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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50인이 안내하는 지知 의 최전선



책/학술

    사상가 50인이 안내하는 지知 의 최전선

    신간 '현대 철학 로드맵'

     

    '현대 철학 로드맵'은 철학이라는 분과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최신 이론들을 소개한다. 지제크나 아감벤, 바디우처럼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주디스 버틀러, 에마뉘엘 토드, 노르베르트 볼츠, 로버트 브랜덤처럼 자기만의 분야를 개척한 떠오르는 ‘스타’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부터 미국의 정의론, 미디어 이론과 사회학, 윤리학까지 확장되는 사상을 맛보다 보면 독자들은 그 다채로운 흐름 속에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현대 철학 로드맵'은 또한 사상의 진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훌륭한 현대 철학 지도다. 그 지도의 출발점은 이 책의 1장에 잘 갈무리되어 있다. 근대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분석했던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의식’ 중심의 근대 철학을 뛰어넘어 ‘언어론적 전환’을 감행한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근대라는 시대의 귀결을 ‘철의 우리iron cage’와 ‘게슈텔(ge-stell, 닦달하기)’로 독특하게 개념화한 베버와 하이데거가 그들이다.

    이들 현대사상의 개척자들이 일궈 놓은 땅에서 구조주의가 포스트 구조주의로 교체되었고, 이제는 그마저도 유행에서 밀려나 미디어 이론이나 새로운 사회학 이론 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저자는 이 생각의 흐름들을 솜씨 좋게 요리해 ‘진화하는 현대사상’이라는 한 상을 멋지게 차렸다. 독자들은 그 상 앞에서 그저 숟가락을 들 준비만 하면 된다.


    '현대 철학 로드맵'은 “현대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에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최신 이론들이 유행하면서 현대 철학이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상’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를 ‘현대 철학에 닥친 불행’이라 비판하며 애매한 비유를 구체적인 사례들로 대체하고 짧은 설명으로 각 사상가들의 정수를 담아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사회’를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빗대 설명한다든지, 데리다의 ‘탈구축’을 연애의 메커니즘으로 이해시키려 한다든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일간지에 오르내리곤 하는 통속적인 표현들로 쉽게 풀어 썼다.

    '현대 철학 로드맵'은 압축적이다. 저자는 사상가 50명의 사유를 한 사람당 세 가지 키워드로 농축해 보여 준다. 각각의 키워드는 사상의 정수를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키워드를 단서로 사상가들의 생각이 발전해 온 경로를 파악하게 한다. 또한 주요 개념들을 혹시라도 놓치지 않도록 표와 그림을 곁들여 이해를 돕고 있다. 띄엄띄엄 알던 지식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도록 구성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현대사상의 재미를 두루 맛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현대 철학 로드맵'은 또한 논쟁적이다. 저자는 핵심만 간추린 짧은 설명 안에서도 철학자들이 부딪힌 난제, 그들 사이에 오간 치열한 설전, 해석을 둘러싼 설왕설래까지, 현대 철학의 민감한 주제들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푸코의 권력론이 가진 한계, 하버마스의 신화화된 철학, 들뢰즈와 가타리의 패러독스 등을 지적하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위상에 왜 흠집이 나게 되었는지, 롤스와 노직은 왜 같은 자유주의를 두고 대립하는지, 지제크의 ‘공산주의 가설’이 왜 허망하게 느껴지는지, 현대 정의론의 향방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등을 균형감 있게 설명한다. 그야말로 지금, 여기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철학을 느낄 수 있다.

    '현대 철학 로드맵' 안에서 철학은 더 이상 한가한 지적 놀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사소통 이성, 공정한 분배, 인정의 정치, 다문화주의, 위험 사회, 계층 분화, 유동하는 근대, 호모 사케르, 아키텍처, 퀴어 이론 등 책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 모두 현대사상이 결코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를 분석했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전체주의의 망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 구조, 그로 인해 첨예해지는 갈등, 소비사회의 덫과 흔들리는 인간 욕망 등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위험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3의 길은 없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저자는 우리의 고민을 더 첨예하고, 더 날카롭게 벼리도록 돕는다. 현대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는 울리히 벡의 경고,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쓰고 버려질 운명에 처했다는 바우만의 통찰, 그럼에도 “또 하나의 세계는 가능하다”는 월러스틴의 외침까지, '현대 철학 로드맵'은 철학으로부터 오늘의 위기를 진단하고 동시에 세상을 바꿀 희망을 찾는다. 동시대인으로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상가들의 사유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철학이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사느냐와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

