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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기결정권은 생명권을 침해하는가



책/학술

    죽음의 자기결정권은 생명권을 침해하는가

    <존엄한 죽음>

     

    <존엄한 죽음="">는 2018년 2월 웰다잉법 시행을 앞두고 환자의 존엄과 가족의 평화를 지켜줄, 존엄한 죽음을 위한 안내서다. 저자 최철주는 딸과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며 본격적으로 죽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이별의 아픔을 보듬고 극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2005년 국립암센터가 주관하는 호스피스 아카데미 고위과정을 수료하면서 미국, 일본 등의 존엄사 문제를 취재해왔다. 이후 웰다잉 강사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며 죽음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오랜 기자 경력으로 우리네 죽음의 모습을 생생하고 담담하게 포착해내며 존엄한 죽음에 마음 열기를 제안한다. 책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유도 이 문제에 대해 질문해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노년의 부모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녀들과 이야기하기를 민망해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죽음에 대해 말을 꺼내기가 껄끄럽기만 하다. 저자에 따르면 부모의 죽음 앞에 자녀들의 효도라는 관념은 체면치레로 변질되고 불효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환자가 임종과정에 이르렀을 때 주변의 말과 시선들 때문에 연명의료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아니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 죽음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가 어렵다. 저자가 “이 문제는 내 뜻대로 끌고 가는 것이 가족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겠다”라고 판단한 이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일종의 유언장인 ‘우리 가족을 위한 서약서’ 작성에 얽힌 에피소드에서는 이런 생각에 닿은 과정이 자세히 드러난다. 관념적인 내용보다 실제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책에 담았다.

    2016년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 2018년 2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약 2년의 유예기간에도 준비는 미비하다.

    저자는 헌법 제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언급한다. 나아가 여기서 행복이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찾는 것이고, 자신의 존엄과 가치도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 연명치료 중단이 생명을 단축한다고 해서, 환자의 의지에 반하여 인위적으로 신체를 침해한다면 이는 행복추구권에 어긋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타인이 내 죽음에 개입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책 속으로

    아내와 딸이 세상을 떠난 뒤 나는 항상 배낭을 챙겨두었다. 수트케이스도 언제나 대기 중이다. 하루하루 삶이 버거워질수록 누군가는 나더러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우는 대신 그리움을 집에 내려놓고 여행을 하기로 작정했다. 비우는 것과 내려놓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아픔으로 남았다. 아픔의 자리를 외과 의사가 말끔히 도려내듯 수술하는 것이 ‘비움’이라면,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지켜보며 치료하는 것을 ‘내려놓음’의 출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어느샌가 내려놓음을 선택하는 방법을 배웠다. 길을 떠날 때면 나는 마음 한쪽을 내려놓는다. -16쪽

    가상이라 하더라도 생사의 경계선에서는 가족들이 부모의 연명의료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빨리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들려서 오히려 노여움을 살 수도 있다. 존엄사를 강조하는 부모에게조차 침묵을 지키는 것이 자식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의 경우 지금까지 아들 내외가 서약서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서로가 각자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당연한 사실보다, 내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에 관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내 뜻대로 끌고가는 것이 가족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겠다 생각했다. -47쪽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다면 이 같은 선택이 쉬울까? 어둡고 긴 고통의 터널에 갇혀 외마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숨을 거두기 십상이다. 나를 돌보던 가족에게는 씻어낼 수 없는 악몽이 될 것이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추억하기 싫은 죽음이자 불행한 유산이 될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연명의료를 거부한다. -88쪽

    인생의 주요 고비마다 자기 스스로 매듭지어야 할 일이 많아요. 자기결정에 따른 것이지요. 인생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마지막 임종과정에 접어들었을 때는 자연의 섭리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연명치료에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해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고 가족에게도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내 죽음에 개입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내 죽음을 가족이 결정해버리거나 의사가 내 죽음에 개입하게 내버려두는 것이지요. 왜 나에게 주어진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력을 그냥 버려야 하나요? 여러분의 죽음을 남에게 맡기겠습니까? -162쪽

    “여러분은 진정으로 환자를 사랑하는 가족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체면을 위해, 또는 가족, 친지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환자의 희망과 달리 무작정 연명의료로 들어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맹목적 효도가 되지 않을까요. 환자의 유언을 배반하지 마세요. 확신을 가지고 환자의 뜻을 존중해주세요.”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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