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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공연/전시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 2016-09-07 18:34

    [노컷 리뷰] 극단 산, '그때 그 사람'

    검열에 저항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 중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5개월간 매주 1편씩, 총 20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릅니다. CBS노컷뉴스는 연극을 관람한 시민들의 리뷰를 통해, 좁게는 정부의 연극 '검열'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모든 '검열'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리뷰 순서="">
    1. 우리 시대의 연극 저널리즘 /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2. 포르노 시대 한가운데에 선 나를 보다 / '그러므로 포르노 2016'
    3. 그들이 ‘안티고네’를 선택한 이유 / '안티고네 2016'
    4. 주장이 구호가 안 되게 서사의 깊이 보장해야 / '해야 된다'
    5. 2016년 우리는 <김일성 만세="">를 볼 수 있는가 / '자유가우리를의심케하리라'
    6. 불신, 이래도 안 하실 겁니까? / '불신의 힘'
    7. 그는 검열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겠지 / '15분'
    8.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 '광장의 왕'
    9.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 '이반 검열'
    10. “내 정보는 이미 팔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 '삐끼ing', '금지된 장난'
    11. ‘안정’이라는 질병에 대한 처방전 / '흔들리기'
    12. '우리' 안에 갇힌 '우리' … 개·돼지 같구나 / '검은 열차'
    13.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 '그때 그 사람'
    (계속)

    야만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복을 입었다. 군복을 입은 야만인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다스리던 시절이 있었다. 시 쓰는 이들과 노래하는 이들이 그 시절을 살았다. 야만인들은 시 쓰는 이들과 노래하는 이들을 미워했고, 그 이전에 시와 노래를 미워했다. 야만인들은 그들의 입을 막았다. 시 쓰는 이들은 시를 읊지 못했고, 노래하는 이들도 노래하지 못했다.

    그때 그들은 시와 노래를 가슴에 품은 채 술을 마셨고, 취하면 시와 노래를 읊고 부르고, 그 자리에서 들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가슴에 품고, 취하면 시와 노래를 읊고 부르고, 그러니까 야만인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입막은 시와 노래가 잠깐이나마 숨을 쉬었던 곳은 낡은 주점이었다. 연극 '그때 그 사람'은 그래서 낡은 주점을 배경으로 하는 것일까.

    '그때 그 사람' 중. (제공 사진)

     

    소극장에 들어와서 종업원(인 배우)들에게 안주와 술을 받았다. 받아들고 사람들과 객석에 엉거주춤 앉아서 먹었다. 취하다보니 공간에는 송창식의 <왜 불러="">,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과 같은 어느 시절의 금지곡들이 흘렀다.

    흥겨운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 종업원들이 손님(인 관객)들에게 "과거와 현재의 사건은 미래에 이야기가 된다"면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금지곡들의 우스꽝스런 사연을 소개하고, 노래를 불렀다. 종업원들은 초대손님을 불러서 앞에 세우고, 딱히 무대로 미리 초대받지 않았던 손님들도 앞으로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질문하고 소리지르고 점점 무대와 객석 사이 턱이 사라지면서, 소극장은 과거 야만인들이 다스리던 시절의 숨구멍이었던 바로 그 낡은 주점이 된다. 과거의 모사였던 '그때 그' 주점이 현실의 실재인 '지금 이' 주점이 되면서 운동력을 갖는다.

    '그때 그 사람' 중. (제공 사진)

     

    극의 중간에는 김지하와 김민기, 두 사람이 묘사된다. 손님(인 배우)들이 술을 마시면서, 먼저 '선배'라는 남성이 후배 여성 '민주'에게 <타는 목마름으로="">를 읊는다. '민주'는 그 시인의 변화를 아느냐고 캐묻지만, '선배'는 영 답답하게 대답한다. ‘민주’는 벽같은 선배에게 시인의 시 <벽>을 읊는다. 이후 김지하의 생이 소개되고 둘은 논쟁한다.

    얼핏 보기에 작품보다 작자에 주목하는 견해와 작자보다 작품에 주목하는 견해가 논쟁 속에서 대립하는 듯이 보이지만, 극이 주목하는 것은 이 견해의 대립보다는 김지하 그 자체이다.

    극은 김민기에 대해서 '아침이슬'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그가 당한 고초를 묘사한다. 김민기가 그의 삶 내내 견지한 일관성은 극 중에 평면적으로 묘사되지만 이 일관성과 평면성은 그 자체로 우직한 힘이 있다. 무엇보다 김지하와 김민기는 과거의 사람 또는 사건이 시간을 거치며 이야기로서의 역동성을 획득한다는 것을 일례로 보여준다.

    '그때 그 사람' 중. (제공 사진)

     

    그때 그 야만인들은 물러갔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모든 시를 읊조리고 모든 연극을 공연할 수 있을까. 이제 다스리는 자들은 입을 막지 않는다. 다만 지급 받기로 한 지원금을 취소한다. 영화제에서 자리를 빼앗는다. 광고를 주지 않는다. 그렇게 말할 능력이 없게 만든다.

    딱딱한 검열의 시대는 지나가고 바야흐로 부드러운 검열의 시대다. 군복을 입고 곤봉을 휘두르는 야만인들은 사라졌지만, 넥타이를 메고 돈줄을 쥐고 흔드는 야만인들, 이들 앞에서 새로운 시와 노래, 연극과 영화는 속수무책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이야기가 된 것을 기억하며 미래의 이야기가 될 사건들로 현재를 구성하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낡은 주점에 모일 일이다.

    송영균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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