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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50년의 비극…국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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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백' 50년의 비극…국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노컷 리뷰] 체제 유지에 희생된 개인들…가해자는 '묵묵부답'

    '뉴스타파' 최승호 PD. (사진=영화 '자백' 스틸컷)

     

    이데올로기로 양분된 대한민국. 그 속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정부가 무고한 국민들을 낙인찍는다.

    영화 '자백'은 분단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해직 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언론매체 '뉴스타파'의 최승호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자백'의 첫 장면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의 재판 기록으로 시작된다. 수많은 증거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가고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리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검사의 질문에 답한다.

    오빠가 간첩임을 인정하라는 내용의 질문에 가리 씨의 대답은 한결같다. '네'.

    대체 왜 유가리 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친오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된 것일까? 영화는 유가리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 이유를 천천히 추적해 나간다.

    놀랍게도 독재 정권 시대에 끝났을 법한 증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화교' 출신인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6개월 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감금되고, 폭행과 정신적 고문 그리고 세뇌가 이어진다.

    '지금은 상황이 안 좋지만 자백하면 너희 오빠와 네가 대한민국에서 같이 살 수 있다'. 이 허황된 회유를 믿을 만큼, 정신은 무너져 내린다. 결국 유가리 씨는 허위 자백을 선택한다.

    가해자는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 뿐만 아니다. 종편 등 언론과 수사기관인 검찰 또한 유우성 씨 간첩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검찰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증거를 끝까지 재판장에 들이밀고, 언론들은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확신하며 떠들어 댄다. 결국 해당 증거가 국정원에게 돈을 받은 인물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우성 씨는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리 씨와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던 김승효 씨. (사진=영화 '자백' 스틸컷)

     

    ◇ 끝나지 않은 '자백'의 역사

    영화는 유우성 씨의 추적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백'의 피해자들을 찾아 나선다.

    국정원으로부터 이름까지 잃어버린 한준식 씨는 합동신문센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국정원은 그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목숨을 끊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 역시 유우성 씨처럼 '북한에 빈번하게 드나들며 보위부의 공작 지시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국정원에서 신문을 받을 정도로 그는 간첩 의혹이 농후한 인물이었을까. 중국에서 거주했던 한 씨의 자취를 따라간 결과는 허무하리만치 담백했다. 딸을 만나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국정원 측의 주장과 달리, 한 씨의 딸은 초등학교 2학년 이후에는 아버지를 본 적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밖에 전할 수 없는 최 PD의 얼굴만이 착잡하게 굳어간다.

    2010년대에 들어 갑자기 이 같은 간첩 조작 사건들이 발생한 건 아니다. 역사 속에서 독재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국민의 두려움을 조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간첩 사건들을 조작해왔다. 영화 '변호인'에서 보듯이 무고한 대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이 그 희생양이 됐다.

    1970년대 발생한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던 이들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사람 이하의 잔혹한 고문을 견디다 끝내 '자백'으로 '간첩' 누명을 뒤집어썼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서울대에 다닐 정도로 총명했던 김승효 씨는 고문 이후 정신병을 앓게 돼 모든 미래를 잃어 버렸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어눌한 한국말로 이야기한다. 그것이 '박정희의 정치'였고, 한국은 '나쁜 나라'라고.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간첩 사건에서 대다수 사건들이 최근 조작임이 인정되며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여전히 조작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국가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짓밟힌다. 대한민국에는 독재정권부터 지금까지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한 수탈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픈 분단의 역사는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희생자로 낙인 찍힌 개인은 철저히 말살당한다.

    영화는 가해자들에게 눈을 돌린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서는 70년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이었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가까이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까지. 놀랍게도 이들의 반응은 짜맞춘 듯 한결같다. '말할 것이 없다. 모르는 일이다'.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나 사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최 PD에게 역성을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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