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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빈자의 미학' 복간, 박노해 시인과의 인연



책/학술

    승효상 '빈자의 미학' 복간, 박노해 시인과의 인연

     

    건축가 승효상의 첫 저서 '빈자의 미학' 개정판이 나왔다. 1996년 첫 출간된 지 20년 만이다.

    '빈자의 미학'에서는 승효상의 철학이 반영된 초기 건축 11점을 만날 수 있다. “건축학도들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유홍준 교수의 집 ‘수졸당’부터 ‘돌마루 공소’, ‘웰콤 시티’ 등 승효상의 스케치와 설계도가 책을 보는 기쁨을 더한다.

    이 책의 독창적인 특징은 동서고금을 아우른 위대한 사유와 고귀한 예술작품, 아름다운 건축들이 승효상의 안목으로 엄선되어 담겨있다는 것이다.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제의 ‘라 뚜레뜨 수도원’부터 우리네 ‘달동네’와 ‘종묘’까지, 자코메티의 조각과 추사 김정희의 글씨, 몬드리안과 김환기의 그림 등이 승효상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주석과 함께 매 페이지마다 독립적으로 펼쳐진다.

    '빈자의 미학' 복간의 숨은 사연, 박노해 시인과의 인연

    '빈자의 미학'이 절판된 후 여러 출판사에서 복간을 제안했으나 “선언 그 자체로 남겨두고 싶다”는 승효상의 뜻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이 책의 복간을 다시 제안한 사람은 박노해 시인이다. 1996년 겨울, 무기수의 감옥 독방에서 '빈자의 미학'을 받아든 박노해 시인은 “이 작은 책의 울림은 지진처럼 나를 흔들었다. 나는 관 속 같은 언 독방에서 담요를 둘러쓰고 거듭 읽고 고쳐 읽고 다시 읽으며 묵상에 잠겼다”고 회상한다. 승효상은 책의 후기에서 “그에게 여전히 빚진 자 중의 하나인 나로서 그의 청은 거절하지 못하는 당부인 게 내 고집을 접게 만들고 만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번 20주년 개정판의 추천의 글에서 박노해 시인은 말한다.

    “ ‘빈자의 미학’ 이것은 건축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혁명’ 선언이다. (…) 나만의 다른 길을 찾는 사람에게, 이 책은 살아서 책을 읽는 행복한 경험을 안겨주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려보는 안목을 선사하고, 좋은 삶으로 가는 길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책 속으로

    건축물들 가운데서 엄밀한 의미의 건축 범주에 들어가게 하는 판단 기준, 즉 건축적 요건은 무엇일까. 나는 이를 위해 세 가지를 들고 싶다. 하나는 그 건축이 수행해야 하는 합목적성이며, 또 하나는 그 건축이 놓이는 땅에 대한 장소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건축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성이다. - 11쪽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 59쪽

    우리가 지난 몇십 년간 교육받아온 ‘기능적’이라는 어휘는, 그 기능적 건축의 실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시켰는가. 보다 편리함을 쫓아온 삶의 모습이 과연 실질적으로 보다 편안한 것인가. 살갗을 접촉하기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를 원하고, 직접 보기보다는 스크린을 두고 보기를 원하고, 직접 듣기보다는 구멍을 통해 듣기를 원하는 그러한 ‘편안한’ 모습에서 삶은 왜 자꾸 왜소해지고 자폐적이 되어가는가. 우리는 이제 ‘기능적’이라는 말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 더구나 주거에서 기능적이라는 단어는 우리 삶의 본질마저 위협할 수 있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집이 더욱 건강한 집이며, 소위 기능적 건축보다는 오히려 반反기능적 건축이 우리로 하여금 결국은 더욱 기능적이게 할 것이다. - 81쪽

    딱히 쓸모없어 이름짓기조차 어려운 그런 공간은 건축의 생명력을 길게 하며, 정해진 규율로 제시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든다. (…) 쓸모없는 공간, 예를 들어 우리네 ‘마당’은 참 좋은 예가 된다. 생활의 중심이나 관상의 상대일 뿐인 이방의 마당과는 달리, 우리의 마당은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사고의 중심이며,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를 발견케 하는 의식의 공간이다. 이를 ‘무용無用의 공간’이라고 하자. - 81~83쪽

    침묵의 벽. 비록 소박하고 하찮은 재료로 보잘것없이 서 있지만, 그 벽은 적어도 본질의 문제를 안으며 중심을 상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건축가들이 쌓은 벽이며 결단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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