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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내몰고 차별 숨기고…"무기계약직=가짜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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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내몰고 차별 숨기고…"무기계약직=가짜 정규직"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①]차별 만연해도 고용안정성 들어 정규직 취급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실행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 만에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CBS노컷뉴스는 5회에 걸쳐 외주화로 얼룩진 공공부문부터 악마의 공장으로 돌아가는 민간부문까지 철저하게 은폐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들여다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불법 내몰고, 차별 숨기고…"무기계약직='가짜'정규직"
    ② '착한' 지자체도, '안전' 업무도 예외없다
    ③ '악마의 공장' 만드는 사기업...정규직 '0' 공장까지
    ④ 숨은 '사용자', 은폐된 '비정규직'…"실태부터 드러내라"
    ⑤ "대통령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무대로 나오는 비정규직

    새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 대상으로조차 잡히지 않는 비정규직들이 있다. 무려 23만 명에 이르는 공공부문 무기계약직들이다. 정부는 '고용안정성'을 들어 이들을 정규직 취급하지만, 정작 무기계약직은 임금과 복지 등에서 갖은 차별은 물론 불법 행위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 ‘불법’이지만 "무기계약직이니까 한다"

    무기계약직들은 과적단속, 불법운행을 단속하는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충청남도의 한 국도, 시속 100km로 달리는 덤프트럭이 점령한 이 곳이 A 씨의 20년 된 일터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자칫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운행제한단속 업무. A 씨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관리소 소속 무기계약직이다. 그는 이 곳에서 차량의 과적, 불법운행 등을 단속하고 있다. 2010년부터 최근까지 A 씨의 동료들이 당한 사고는 80건에 달한다. 이중 12명은 목숨을 잃었다.

    정규직 공무원이 꺼리는 이 위험한 업무는 불과 1년 전,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불법이었다. 관련 훈령은 A 씨와 같은 무기계약직 단속원들끼리만 단속업무를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바뀌기 전 훈령에 따르면, 과적단속은 정규직 공무원인 '도로관리원'과 무기계약직인 '과적단속원'이 함께 나가야 가능 했다. 단속권한이 공무원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나가는 사람은 무기계약직 뿐이었다. A 씨는 법적근거도 없이 정규직 공무원 몫의 업무를 수년 동안 했던 것. 그는 "단속이 도로 한가운데서 이뤄지다보니 공무원들이 관련 업무를 기피했다"며 "당시엔 단속권한이 없다 보니 운전자들이 '공무원증을 보여 달라'하면 어찌해야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국토부가 훈령 개정을 통해 이뤄낸 것은, 무기계약직에게 불법을 강요하는 실태를 '합법화'한 것일 뿐이다. '운행제한단속원'이라는 직급을 신설하며 무기계약직에게도 단속권한을 줬다.

    많은 곳에서 무기계약직인 과적단속원을 반장으로 한 채 팀을 꾸려 단속을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이 기피하는 일을 자신들이 떠맡은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단속업무는 오롯이 무기계약직들의 몫이 됐다. 개정 훈령은 단속업무를 '도로관리원과 운행제한단속원의 업무'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CBS노컷뉴스가 확인한 출동기록에는 무기계약직으로만 단속팀을 꾸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보은, 예산, 남원 등의 국토관리사무소에는 도로관리원이 한 명도 배치돼 있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무기계약직 단속원들이 받는 월 임금은 공무원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A 씨는 "무기계약직이 불법으로 해온 단속 업무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중앙행정부처 내 무기계약직들은 불법에 내몰릴 뿐 아니라 갖은 차별에도 이미 익숙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칙은 이 세계에서 유명무실하다.

    ◇ 초과근무도 차별…무기계약직은 16.5시간만

    법무부 산하 지방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고 이들을 보호소로 호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무기계약직 B 씨의 경우를 보면, 일상화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간 임금과 승진 기회의 차별을 알 수가 있다.

    B 씨가 하는 일은 정규직 공무원과 같다. 하지만 가족수당, 특수직무수당은 물론 추가근무수당에도 제한이 있다. 호송업무 특성상 단속출동이 언제든 잡힐 수 있고 평일‧주말, 밤낮 구분 없이 일을 하지만, 초과 수당은 16.5시간 이상 지급되지 않는다.

    반면 B 씨와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은 초과근무 제한이 56시간이다. B 씨 같은 무기계약직에 비해 무려 3배가 넘는다. B 씨는 "16.5시간을 넘게 일해도 사무소에서는 '전산시스템에 초과근무내역을 등록하지 말라, 어차피 줄 수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당한 노동에도 무기계약직이란 이유로 돈을 못받는 B 씨의 월급은 180만원 남짓이다.

     

    여기에 호봉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B씨 같은 무기계약직은 승진은 물론 호봉 체계 자체에서 배제돼 있기 때문다. 물가상승률만 반영될 뿐 임금 협상도 없다. 월급다운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주휴수당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은 일주일에 하루도 쉴 수가 없다. 몸이 아파도 병가가 아니라 자신의 연차를 소진한다.

    이 모든 것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공무원이라는 고용 형태 하나 때문에 벌어진 차이다. B 씨가 월 180만원을 받을 때 비슷한 직급의 정규직은 100만원 이상을 더 번다.

    지난해 7월 소속 무기계약직들은 명백한 차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자, 사무소는 제도개선 보다는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등 어떻게든 저임금으로 인력을 활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B 씨는 "인권위 진정 이후 사무소에선 아예 16.5시간 이상 초과로 일하지 말라며 출동도 제한했다"며 "어느 때보다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야간엔 안 나갈 수도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 정부가 숨긴 '가짜 정규직' 2만여명

    이처럼 정규직과의 차별은 물론 불법 행위에까지 내몰린 무기계약직은 중앙부처에만 2만 1천명, 정부와 지자체 산하기관 등 전체 공공부문에 21만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정확한 규모가 집계되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고용안정성을 이유로 이들을 정규직 신분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무기계약직을 '숨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관리소와 법무부 산하 지방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사례에서 처럼 대다수 기관은 무기계약직을 업무와 임금, 승진 등에서 차별을 두기 위한 방편으로 쓰고 있다.

    심지어 정규직의 가족이나 퇴직자에게까지 주는 혜택을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배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찰병원으로 수사를 제외한 각종 행정업무에서 경찰 공무원과 똑같은 업무를 보는 경찰내 2천여명의 무기계약직들은 경찰병원 이용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에 있어 '무기계약직 방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다시 말해 무기계약직화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해결책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무기계약직에게는 승진과 처우개선의 사다리가 끊겨 있다”면서 “비용을 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고용만 보장한 가짜 정규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 무기계약직은 사실상 실패한 정규직화 모델인 만큼 상시업무는 고용 시부터 정규직으로 고용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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