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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는 '학생이 용돈 벌려고 잠깐 하는 일'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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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는 '학생이 용돈 벌려고 잠깐 하는 일'이 아니에요"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 가현이들 GV]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가 개최하는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가 올해로 5회를 맞았다. '노동', '노동인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영화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고 노동현실을 함께 되짚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보통 슈퍼우먼'이다. 낮은 곳에서 힘겨운 노동을 담당하며 육아노동까지 책임지는 '여성노동자'에 초점을 맞춰, 국내와 국외를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CBS노컷뉴스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29~30일 양일 간 열리는 '보통 슈퍼우먼'의 상영작을 훑고, 영화의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관객과의 대화'를 전한다. [편집자 주]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보통 슈퍼우먼'의 첫 상영작은 남순아 감독의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다. 아빠에게 충분한 용돈을 받으며 사는 순아는 혼자만 편하게 사는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를 덜기 위해 알바를 시작한다. 하지만 저임금과 고용의 불안정 등을 몸소 체험한 순아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다.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하는 고민에.

    이와 함께 짝지어서 함께 올라간 작품은 윤가현 감독의 '가현이들'이다. 너무 잦은 해고, 너무 낮은 임금, 너무 낮은 대우라는 3중고를 겪는 '알바'들도 '노동자'라는 것을 세상 앞에 외치는 '알바노조'의 이야기를 담았다. "술 먹고 택시 타고 싶다"거나 "돼지갈비 먹고 싶다"며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알바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현이들'이라는 제목은 알바노조에 '가현'이라는 이름을 지닌 조합원이 셋이나 되는 데서 착안했다. 영화 말미에는 새 조합원으로 또 다른 '가현이'가 들어오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 상영 후, 각각의 작품을 만든 남순아 감독과 이가현 감독이 등장했고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두 작품 모두 자기 자신의 이야기 혹은 비슷한 처지의 '우리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였기에, 질문 역시 감독들의 '삶'과 뗄 수 없는 내용이 다수였다.

    ◇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로 만든 이유

    남 감독은 원래 극영화를 찍어왔다. 최근에는 '걷기왕' 시나리오 작가와 스크립터로 찹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라는 다큐를 찍게 된 이유는 뭘까.

    출발은 단순했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 농성'을 하는 중이었던 아는 오빠 덕에 농성장에 가게 됐고, 거기서 무엇이 '노동'인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시발점이 됐다.

    남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숱한 노동을 해야했지만 그 오빠는 '일을 하고 돈을 받아야 노동'이라며 남 감독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 '왜 나는 내 일을 노동으로 인정받고 싶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이걸 만들지 않으면 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정리되지 않겠다 싶어서 다큐를 하게 됐다"는 게 남 감독의 설명이다. 하다 보니 재밌어서 앞으로도 다큐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상영작 '가현이들'

     

    반면 윤 감독은 다큐 제작의 재미를 인정하면서도 이 과정을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고 답했다. 윤 감독이 다큐를 만들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은 김미례 감독의 '외박'을 보고 난 뒤부터였다. 드라마 '송곳'과 영화 '카트'에 앞서 만들어진,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들의 투쟁기였다.

    윤 감독은 "너무 많이 울고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여성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게 아니라 아내, 아줌마, 엄마라는 여성의 온갖 이슈를 다뤘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다큐 기획의 계기는 또 있었다. 미디어에서 '알바 노동자'를 그리는 방식이 너무 단편적이고 획일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안 해 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알바왕'이었던 윤 감독은 그 덕에 알바노조로 들어오는 인터뷰를 도맡은 적이 있는데, 언론이 원하는 장면은 정해져 있었다. 한달에 60만원을 받는데 월세로 30만원 나간다는 언급에 주목했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장면을 찍고 싶어 했다.

    윤 감독은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알바 노동자 자체가 '불쌍한' 모습만 나가는 거다. (제 처지가) 좀 불쌍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초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며 "당당한 내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아무것도 아닌' 나도 초밥을 먹어도 될까요?

    영화 만들면서 가장 북받쳤던 순간을 묻자 윤 감독은 "사실 이 영화 만드는 모든 순간이 고난이고 고비였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면 다시는 영화 안 만들어야지 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본인도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였기에 영화 찍는 비용 부담이 컸다. 그렇지만 윤 감독을 고민에 빠지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동자의 이미지'가 아닌 '알바 노동자'들을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이런 이슈(알바 노동)를 세상에 알리려고 하면, 새로운 노동환경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공장 노동자, 고공농성하는 노동자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또 알바를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가 하는 큰 것에서부터,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건가 등 매 순간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상영되고 있고, (영화를 본 후) 관객들이 '저도 알바 노동하고 있다. 많이 위로받고 간다', '힘이 난다'고 해줬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상영작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남 감독이 울컥한 순간은 UN인권헌장을 봤을 때였다. 갑자기 웬 인권헌장이냐고? 이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그가 왜 이 영화를 찍게 되었는지, 그 첫 질문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남 감독은 '나는 초밥을 정말 좋아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초밥 먹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남 감독은 "어느 날은 '그래, 이런 사람도 인간이고 존엄한 존재니까 꼭 삼각김밥으로 연명하지 않고도 충분히 생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날은 '나는 쓰레기다'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나는 쓰레기야'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마무리할 즈음에도 (첫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지 못해서 '왜 사람에게 인권이 있어야 하는가?', '왜 사람에겐 존엄이 지켜져야 하는가?', '정말 우리 모두가 평등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왜 인권이 필요한가요?' 하는 지식인 질문을 보게 됐다. UN인권헌장 보면서 울고… 그런 걸 고민할 때 좀 울컥울컥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 전태일 열사 47주기… 왜 아직도 '근로기준법'은 안 지켜질까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와 '가현이들'의 GV가 진행됐다. (사진=김수정 기자)

     

    두 감독은 GV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알바노조에서 '알바의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윤 감독에게는 '왜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안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이 왔다.

    윤 감독은 "알바라고 불리는 일 자체가 스쳐가는 일, 잠깐 하는 일처럼 인식된다. 알바 노동자를 '알바생'이라고 한다. 학생이 하는, 불완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소기업 관계없이 생리휴가 쓸 수 있고 근로기준법으로 보장받는 건 다 받을 수 있는데 왜 알바는 못 받을까. 되게 하찮고 접근이 너무 쉬운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이 영화하면서 알게 된 건 많은 사람들이 알바를 '타자화'하고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어디서나 알바를 만나는 만큼, 온 세대가 알바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봐도 된다"고 강조했다.

    남 감독은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답을 찾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못 찾았다"고 답했다. 그는 "제가 일을 안하는 건 아니다. 일하는 것에 비해 적게 받거나, 제가 하는 일은 사회에서 임금노동으로 대우받지 못하더라"며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지만, 아빠가 돌아시기 전에 좀 괜찮은 세상을 만들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남 감독과 윤 감독은 차기작에서 각각 '한국의 여성영화인'과 '꾸미기 노동'을 다룰 예정이다. 윤 감독은 "(회사에서) 머리망, 스타킹, 구두, 립스틱까지 지정받는다. 안경 쓴 여성노동자는 없지만 안경 쓴 남성노동자는 있지 않나"라며 제작에 돌입한 계기를 짧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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