    책 속으로

    “구조주의의 유행은 1968년 5월 혁명과 함께 종식되었다. 혁명의 에너지를 내뿜던 청년들에게는 구조주의가 체제 옹호의 이데올로기로 보였던 것이다. ‘인간이 구조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타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제2장 프랑스 현대사상〉 중에서, 66쪽

    “‘저자의 죽음’ 이후 무엇이 올까? 이를 바르트는 ‘텍스트’라 부르고 ‘작품’과 구별했다. 텍스트란 라틴어 ‘지어낸 것’에서 유래한 말인데, 바르트는 그 의미를 확장하여 ‘다양한 인용을 엮어서 지어낸 것’이라 이해했다. 저자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인용하여 지어낸 텍스트, 그것이 바르트가 문학을 보는 관점이다.”
    -〈제2장 프랑스 현대사상〉 중에서, 80쪽

    “알튀세르에 따르면 개개의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요청에 호응하면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이 된다. 인간은 국가에 강제로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배 세력 밑으로 들어간다. (…) 자발적으로 자유로운 주체sujet가 실제로는 지배에 복종하는 신민sujet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2장 프랑스 현대사상〉 중에서, 81쪽

    “현대에서는 도처에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 미리 시뮬라시옹 장치로 연습하고, 그 후에 실제 운전을 한다. 혹은 현대의 전쟁에서는 원격지에서 화면을 보면서 스위치를 누르고 미사일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야말로 시뮬라시옹 자체가 현실화된 예다. (…) 우리는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제2장 프랑스 현대사상〉 중에서, 91쪽

    “근대인은 부정적인 자유는 획득했지만 긍정적인 자유는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따라서 고독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고독과 무력감에 가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제3장 독일 현대사상〉 중에서, 125쪽

    “호네트에 따르면 경제적인 ‘분배’를 둘러싼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보수가 적거나, 분배 방식이 나쁜 것은 그 사람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고전적인 분배를 둘러싼 경제적 투쟁도 ‘인정’이란 개념 아래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제3장 독일 현대사상〉 중에서, 135쪽

    “슬로터다이크가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에서 표명한 것은 근대에서 시작된 ‘휴머니즘’이 이제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이다. (…) ‘인간의 죽음’과 ‘책의 죽음’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휴머니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제3장 독일 현대사상〉 중에서, 135쪽

    “벡도 기든스도 근대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리란 것을 부정한 건 아니다. 그들은 그 변화가 ‘근대 너머post-modernity’에 도달한다는 이론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근대의 변화를 어떻게 파악한 것일까? 이 변화를 벡은 ‘위험 사회risk society’라는 말로 표현하고 기든스는 ‘세계화’의 진전에 주목했다.”
    -〈제4장 사회학 사상〉 중에서, 154쪽

    “이러한 ‘문화 자본’, ‘학력 자본’, ‘사회관계 자본’은 개인이 속한 계급이나 계층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행동 양식을 낳는다. 이를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고 명명했다. 이 용어는 원래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태도’나 ‘습관’ 등을 의미한다.”
    -〈제4장 사회학 사상〉 중에서, 158쪽

    “아렌트의 기본적 관점은 ‘나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라는 점이다. 나치는 이상하고 잔학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극히 보통의 인간이다. (…) 사실대로 말하자면 누구나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으로 되돌아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제6장 이 사상가를 보라〉 중에서, 244쪽

    “‘호모 사케르’란 원래는 ‘성스러운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대 로마법에 따르면 ‘법에서 배제된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호모 사케르’가 되면 누구나 그를 살해해도 좋다. 말하자면 버림받은 인간이다. 아감벤은 이것을 카를 슈미트의 말을 빌려서 ‘예외 상태에 있는 삶’이라 말했다.”
    -〈제6장 이 사상가를 보라〉 중에서, 259쪽

    “일반적으로 ‘성’을 말할 때,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문화적 성gender’을 구별해서 생각한다. 상식적인 발상에서 ‘사회적 성은 생물학적인 성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생물학적인 성’ 또한 사회적으로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제6장 이 사상가를 보라〉 중에서,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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