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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기업, 준비 안 된 학생" 현장실습 동상이몽



전북

    "준비 안 된 기업, 준비 안 된 학생" 현장실습 동상이몽

    [현장실습 불편한 진실 ②] 취업 위해 기업 대표에 90도 인사하는 교사들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다 숨진 홍수연(17) 양의 사건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현장실습은 직업현장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이라고 '교육'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취업'에 다름 아니다. 성년이 되기 전 고교생이 저임금 노동자로 미흡한 법적 보호 속에 노동현장에 투입돼 '제2의 홍수연 양'이 될 우려가 크다. 현장실습의 3주체인 학교와 기업, 학생들의 입을 통해 3차례에 걸쳐 현장실습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교육이라 쓰고 취업이라 읽다" 현장에 내몰린 학생들
    ② 취업 위해 기업 대표에 90도 인사하는 교사들


    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 모습. (사진=전북교육청 제공)

     

    "성실하고 똑똑하다고 해서 썼더니 그만두고 이게 뭡니까? 다시는 현장실습생 안 받을 겁니다."

    수년 동안 특성화고 취업부장을 맡은 교사가 기업체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이 업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취업한 학생이 대학에 가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자 교사에게 돌아온 업체 관계자의 화풀이다.

    "명색이 학교장이 현장실습 학생을 만나보러 갔는데 기업 사람들이 차 대접은 고사하고 본체만체 하더군요."

    특성화고의 한 교장은 최근 현장실습 업체에서 일하는 학생을 위해 순회지도에 나섰다가 기분이 크게 상했다고도 했다.

    취업부장은 특성화고 교사 사이에서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로 통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현장실습을 원하는데 학생을 보낼 취업처는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학생을 위해 취업처가 될 기업 대표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장실습을 많이 내보낸다고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장실습생이 잘 적응하는지 살피고 상담하는 추수지도 역시 취업부장의 몫이고, 혹여나 일이 터지면 그 역시 취업부장의 몫이다.

    전북교육청은 올해 특성화고 취업부장 교사의 수업시수를 줄이고 담임교사 등의 추수지도를 권고하는 등 취업부장의 짐을 덜어줄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기관의 교사인지, 취업기관의 부장인지 취업부장 교사들의 현실적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보따리장사인지 교사인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현장실습에 대한 기업의 마인드 부족이라는 게 취업부장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현장실습, 기업 인식과 학교 교육 바뀌어야

    올해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한 B양은 몇 차례 현장실습 면접을 갔다가 당황한 기억이 있다. 분명 서류에는 휴일 근무가 없다고 돼 있었지만 업체에서는 격주로 토요일 근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B양은 "서류에 쓰여 있는 것과 실제 하는 말이 다른 경우가 많다”며 “주5일제 40시간 일하는 업체에서 일하고 싶은데 많지 않다"고 말했다.

    숨진 홍수연 양이 현장실습을 한 LB휴넷의 경우에도 학교와 회사, 학생이 작성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는 월 급여 160만5000원으로 기재됐지만 입사 뒤 홍 양이 회사와 113만 원(수습기간)에서 134만 원(수습이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현장실습 시간은 1일 7시간, 1주일 35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고 당사자 합의에 따라 1일 1시간, 1주일에 5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며, 휴일 근무는 금하고 있다.

    그러나 한 특성화고 취업부장 교사는 "법에 맞게 학생을 현장실습하려 하게 했더니 업체 관계자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채용하려는 게 아닙니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답답해했다.

    전북 완주의 한 기업체 관계자는 "3~4년 전에는 현장실습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학생들을 일반 근로자와 똑같은 업무에 투입했더니 대부분 힘들어서 퇴사했다"며 "1년 간은 인력에 대한 투자라 생각하고 여러 기술을 가르치며 지원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학생들도 만족하고 대부분 취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지역 특성화고를 알리는 현수막. (사진=자료사진)

     

    ◇ 기업의 불만, 현장과 다른 교육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대해 기업들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불만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기업들은 특성화고에서 진행하는 교육과 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학생 능력 사이에 격차가 크다고 말하고 있다.

    전북 익산의 한 기업체 관계자는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서 전문가가 되거나 창업을 하는 등의 목적의식 있는 학생도 있지만 낮은 자존감과 패배의식에 젖은 학생도 적지 않다"며 "3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학생도 많아 학교에서 학생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진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완주군의 한 기업체 관계자도 "회사의 필요와 학교의 교육이 달라 현장에 와서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을 보곤 한다"며 "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회사에 맞는 개별 교육을 학교에서도 한두 과목 정도 진행하며 부적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취업한 임모(21)씨는 "학교에서는 책으로만 공부하다가 현장에서 직접 겪으면서 학교에서 못 느낀 것을 많이 배웠다"며 "자격증이나 취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다가 막상 3학년이 되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1~2학년 때 일주일 정도라도 기업 현장에 나가면 학생 스스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제안했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일·학습병행제인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의 확장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도제학교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학생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3일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나머지 기간은 기업에서 실습하며 학습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도제학교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노동인권 침해나 이같은 상황에 노출될 위험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익산의 기업체 관계자는 "현장실습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적은 임금으로 인력을 채용한다는 식의 사업주 인식이 바뀌는 것과 동시에 특성화고 교육 역시 현실적으로 바뀌는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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