까? 미국하고의 문제가 걸려 있고 동북아의 문제.

    그래서 그 문제는 어떻게 될지 지금 굉장히 어려운 그런 진행형적인 문제가 있고요. 더 밑바닥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도 얘기했습니다마는, 헬조선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정관용> 사회, 경제적인 부분.

    ◆ 손호철> 이것은 정말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다행히 특히 새 정부가 이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못할 경우 사실 주목할 것은 97년 대선에서 우리나라가 보면 일종의 계급투표를 했어요.

    가난한 사람일수록 김대중 대통령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10년 뒤 2007년에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명박 찍었습니다. 왜냐하면 10년 동안의 양극화 때문에.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거죠. 지금은 박근혜 게이트와 그다음에 지금 촛불 때문에 박정희 신화나 향수가 사라지고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문제나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잘못하면 한국판 트럼프가 나올 가능성도 있고요.

    그래서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양극화에 대한 대응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샌더스 같은 진보적인 길이 있고요. 두 번째는 트럼프나 일베적인 방식.. 그래서 아주 보수적인 이런 극단적인 대응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한국의 민주주의, 어렵게 획득한 민주주의의 장기적인 어떤 안정을 위해서도 민생문제, 경제적 양극화 문제는 꼭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극복이라고 하는 데에 대다수 국민들이 일단 공감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손호철> 그렇습니다.

    ◇ 정관용> 하지만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야만 바꿀 수 있는 게 또한 이 사회 경제적 양극화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현재 국회 구성은 국민 다수의 동의와 다르단 말이에요. 야당 특히 보수적 야당이 더 과반을 넘는단 말이에요. 이 속에서 어떻게 이걸 해결해 나가야 합니까?

    ◆ 손호철> 그러니까 탄핵 이전에 이미 구성돼 있는 의회 의석이기 때문에 민심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참 어려운 겁니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하나는 적폐 청산이나 쉽게 말해서 개혁이라는 과제와 두 번째는 국민통합이라는 과제가 있는데 두번째 과제는 특히 이중적입니다.

    하나는 결국은 촛불을 통해서 더군다나 그 보수세력이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이념하고 무관한 부패와 범법 행위를 이념 문제로 몰고 가서 그래서 결국은 국가가 이렇게 갈갈이 찢어졌기 때문에 그걸 통합시켜야 되는 문제.

    두 번째는 여소야대의 국회를 해결하는 문제 이런 측면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저는 현 정부가 좀 한 발짝 더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 박지원 의원의 의견에 상당히 동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일종의 우리가 시행령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오바마도 했었고요. 그래서 결국 국회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블랙홀 되고 너무 어려우니까 결국 대통령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 정관용> 그건 한계가 있잖아요.

    ◆ 손호철> 그건 일시적 해결밖에 안 되는 거고요. 근본적으로는 협치를 해야 되고요. 연정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결국 일종의 동심원이라고 보고 같이 할 수 있는 가장 코어, 코어 할 수 있는 부분을 구성하고요. 어느 정도 권력을 나누면서 연정이나 새로운 다당제 하에서의 정치를 풀어가는 그런 문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고 하면 처음부터 공감대를 만들고 해나갔어야 하는 것인데 이게 벌써부터 삐그덕삐그덕 벌써부터 걸려 있고요. 결국 여론을 가지고 이제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식인데.

    ◇ 정관용> 그런데 압박이 안 먹히잖아요.

    ◆ 손호철> 쉽게 해결 안 될 거라고 보여지고요. 그래서 좀 늦게 가더라도 문제를 정통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나마 공통분모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야당들과의 협치와 연정 구도를 통해서 사회경제적 미완의 혁명을 완성된 혁명으로 끌고 가라. 이런 말씀이군요. 문재인 정부가 우리 손호철 교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손호철> 감사합니다.

    ◇ 정관용> 서강대학교 손호철 교수였습니다.

    [CBS 시사자키 홈페이지 바로 가기]

    [CBS 시사자키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 가기]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