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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불러낸 저항시인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문화 일반

    백남기 농민이 불러낸 저항시인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고 백남기(1947~2016) 농민의 죽음이 저항시인 김남주(1946~1994)를 불러내고 있다.

    시인 김남주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노래로도 만들어져 널리 불린 유명한 시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뒤 317일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난 고 백남기 농민도 생전에 즐겨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SNS를 통해 "노동해방 새 세상을 위해 헌신했던 시인 김남주는 노동자들이 일주일 중에 金土日(금토일)은 편히 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며 하나뿐인 아들의 이름을 金土日(김토일)로 지었다. 박정권의 폭정을 규탄하다 경찰폭력에 쓰러진 민주주의자 백남기 선생은 딸의 이름마저 민주화로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4일 CBS노컷뉴스에 "시인 김남주는 가장 순수한 시인이었다"고 평했다.

    "여기서 '순수'는 우리가 아는 순수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순수문학은 정치적으로는 순수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학에서 모든 이념을 추방한다고 했지만, 당대 독재체제와 일정한 타협 또는 적극적인 참여의 자세를 유지했기에 결코 순수하지 못했다. 김남주 시인을 가장 순수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시라는 것, 시와 혁명을 동의어로 봤다는 데 있다."

    최 이사장은 특히 "시는 혁명을 먹고 산다"고 강조했다.

    "그 혁명은 정치적 혁명을 넘어, 당대 사회와 불화하면서 더 나은 세상,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그런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시인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김남주는 한국 시사상,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순수한 혁명시인이다.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시인이 마땅히 걸어야 하는 길을 갔던 것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시인 김남주와 농민 백남기는 아주 비슷하다"고 말했다.

    "법학을 공부한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접하면서 '인텔리 리얼리스트'의 모습을 봤다. '가엾은 리얼리스트'라는 김남주의 시가 있는데, 백남기 선생의 빈소에 갔을 때도 '시골길이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흔해 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고/ 촌뜨기 시인인 내 눈은/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본다'는 그 시의 내용이 계속 떠올랐다. 백남기 농민의 내면은 이렇듯 '가엾은 리얼리스트'였던 것 같다."

    김 교수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한 명 한 명이 새 시대를 여는 리얼리스트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1994년 엄청나게 추운 날 열린 김남주 시인 장례식 때 제가 장례위원을 하면서 그분의 관을 옮겼다. 공교롭게도 김남주 선생이 돌아가신 뒤 우리 사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한 명 한 명이 새 시대를 리얼리스트가 돼, 열악한 현실에 저항했으면 한다. 그것이 이분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 "백남기 농민은 망각하지 않고 기억했던 사람"

    지난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한국 사회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지고 있는 공권력의 비상식적인 행태들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원식 이사장은 "글쓰기가 겁나는 시절"이라며 "정치적 현안은 현안대로 챙기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그냥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친다고 다 되는 세상이 아니라고 본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계기로) 김남주 시인을 호명, 호출함으로써 이러한 착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백남기 농민의 고귀한 희생을 진정한 불씨로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이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근본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김응교 교수는 "백남기 선생은 망각하지 않고 기억했던 사람"이라며 "우리 역시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가톨릭 신자인 백남기 농민의 세례명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의 임마누엘이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점점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봤던 김남주 시인과 백남기 선생이 일깨운 공감의 감각을 알아야만 (많은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은 세월호, 메르스, 최근 미르재단 등으로 드러난 온갖 부정부패까지 모든 것을 망각하기를 강요한다. 부정부패를 저지를 이들이 바라는 것은 망각과 무감각이다. 그런데 백남기 선생은 망각하지 않고 기억했던 사람이다. 우리 역시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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